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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May 18. 2022

교육소설 ep.10

예쁘게, 예쁜 것만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이름, 인물 등은 실제사건과 관계 없습니다.








채윤아, 엄마가 msgm 원피스 꺼내 놨거든? 그거 입고 핑크 니삭스 옆에 놓은 거 같이 신어.







응.







식탁에 앉아서 바나나 먹고 있어봐봐. 


엄마가 머리 땋아줄게. 


오늘은 양 갈래로 하고 주말에 백화점에서 산 왕리본 머리띠할까?











현주는 꼬리빗에 분무기의 물을 뿌렸다. 


꼬리빗 뒤쪽을 세워 채윤의 뒷통수 중앙을 지그재그로 가로질렀다. 가르마 왼쪽 머리를 현주의 오른손에 모아 빗어 당겼다. 






아, 엄마아. 눈 너무 당겨.







이렇게 해야 이따 집에 올 때까지 


머리 안 풀어지고 깔끔해. 


좀 참으면 괜찮아져.







아, 애들이 마녀같다고 놀린단 말야.


엄마, 나 몽쉘도 하나 먹어도 돼?







무슨 소리야. 너 배 나오고 싶어? 


살찌면 안 돼. 


안 그래도 요즘 성조숙증 때문에 난리인데. 너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소희 


벌써 생리 시작했다더라. 


바나나랑 우유만 얼른 먹고 어서 나가.






 




현관으로 간 채윤이 현주를 불렀다.






엄마, 이 신발 이상해. 


털 신발인데 샌들이야. 


샌들에 털이 달린 건가.







그게 요즘 신상이야. 


네가 좋아하는 핫핑크 구하기 힘들어서


엄마가 직구로 샀다.







아, 애들이 이상하다고 놀릴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네가 제일 세련됐을걸. 


이제 며칠만 지나면 애들이 따라 신을 거야. 다른 애들이 신기 전에 네가 먼저 신고 가야지. 







알았어.






현주는 하마터면 깜박할 뻔한 왕리본 머리띠를 들고 현관으로 가 채윤의 머리에 씌웠다.






아웃핏 완성. 우리 채윤이. 


3학년 3반에서 우리 채윤이가 제일 예쁘겠다. 오늘도 이쁜 것만 보고, 이쁜 말만 듣고 와.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오늘 수학쌤 오시는 날이니까 


늦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어, 갔다 올게.














현주는 채윤을 보내고 네스프레소 잔에 캡슐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지잉-




버튼을 두르자 캡슐을 뚫고 갓 나온 커피가 유리잔에 조르록 담겼다. 


핸드폰을 켜고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눌렀다.


제일 상단에 아린맘의 피드가 떴다.


짙은 회색 방에 첼로가 세워져 있었다.






첼로는 취미로만 했으면 좋겠는데


아린이가 하루종일 연습을 해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남는 방 하나에 방음공사를 했어요.


이웃에 폐 끼치면 안 되니까요.



평범하게 키우고 싶은데


지도해주시는 교수님도 


진지하게 전공을 고려해보라고 하니 


자꾸 고민이 많아지는 엄마입니다.



#첼로 #음악 #클래식전공







어머, 아린이 첼로 하는 줄은 알았지만, 전공 권유 받을 정도였군요. ㄷ ㄷ ㄷ







아린이는 아린맘을 닮아서인지 얼굴도 예쁘고 예술적인 감각도 뛰어난가봐요.







영어도 잘하고 첼로도 잘하고 대체 못하는 게 뭔가요, 아린이는.







요즘엔 엄마표영어 컨텐츠는 안올리시나요?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인 아린맘의 계정엔 피드마다 아첨하는 댓글들이 그득했다.






하아, 아린이.








아린맘 연지와 현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다. 어릴 적부터 눈에 띄는 예쁜 외모에 낭창한 몸매, 전교권에 드는 모범생 훈남 오빠까지 완벽해 보였다. 연지는 늘 남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학원을 하는 부모님의 기대에는 못 미쳤을지 몰라도 나름 상위권 성적까지. 현주가 느끼기엔 연지는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우월한 존재였다. 



 그랬던 연지가 중학교 1학년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조기유학이 열풍이었던 그때였다. 방학이면 간혹 노랗게 탈색한 머리의 연지를 동네에서 볼 수 있었다. 노란 머리의 연지는 동네 오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제 뭐 지나 나나 애 엄마지.








 학창 시절 존재감 없던 현주와 달리 채윤이는 톡톡 튀는 성격에 발표하기 좋아해 동네에서도, 학원에서도 눈에 딱 띈다. 인스타그램 속에서나 반짝이지 실제로는 소심한 아린이와 비교하면 학창 시절의 연지와 현주가 뒤바뀐 기분이다.





현주는 핸드폰을 고쳐 쥐고 e알리미에 들어가 반 배정 명단을 살펴보았다.






김하진, 유이안, 박아린, 








명단을 더 내렸다. 






김준서, 김민재, 양채윤..


아, 민재.








민재는 채윤이와 같은 영어유치원 때부터 만나 함께 영재학술원과 대치동 특강도 다니고 지금 영어학원까지도 쭉 함께 다니고 있다. 민재엄마 지영은 워킹맘으로 늘 바쁘지만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은 전업 엄마들 못지않아 교육정보를 얻는데 늘 열을 올린다. 그런 민재 엄마에게 이 동네 학원 정보를 꽉 쥐고 있는 현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같은 반도 됐으니까 얼굴 한 번 봐야지. 할 말도 있고.








현주는 지영에게 카톡을 보냈다.






민재 엄마, 민재도 3반이라고 했었죠?







지영이 회의 중인지 답변이 없다.


채윤이가 어젯밤 풀어놓은 점프왕 수학 답지를 채점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네, 민재도 3반이에요. 올해도 같은 반이라니 반가워요.







다음 주 평일에 되는 날 있어요? 스타벅스에서 얼굴 한 번 봐요.











민재랑 이안이랑 이준이, 하진이까지 


넷짜면 인당 50씩 월 200.. 


거기에 채윤이 넣으면 딱 맞아떨어지는데. 









J학원 원장반에 채윤이를 넣어서 새로 팀을 짜기로 원장과 구두로 약속한 상태다.팀 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수준 맞는 애들 물색부터 해야 한다. 낄 생각이 있다고 해도 다들 이미 다니는 학원 스케줄이 빡빡해서 시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민재 엄마는 뭐 내가 말하면 무조건 한다고 하겠지.








민재네 갔을 때 고려대학교 졸업앨범을 보았다. 민재 엄마도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똘똘한 여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기업 회사원 남편을 만나서 같이 맞벌이 하느라 가랑이가 찢어진다. 채윤이는 저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이고, 다 의미 없다. 


어느 정도 상위권 무리에 


어울릴 정도만 공부하면 되지.


하긴 민재는 아들이지.








 '아, 시간이 벌써.'



현주는 애플워치의 진동이 느껴져 왼쪽 손목을 들어 스케줄을 확인했다.운동복으로 서둘러 갈아입고 집 앞 필라테스 스튜디오로 향했다. 


















현주씨는 학교에서 이런 거 안 배웠어?











직장은 학교가 아니에요. 







요즘 대학 나온 친구들 뽑을 때 


제일 우려스러운 점이 끈기가 없고 나약해서 쉽게 그만둔다는 점입니다. 취업 어렵다고 난리라면서 막상 뽑아 놓으면 너무 쉽게 그만둬요.








영문학과를 졸업을 앞두고 이렇다 할 대단한 스펙이 있었던 것도 아닌 현주에게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회사 입사는 엄청난 쾌거였다. 취업난이 심하다던데 어떻게 졸업도 전에 한 번에 턱 공채 합격을 하냐는 주변의 말에 현주의 부모님은 어깨가 으쓱했다.




취업의 기쁨은 고작 공채발표 후 입사까지의 한 달짜리였다. 입사와 동시에 지영에게 밀려온 건 업무가 아니라 눈치였다.






아직 신입이라곤 해도 


너무 일찍 가면 주변 사람들 눈치 보여. 


좀 기다렸다 가.







입사 일주일차에 사수에게 들었던 충고였다.


잡 리쿠르팅 때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특징이라며 입사원서에 학점 쓰는 칸도 없다고 했었던 곳이다.



너무 긴장한 탓에 퇴근하자마자 아침까지 쓰러져 자기를 한달반여.


현주는 이제 약간 적응하는 듯했다.



출근한 현주의 책상에 꽃이 놓여 있었다.


컴퓨터를 키고 출근 체크를 하자 네이트온 메신저에 알림이 울렸다.






현주야,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현주에게 일을 가르쳐준다며 입사일부터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사수였다. 






현주야, 나는 진심이야. 답을 해줘.







모르는 일이 있어 사수에게 물어봐야 하지만 사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사귀자는 말에 대한 답변 독촉 뿐이었다. 경희대 모델학과를 졸업한 사수는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이었다. 회사 밖이라면 가볍게 만나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첫 사회생활을 사내 남녀관계 가십의 주인공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현주씨, 유승훈 대리랑 사귀어요?








이제 막 신혼이라던 박나경 팀장의 질문에 현주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팀장님, 업무에 관한 질문을 해도 계속 사귀자고만 하시고 회의 핑계로 자꾸 데이트하려고 하시니까 제가 너무 괴로워요. 사수를 바꿔주시거나 최소한 그러지 말라고 경고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야, 걔가 도와달라고 하는 거 있지? 메신저 대화 내용도 쫙 긁어서 보냈더라.








정작 돌아온 건 도움이 아닌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자신의 소문을 여자 화장실에서 엿듣는 것이었다. 팀장도 믿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현주는 입사 때 교육받은 대로 인사팀에 이 일을 알리고 인사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유승훈 대리는 강제 퇴사를 당했다고 했지만, 경쟁사 전략기획팀으로 꽃가마 타고 이직했다.






너 승훈이랑 잤지?








사업실의 모든 직원이 현주를 피하는 와중에 웬일로 밥을 먹자던 장인봉 팀장의 첫 질문이었다.






우리 잘생긴 승훈이 쟤 때문에 잘렸잖아.








성추행을 당한 건 현주였는데 욕을 먹는 것도 현주였다. 사내 왕따라는 건 뉴스로만 봤는데 현주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주인공이 되었다.






현주씨, 우리 사업실이 통폐합될 거에요. 


저번에 공채로 같이 들어온 개발자들은 


신입이어도 다 흡수가 되었는데 


마케팅팀인 현주씨는 딱히 경력도 없고, 


갈 팀이 없네요. 


현주씨 받겠다는 팀도 없는데 


권고사직으로 처리해줄 테니까 


나가는 거 어때요. 









요즘 신입들은 너무 쉽게 그만둔다며 현주를 채용했던 박종형 실장이었다.



질염과 두드러기, 다래끼 각종 스트레스성 염증과 디스크 파열까지 버티며 견뎠던 1년 반이었다. 남은 건 3개월 치 실업급여였다.  







바렐에 왼쪽 다리를 올리고 상체를 숙이자 가슴이 눌렸다.


억지로 현주의 팔목을 잡고 키스하며 가슴을 더듬던 유승훈 대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가슴 언저리께의 쥐어지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세가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 








현주의 골반이 틀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던 필라테스 강사가 말했다.






여자 인생 커리어 쌓겠다고 


아등바등 살아봐야 소용없지 않아요?







네?







아니에요.







그쵸. 정작 거북목, 라운드 숄더 심한 직장인분들은 이 시간에 다들 일하고 계시긴 하죠. 요즘엔 점심시간에 밥 대신 필라하러 많이들 오세요. 









민재 엄마를 봐도 그렇다. 회사 다닌다고 그 용을 써봐야 교육정보 빠삭한 전업맘들에게 언제나 밑진 사람처럼 군다. 유학 가서 대충 살다 돌아온 아린맘은 결국 동네에서 어울리던 오빠와 결혼해서 마세라티 끌고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랍시고 잘 살고 있다. 채윤이 만큼은 험한 꼴 보지 말고 예쁘게 키워 찐 부자에게 시집 보내서 평생 좋은 것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20대에 멋모르고 당했지만 채윤이에겐 절대 그런 일이 생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리포머로 가실게요. 








현주는 타월을 들고 다른 기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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