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

비교는 불행의 씨앗

by Norah

오늘도 그 직원은 표정이 좋지 않다. 자신은 바빠 죽겠는데 옆에 있는 직원은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많은 것보다 속이 더 뒤틀리는 장면이다. 그래서 다른 직원에게 투덜거린다. "쟤는 회사 돈을 공으로 먹네. 저렇게 하는 일없이 회사 다니고 싶을까." 그렇게라도 말해야 속이 시원할것같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별난 사람, 조용한 사람, 예민한 사람, 센스 없는 사람 등 조직의 규모가 크든 작든 어디를 가더라도 각자의 성향들이 삐집고나온다. 그 중에는 진짜 한가한 사람도 있고 바쁘지만 한가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진짜 바쁜 사람도 있고 한가하지만 바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각자 맡은 일은 다르다. 내 일이 아닌 이상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회사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고용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퇴근 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속으로든 겉으로든 이런 말을 내뱉는다. "쟤는 일이 많지는 않나봐." 그 사람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는지, 얼마나 일찍 출근하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다. 그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마음대로 평가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단은 까고 본다. 그 사람의 일이 많고 적음은 우리가 관여할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입을 댄다. 나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꼴은 못 봐주겠다는 심산이다. 그들이 씹어대는 사람 중에는 상사가 무능하다든지 운이 좋아서든지(?) 어떤 이유가 되든 정말 업무량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직원도 하소연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없는 일을 있게 보여서라도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이 많은 사람보다 더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도 온라인 쇼핑을 해도 눈치보며 몰래해야한다. 아무리 일이 없다고 해도 회사는 마음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하더라도 그 편하지 않은 곳에서 8시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보통 스트레스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집에 가도 피곤하기만 하다. 일이 없는 것은 그 직원의 잘못이 아님에도 온 사람에게서 욕을 먹어야 한다. 해야할 일을 안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다른 직원들이 주는 눈치까지 감내해야 한다. 일없이 회사 다니는 것도 곤욕 그 자체이다.


우리는 남들이 나보다 더 잘 나가거나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잠깐이라도 마음이 요동침을 느끼게 된다. 남들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친구의 좋은 차를 구경하고, 입사동기보다 내 급여가 더 적은 것을 인정하는 것에는 큰 인내가 필요해보인다. 같이 못 살던 시대보다 먹고 살만해진 지금이 더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배 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건 못 참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개인의 의사, 자유, 능력보다는 평등만 고집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다.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은 우리의 의지와 열정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속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보이던 일도 지나고 나면 그 반대의 결과인 일들도 많다. 사람들은 "알고 보니 그렇더라."라는 말을 참 많이도 쓰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 사람이 나보다 진짜 잘 나서가 아니라 잘 나 '보이기' 때문에 괜히 질투도 났다가 위축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속은 알 수가 없다. 정말 행복한 사람인지 마음이 늘 공허한 사람인지 콤플렉스나 아픔이 있는 사람인지 드러나는 것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이는 것때문에 내 기분이 오락가락하곤 한다. 내 행복을 뺏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내가 만든 생각이 되는 셈이다.


사람들은 진짜를 잘 모른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때도 많다.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데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 사람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욕을 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더 깎아 내려 비아냥거리고 과장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란 그렇다. 가만히 있는 상대도 자신의 생각 하나로 쉽게 미워지곤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내 삶에 개선은 커녕 작은 변화조차 가져다 주지 않는다. 나 자신이 아닌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허비하다보니 정작 내가 해야하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박탈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무언가를 보면 마음이 일렁이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다. 그런데 그 감정에 계속 끌려다닐 것인가 아닌가는 내 선택에 달렸다. 올바른 선택을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가야 할 때와 중단할 때를 아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좀 더 즐거운 쪽으로 돌리는 것, 지혜란 그런 것이다. 올라오는 감정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안 좋은 마음은 재빨리 전환시키는 것, 남에게 쏠려있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고 스스로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것. 지혜는 처세를 위함보다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주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 그러고보면 고통은 어리석음과 비례한다는 말도 괜히 나온 소리는 아닌듯 하다. 상대적 박탈감은 그 상대와 사회와 환경을 탓하고 욕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퇴보될 뿐이다. 우리는 그저 숙제를 하듯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야 한다. 진실로 벗어나고 싶다면, 진정으로 답을 찾고 싶다면 그래야만 한다.


Capture.JPG 여기저기 기웃대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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