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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장 Sep 25. 2021

011. 드라마,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타라레바 아가씨 = 망상녀 

직역하자면 ~ 했더라면女


제목부터 스멀스멀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뇌를 절구통에 넣고 콩콩 찧었다는 그 표현... 바로바로 그 표현. 네, 빻았어요. 






 내내 겁나 빻았구먼... 하면서도 끝까지 본 건, 드라마 시리즈인 줄 모르고 WAVE에서 추천하는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2020을 엉겁결에 봤기 때문이다. 3년 후 시퀄을 먼저 보고 시작한 드라마 시리즈. 3년 후 도쿄 올림픽에는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도쿄 올림픽을 보고 싶다는 고등학교 동창인 세 친구의 이야기... 하... 벌써 숨이 찬다.  드라마는 끝으로 가면 갈수록 한숨을 멈출 수 없게 하는데 그 덕분에 끝이 난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몇 주에 걸쳐 봤던 것 같다. 결혼과 아이를 낳는 것을 최고의 가치처럼 교육받아온 일본 여성들의 30살의 모습을 비춰주며 연애와 결혼에 행복의 목적지를 정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한심해하며 다양한 조언들을 늘어놓는다. 뾰족하든 다정하든 그 남자들의 조언들이 결국은 맞는 말이었어.. 흑흑... 의 서사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맨스플레인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옴에도 불구하고 리뷰를 쓰려니 괴로움만 남았다. 


 성공하지 못한 극작가 린코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술집을 도와주는 고등학교 동창 코유키, 네일숍을 운영하는 카오리가 코유키 아버지의 술집에 모여 이랬으면 어떨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을 펼치며 술 모임을 하며 연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결혼과 행복해질 미래를 그리면서. 세 사람의 이야기야 주변 사람들이 한창 결혼 러시를 이루는 서른 살 전후의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라 치더라도 (이것도 치고 싶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자리를 잡은 전문직 여성도 얘기한다. 결혼하고 싶다고. 이미 직업적 자기 기반을 잡았고, 혼자서도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집에 가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절규하는 이 사람에게 린코가 이상형은요?라는 질문을 하자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대답하는 처참함을 마주하게 된다. 


 결혼이란 뭘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기분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결혼 또한 평생이라는 막연한 시간을 약속을 하는 것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서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라고 결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건 아니지 않나...라고 쓰면서 문득 그럼 어떤 건 맞는 건가 싶다. 삶을 살아가는데 평생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편을 만나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골-인! 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일까? 


 부모님과 친척들의 결혼은 언제 할래라는 질문도 이제 멀어진 갓 40대의 나는 주변의 결혼 안 한 친구들과 꽤 즐겁고 단단하게 살아간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해야 할 일들에 치여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집에선 방전된 채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좋아하는 위스키에 탄산수를 잔뜩 부어 하이볼을 만들어 마시며 나를 충전한다. 시간을 쓸데없이 쓰기도 하고, 잠도 자지 않고 내 생활에 집중하기도 한다. 밥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고, 집 안을 채우는 향기와 노래,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까지 자유다. 코로나가 자유를 조금 앗아가긴 했지만, 친구가 필요할 땐 폰만 열어도 다양한 친구들과 연결되고, 때로는 그 시간만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이라는 집 꾸미기에 한창이라 당근 앱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가구에 사포질을 해 페인트를 바르기도 한다. 그런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집 밖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힘을 기른다. 

 혼자의 시간을 즐기며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불쾌해지는 이유는 결혼하지 않은 결혼 적령기를 지나가고 있는 여성들과 적령기를 지난 여성을 싸잡아 납작하게 바라보는 데 있다. 짐짓 괜찮은 체 하는 사람도 마음 한 켠에는 결혼을 바라고 있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혼 상태가 정의인양 보인다. 살아오며 만난 다양한 친구들을 통해 기혼자의 마음 한편에 이혼 서류를 넣어놓은 서랍이 있다고 느낄 때도 있는데 왜 비혼자의 결혼 욕구에 대한 서랍에만 돋보기.. 아니 현미경을 들이대고 보여주는 걸까? 그렇게 결혼이라는 하나의 선택지에 패배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가득 모여 수다만 떠는 드라마를 보며,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홀로 여성들이 떠올랐다. 다들 그 삶보다 결혼을 막연히 바라면서 살고 있나? 나만 그냥 재미있는 걸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렇게 보여주는 여성 서사가 도대체 누구에게 재미를 전달하는 걸까 하고 묻게 된다. 물음이 물음으로 이어지다가 아마도 이 드라마의 주 타겟층은 아무래도 주인공과 비슷한 30대 초입의 여성들일 거고, 그들이 재미있게 보기보다는 겁에 질려 결혼시장으로 내달음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뻗어나가서 이 드라마 혹시, 국가지원사업이라도 받은 건 아닐까 하는 음모론까지 도달하게 된다. 


 세상은 꽤 많이 변했다.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하며 한정된 역할만 행하던 인류의 절반은 남의 것으로만 여겨졌던 성취가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것에 대한 욕구 표현이 당연해졌고, 쟁취하기 위해 거친 사회에서 유리 천장에 균열을 내고 있다. 차별이 아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고 외면한다 해도 이젠 더 이상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차별을 차별이라 인지한 선배 여성들로부터 되도록 자립해 혼자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길 바라는 응원을 보낸 것은 비단 나의 어머니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뿐일까? 어린 시절의 만연한 차별 속에서 어머니를 통해 결혼의 불합리함이나 희생을 충분히 공감하고 겪어온 이 세대의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마냥 핑크빛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세대들에게 여전히 혼자면 외로운 패배자가 될 뿐이라는 낡은 방식의 이야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떤 면으로 순진하다고까지 여겨진다. 순진무구함 그 자체의 불쾌감만 남긴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성취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내달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 모든 여성의 성취의 완성이 결혼으로 그려지는 이 드라마의 방향을 비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 멀었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진 않다. 미디어로 보이는 이런 부분들이 어쩌면 큰 변화에 대응한 거대한 백래쉬가 아닐까 희망을 가져보며 일본 드라마 보기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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