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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24. 2024

연인과 함께

[11일 차] 사리아 -> 포르토마린

순례길에는 짝을 이뤄서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주 젊은 커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적절할 것 같은 노부부까지 그 연령대도 다양했다. 젊은 커플은 젊은 커플대로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또 그분들 나름대로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편하게 즐길거리도 많을 텐데 젊은 나이에 연인끼리 고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낼 결정을 했다는 것이 훌륭해 보였고 또 더 이상 젊지 않은 몸을 이끌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을 것 같은 노부부들의 모습도 좋아 보였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보폭을 맞추는 일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마음적으로도 그렇다. 걸음의 속도가 빠른 사람은 그 속도를 늦춰야 하고 느린 사람은 조금 서둘러야 하는 일이다. 경험한 바로는 걸음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마치 자전거 느리게 타기 대회에 참가하는 것처럼 본연의 속도를 억지로 늦추는 것도 그 나름의 위태로움이 있다. 그래서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함께하는 둘 각각의 노력에 모두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함께하지만 각자의 속도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베르게를 떠날 때 헤어지고 다음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서로 다른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신축성이 강한 줄에 느슨하게 묶여있는 것처럼 둘이기도 하고 하나이기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커플에게서는 각자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보였다.

이들과 다르게 혼자서 순례길은 걷던 나는 여정을 소화하는 내내 여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했다. 하루일정을 모두 소화한 약 4시 어간은 7시간 시차가 나는 한국에서는 11시 즈음이었다. 하루하루가 루틴으로 돌아가는 순례자 생활에서 여자친구와의 영상통화는 어느새 그 루틴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시간은 하루하루의 보고회처럼 작용하기도 하여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느낌을 주었다. 때로는 그 시점의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시나브로 쌓여가는 여자친구 자체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하루는 작은 관습처럼 느껴지는 영상통화를 하지 못하게 되어 아주 작은 서운함과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은 여자친구의 개인 일정이 늦은 밤까지 이어져 부득이 영상통화를 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지키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많다. 그중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지금 당장 옆에 있지 않아도 옆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대목은 사랑이란 지극한 표현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마음에 무한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고 한들 꺼내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랍 속에 숨어있는 금은보화는 꺼내어지지 않는 이상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랑은 추상적인 영역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실체가 더 중요한 삶의 양식이다. 사고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이다.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실체가 있는 세상으로 꺼낼 때 투여해야만 하는 에너지. 그 에너지가 소비되면서 사랑의 존재가 확인되고 증명된다.


표현과 실천으로 사랑의 존재가 확인되고 증명된다면 사랑이란 그 자체로 무엇일까. 어떻게 정의해야 될까. 때때로 언급하는 사랑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의 총체라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면, 또 사랑이 설렘과 즐거움 등 온갖 긍정적인 상태라고 착각을 하게 되면 그 얕은 상태가 우리를 떠나갈 때 더 이상 상대방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것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감정보다 한 차원 위에 존재하여 그 감정들을 관장하는 무엇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로는 미움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하고 사랑하기에 미움을 걷어보려고 하기도 한다. 또 사랑으로 미움을 품기도 한다. 사랑이란 그렇게 깊고 넓으면서도 조금 더 고차원인 인간의 정서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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