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ish Oct 11. 2023

40세를 앞둔 남성 무용론 (無用論)

3년 전 함께 박사과정을 했던 가까운 선배는 "나는 지긋지긋한 회사 일보다 내가 찾아서 하는 박사 연구가 좋아. 장기적으로 연구를 하는 게 내 적성에 맞아"라고 말하곤 했다. 힘든 직장 생활 와중에서도 박사 코스워크를 하던 그 형의 표정은 늘 피곤함에 절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넘쳐 있었다.


최근 회사에서 승진한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난 우리 회사가 마음에 들어. 정년도 보장되고, 쉽게 망할 일도 없는 대기업이거든." 불과 몇 년을 사이에 둔 그 선배의 '정반대' 발언은 내게 작은 충격을 줬다.


분명히 사람은 똑같은데, 불과 몇 년만에 회사에 충성을 바치게 된 건가? 이 사람은 따분한 회사 생활보단 스스로 찾아서 하는 연구가 더 좋다고 하지 않았나?


이는 비단 연구 분야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내 또래, 그러니까 30대 중반~30대 중후반만 해도 '조직(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20대 후반~30대 초반만 해도 적성이나 직종을 바꿀 여유가 될 수 있지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고 있을 수도 있을 30대 중후반 직장인들은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내 실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실, 멀쩡한 직장을 갖고,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쟁취하려고 드는 것은 실로 엄청난 희생이다. 회사에서의 승진 경쟁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고, 매일 밤마다 피곤한 정신을 부여잡고 책을 펼쳐야 한다. 때로는 자신의 주경야독을 이해하지 못 하는 배우자와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내가 내 꿈을 좇을 시간에 누군가(배우자)는 독박 육아라는 부담을 져야 하니깐.


나의 꿈이 자격증이든, 학위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산을 끝내 넘지 못 한 이들은, 그 사유가 어떻든 간에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변화는 무엇일까.




대개 우리나라 기업에서 40세는 중요한 요직을 차지할 수 있는 나이다. 대기업이라면 과장에서 차장이 되고, 규모가 더 작은 기업이라면 팀장을 다는 등 '소년 승진'을 할 수 있다. 예전엔 평범한 사원급으로 육아・피로함 등 버거운 환경에서 고전하던 가장들은 회사에서의 요직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는 업무적으로 더욱 바빠지고, 이와 동시에 책임감은 무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바라던 꿈은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무렴 괜찮다. 승진은 이에 대한 좌절감을 상쇄시켜줄 수 있으니깐. 회사에서의 입지 강화는 자신이게 보상 심리로 작용한다.


자신의 꿈을 좇다 갑작스럽게 '회사 충성파'로 돌변하는 또래 선배를 보면 이런 무서운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난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물론, 이런 보상 심리가 나쁘다곤 생각하진 않는다. 누군가에게 꿈과 목적을 이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버거운 측면이 존재할 수 있으며, 회사에서의 입지 강화는 금전적이든 비금전적이든 또 다른 택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안타까운 것은 끝내 빛을 바랜 한 40세 남성의 꿈과 목표의식이다. 문제는, 꿈을 포기하고 회사 승진을 택한(?) 이들의 변질이다. 내가 '변질'이라고 포기한 것은, 이들 중 몇몇은 자신이 추구하던 꿈을 어느샌가 폄하하기 시작해서다.


'그깟 연구 좀 하는 게 뭐 좀 돈이 된다고. 회사에서 승진하면 돈도 더 들어오고, 팀장 수당도 나오지 않아?'


이런 생각의 변화는 나쁘게 말하면 '정신 승리'이다. 좀 더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의 꿈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의식을 '조직 맞춤형'으로 바꾸는 자기 합리화이다. 왜? 그게 나와 내 가족에게 더 안정적인 길일 수 있으니까.


더 무서운 것은, 나 역시도 그렇게 변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일 수 있다.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40세를 지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조금 일찍 결혼한 이들이라면 자녀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자녀를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 배우자는 전업 주부를 선언할 수 있다. 이래나 저래나 평범한 40세 가장 입장에선 생활이 팍팍해진다. 홀벌이인데 자녀 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나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원천은 오로지 회사 뿐이다. 상황이 이런데 나의 꿈과 목표를 좇는다고? 이건 낭만에 그칠 수 있다.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나는 집안에 안정성을 가져다주는 회사 뿐이다. 이상을 좇던 나는 조직 논리에 굴복하고 만다. 그렇게 내 꿈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고 만다.




요약하면, 남성이 40세가 되면 - 자의든 타의든 -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꿈을 좇는 낭만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꿈을 포기하고 회사에 종속되는 조직원이 될 것인가. (물론, 회사 승진이 꿈인 이들에겐 의미 없는 고민일 것이다.) 물론, 무엇이 선택권이 되었든 간에, 그 선택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만 후자(조직원)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선택권인 만큼, 이상을 좇는 낭만가가 되는 선택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전 브런치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일본에서는 2002년 박사 학위도 없는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는가. 승진도 포기하고 불철주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렸던 이런 '평범한 직장인'의 도전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꿈을 좇는 낭만가'인 많은 직장인들이 더더욱 용기와 도전정신을 유지했으면 한다. 끝내 그 꿈을 포기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꿈에 도전하던 현재가 결코 후회하지 않을 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전 04화 나는 유튜브로 인생 멘터를 만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