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생긴 일 3
모로코를 간 이유는 순전히 사하라 사막을 가기 위함이었다.
이 전에도 사막을 간 적이 있다. 호주 중심에 있는 울룰루, 그리고 베트남에 있는 무이네 사막을 찾아갔었다
두 여행은 각각의 아쉬움을 남겼다. 울룰루에는 내가 기대했던 사구, 즉 모래 언덕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곳도 사구로 이루어져 있긴 하다. 다만 식물이 촘촘히 자라나 있어 땅에 단단하게 박혀있었다. 그건 내가 생각했던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언덕'은 아니었다.
무이네 사막은 내가 상상했던 사막의 모습이었다. 큰 모래 언덕이 있었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모래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그곳은 지나치게 관광지화 되어있었다. 내가 원하는 사막이 아니었다.
나는 사막에 사는 현지인들의 삶을 보고 체험할 수 있길 바랐다. 낙타를 타고 사막 위를 이동하며 사막에서 구하기 힘든 물이나 음식 등을 아끼기 위한 그들의 생활습관을 보고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 모든 과정이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이뤄지길 바랐고 그 과정에서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 하나 없는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의 사막 여행에도 불구하고 '진짜 사막 여행'은 이뤄지지 않다. 그것을 향한 나의 갈망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 갈증은 노르웨이에 교환학생으로 도착한 후에도 계속되었고, 모두가 향하는 유럽 대신 모로코행 비행기 표를 가장 먼저 끊게 만들었다.
내가 끊은 건 2박 3일짜리 사하라 사막 투어였다. 마라케시와 사하라는 거리가 꽤 있기 때문에 사하라에 도착하는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사하라까지 가는 길에는 작은 마을 투어가 몇 군데 예정되어 있었지만,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의 목적은 오직 시하라. 그 외에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그 마을들에서 나는 현지인들과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그들을 순수한 현지인이라고만 칭하기는 애매했다. 그들은 모두 마을 투어를 돕는 안내자로서 마지막에는 몇 유로의 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설령 우리가 들른 곳들이 할리우드 촬영지로 유명한 어느 모로코 마을, 그리고 카펫 제작 판매를 주로 하는 마을 상점들이었음에도 나는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령, 카펫 상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좁은 골목을 지나 어느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좁디좁은 계단을 올라 도착한 곳은 그들이 카펫을 짜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히잡으로 얼굴과 몸을 꽁꽁 둘러싼 여자 몇 명과 터번을 쓴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우리는 좁은 방에 둘러앉았다. 남자는 여자들에게 지시해 카펫 몇 개를 중간에 깔아 두라고 이야기한 후, 우리에게 카펫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역사가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주위의 여자들은 말없이 그의 지시에 따라 카펫을 이리저리 옮기거나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었다.
카펫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는 카펫이 모두 여성들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수 세대에 걸쳐 어머니가 딸에게, 그 딸이 또 자신의 딸에게 카펫을 짜는 비법을 전수해 주며 이어져 왔다고 덧붙였다.
히잡, 그리고 무슬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가부장제와 여성 억압이다. 카펫 제작이 여성들에게서 대를 이어 온 기술임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남자를 보며, 나는 조금 슬퍼졌다. 이곳에 사는 여성들의 삶이 보였기 때문이다.
카펫 제작은 여성들의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이 마을에서 그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집안일 외의 거의 유일한 활동이었다. 그들의 자기표현은 카펫에 사용하는 염료 된 양모 몇 줄을 직조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먼 과거의 일 정도로만 느껴지는 이 상황이 여기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조금 슬퍼졌다. 동시에 내 주변에 있는 여성들의 삶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을 떠나며, 나는 이곳 여성들의 삶에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동시에 내가 원하던 '현지인의 삶'의 단면을 보았음에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사막은 이 마을보다 훨씬 더 고립된 공간이니, 그곳에서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현지인의 삶과 더욱 깊숙이 맞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더 차올랐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작은 차 안의 웅성웅성한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가이드는 마침내 사하라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드디어, 사하라라니.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차에서 내리자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보였다. 누군가 '이곳부터 사막이에요'라고 정해둔 것처럼, 그저 평범한 흙바닥이 계속 이어지다 어느 순간부터 붉은 모래가 잔뜩 쌓인 사하라 사막이 시작되었다.
내가 정확히 어떤 모습을 사막의 시작일 것이라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모습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나는 뭔가 서서히 시작되는 모습을 예상했었다. 조금씩 모래의 색이 바뀌며 모래의 양이 많아지는 모습 같은 것. 내가 맞닥뜨린 모습은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든 사막의 모습은 내가 바랬던, 그리고 꿈꿔왔던 사막의 모습이었다.
투어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사막 바로 앞까지 달려갔다.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버스에서 내려 사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옮기자 줄지어 앉아있는 수십 마리의 낙타들이 보였다. 오늘 우리가 탈 낙타인 듯했다. 낙타의 수는 굉장히 많았다. 어림잡아 50마리는 되는 듯했다.
내가 신청한 투어의 전체 인원이 15명 정도였기에 낙타가 저렇게 떼로 모여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투어 차량들이 도착했고 수십 명의 관광객들이 사막으로 걸어 들어왔다. 서너 개의 투어 그룹이 함께 낙타를 타고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낙타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가까운 낙타 옆으로 다가갔다. 낙타의 움푹 들어간 등골 위에는 낙타를 타는 사람을 위한 두꺼운 방석과 헝겊, 그리고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주 어릴 적, 가족끼리 태국여행을 갔을 때 운동장 반 만한 우리 안에 있는 코끼리를 탔던 기억이 겹쳐졌다. 이 모든 장치들은 수백 수천 명의 관광객을 가장 편하고 안전하게 태우기 위해 만들어진 '탈것'의 흔적이었다.
기분이 묘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그저 이 모든 게 신기했다. 그림으로만 보던 낙타를 실제로 보고 만지는 것도, 내 예상보다 훨씬 큰 낙타의 크기에 놀라는 것도, 그 커다란 낙타가 나를 태우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뒷발을 먼저 드느라 손잡이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 중심을 잡은 것도, 그 모든 게 신기하고 짜릿했다.
나는 비교적 일찍 낙타에 올라탔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낙타에 올라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개개인이 낙타를 타고 사막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낙타들은 튼튼한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 낙타의 뒷다리에 매인 밧줄은 바로 뒤 낙타의 목에 걸린 줄과 이어졌고, 그 낙타의 뒷다리에 매인 밧줄은 그다음 낙타의 목에 걸린 줄과 줄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점점 낙타투어가 낭만적인 사막 투어보다는 거대한 관광 산업의 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는 낙타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며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내 바로 뒷 낙타에는 같은 투어 일행인 독일인 커플이 타고 있었다. 내 뒤에는 여성분, 그리고 그 뒤에는 남성분이 탑승해 있었다.
처음 몇 분은 괜찮았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사하라 사막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줄에 묶인 낙타들은 낙타몰이꾼이 모는 대로, 한 마리씩 일렬로 천천히 모래 위를 밟아 나갔다.
그렇게 큰 언덕 두 개 정도를 지나쳤을 무렵, 남자분이 곤란해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남자가 탄 낙타의 뒤에 있어야 할 낙타가 그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 그의 허벅지 부분에 맴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낙타는 정상이 아니었다. 거품을 문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으며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낙타가 머리를 그의 다리 쪽으로 향할 때마다 낙타의 침이 그의 바지에 흠뻑 묻어났다.
나를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이 웅성대자 낙타몰이꾼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말썽을 불이는 낙타를 그저 뒤로 몰며 그의 엉덩이를 몇 번 때렸다. 낙타는 그가 미는 대로 뒤로 밀려나 제자리로 갔다. 몰이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맨 앞으로 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낙타가 한 둘이 아니었다. 나중에 투어 일행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다른 한 분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일행만 했을 때도 두 명이었으니 아마 모든 낙타를 고려했을 땐 최소 7-8마리가 말썽이었을 것이다. 낙타의 지친 모습은 단순히 낙타몰이꾼의 관리 소홀이라기보다는, 수많은 관광객을 등에 싣고 하루에도 같은 사막 길을 수십 번 왕복했을 낙타들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낙타 행렬이 멈춘 곳은 베이스캠프 앞이었다. 베이스캠프에는 커다란 텐트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길들은 사람이 걷기 좋게 평평하게 가꿔져 있었다. 날이 어두워짐에 따라 길가에 설치된 조명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그 가운데에는 푹신한 매트리스와 이불이 마련되어 있었다. 겉은 천막 텐트처럼 보였지만 안을 들어가 보니 금속 프레임이 단단히 구조를 받치고 있었고 바닥은 콘크리트로 깔려 있었다. 한편에는 충전을 위한 콘센트도 있었다. 결코 완벽하게 편안하거나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진정한 의미의 천막이 아니었다. 유목민의 전통을 흉내 내어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인위적인 구조물에 불과했다. 호주에 있는 울룰루쪽 사막에 갔을 때, 그저 침낭 하나에 의존하여 쏟아질 듯한 별을 지붕 삼아 사막 한가운데에서 잠을 청했던 경험과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사막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화된 사막이었다.
저녁식사 후, 벽돌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대충 몸을 씻고 나오니 베이스캠프 가운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다가가보니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로 현지인들이 북을 치며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쯤 되니 그 마저도 모두 관광객의 '체험'을 위한 쇼처럼 느껴졌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우리는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베이스캠프 앞에는 어제 우리가 타고 온 낙타 무리들이 다시 줄지어 앉아있었다.
나는 낙타를 타고 다시 어제와 같은 길을 걸었다. 이번에 나는 낙타 행렬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었다. 앞으로 줄줄이 연결되어 사막을 터벅터벅 걷는 수많은 낙타를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고대했던 사하라 사막 투어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진짜 사막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나는 사막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쇼에 있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문명의 개입이 거의 없는 사막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나는 그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도 그곳에서의 삶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나라들, 다른 장소들보다 사막에 사는 이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베일에 쌓여있는 만큼, 사막에서의 삶에는 수많은 낭만적 편견이 덧씌워져 있다. 그 낭만을 파는 것이 그 무엇보다 돈이 되기에 이곳 사람들은 본인들의 실제 삶 보다 낭만을 팔고 있었다.
물론 사막에서의 삶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삶을 보는 것이 힘든 것일 수도 있다. 현지 식당을 찾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가축을 돌보고, 생존을 위해 이동하며 가장 최소한의 것들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깊숙한 삶을 엿보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내가 한 여행의 방식과 접근은 너무나 피상적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짜 사막은 완벽한 외부인인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사하라 사막 투어에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막이라는 낭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사막을 가겠다는 욕심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그 욕심 자체가 이미 관광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사하라 사막 투어가 진짜 사막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투덜대고 있지만 사실 내가 원했던 사막의 이미지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막을 도착하기 전까지 나를 이끌었던 사막의 모습은 그곳에 닿는 순간 신기루였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진짜 사막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 신기루를 좇는 나의 욕망 속에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