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를 웹툰으로 만난다
단오는 농경사회에서 모내기를 끝낸 농작물이 막 자라기 직전 휴식을 겸해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를 벌이는 중요한 날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많이 사라진 이 단오 풍경을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단오제를 소재로 한 웹툰 <단오에 오신(神)>과 함께 강릉단오제 유적지들을 훑어 올라가 본다.
<단오에 오신(神)!>과 강릉 단오제
<단오에 오신(神)!>은 2018년 2월 27일부터 15주에 걸쳐 매주 화요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연재된 웹툰이다. 제목에서 보이듯 강릉단오제의 세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대관령 성황신과 대관령 산신 그리고 대관령 여성황신이 단오제가 열리는 강릉의 축제 현장에 인간 모습으로 ‘오시며‘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이유에선지 대관령 산신이 제정신을 못 차리는 일이 벌어지고, 산신의 건강 상태가 곧 대관령 일대 인간 세상의 평화와 직결됨을 알고 있는 성황신과 여성황신 부부는 사태를 해결해 단오제가 무사히 열릴 수 있게 하려 한다. 하지만 산신을 쓰러뜨린 건 강한 액운을 담은 잔으로, 산신을 향한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범인은 대관령에서 산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해를 입힐 수 있는지까지 잘 아는 자일 터. 하지만 아직 범인의 꼬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단오제가 열리던 강릉 일대가 삿된 기운에 휘말려 난리통으로 변한다. 과연 성황신과 여성황신은 산신에게 액운을 먹인 장본인을 찾아내 대관령과 강릉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단오에 오신(神)!>은 이렇듯 대관령 성황신과 여성황신, 산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인간 세상의 안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담은 만화다. 문화재청의 의뢰로 제작된 작품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강릉단오제의 내용과 연원 등을 만화 속 묘사와 자투리 정보로 소개한다는 목적에 충실하게 구성돼 있다. 하지만 대관령의 신들이 현재의 인간 모습으로 내려와 인간 속에 섞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통해 만화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신이 된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
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관령 성황신과 여성황신 그리고 산신은 대관령 일대의 안녕을 관장하는 신이지만 또한 모두 실존 인물들이 죽어 신으로 받들어졌다는 점에서 인간과 신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은 한국 신화의 원형적 특징을 잘 담고 있다.
대관령 성황신은 신라 말을 살았던 강릉 학산 출신 고승 ‘범일국사’, 대관령 여성황신은 조선 숙종 대에 강릉 경방에 살았던 초계 정씨 집안 21대손 정완주와 어머니 안동 권씨의 외동딸 ‘정씨 여인’이 신격화한 존재다. 설화에 따르면 범일은 어머니가 처녀의 몸으로 우물가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니 바가지 안에 해가 떠 있었는데 이를 마시니 처녀의 몸으로 잉태해 낳았다는 탄생설화가 있다. 굴산사에서 수행하다 왜구가 쳐들어오자 도력으로 강릉을 지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정씨 여인의 경우 정씨 여인의 아버지의 꿈속에 대관령 성황신이 나타나 딸을 달라는 말을 했고, 이를 거절했더니 며칠 후 보름달이 뜬 밤에 성황신이 보낸 호랑이에게 잡혀갔다. 아버지가 대관령 국사성황사에 가 보니 딸은 이미 혼이 나간 채 비석처럼 굳어 서 있었고 화공을 불러 그림을 그려 세우고 나서야 발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날이 보름인 음력 4월 15일로, 이후 정씨 여인은 국사여성황으로서 국사성황 범일과 부부로서 함께 추앙받게 된다.
대관령 산신은 국사성황인 범일국사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인물인 김유신이다. 신라의 장군으로서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자 강릉에 주둔하며 말갈족을 평정하고 죽어선 대왕의 존호를 받기까지 했던 인물로 앞 두 인물이나 신라 왕들은 몰라도 김유신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유명인사다. 어릴 적 명주(지금의 강릉)에 유학 와 생전에 당시의 대관령 산신에게 검술을 전수 받았다는 설도 전해져 오는데 죽어서는 본인이 대관령 산신이 되어 역시 강릉과 대관령을 지키고 있다 여겨진다.
불가의 고승이 신격화하여 단오에 호환을 당한 여인과 합사하고 유교식 제례를 받는 모습이 참 재밌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역사적으로는 강릉과 강원도 영동 일대의 정신적 지주로 고려가 건국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향토적 맥락과 더불어 조선 후기 들어 단오제를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산신제에서 강릉 출신인 범일을 중심에 놓은 성황신제로 바꾸어 지역민의 구심점으로 삼으려 한 결과물일 것이라는 추정이 존재하고 있다.
만화를 따라 강릉단오제 유적지 답사하기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칠사당에서 신에게 바칠 신주를 빚는 일로 시작한다. 음력 4월 15일 대관령 산신제와 대관령 국사성황제를 치르고 대관령 옛 길을 통해 강릉으로 모셔 와 남대천변의 국사여성황사에 합사를 한다. 이어서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통해 두 신을 남대천 굿당으로 모셔 음력 5월 5일부터 7일까지 단오굿과 잔치를 벌이는 구성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 국사성황제와 국사여성황사 봉안제 사이에는 대관령 옛길에 자리한 구산서낭당과 범일의 고향인 학산마을의 학산서낭당에서도 잠시 머무르며 제를 지내게 되며, 영신제와 단오굿 사이에는 정씨 처녀가 살았다는 경방댁에서 잠시 제를 지낸다. 따라서 유적 답사는 ① 대관령 산신당 ② 대관령 국사성황사 ③ 구산서낭당 ④ 학산서낭당 ⑤ 대관령국사여성황사를 거쳐 ⑥ 경방 ⑦ 강릉 남대천으로 마무리하게 되며, 이 모든 과정의 시작점인 신주 빚기 장소인 ⑧ 칠사당까지 구경하면 대체로 내용을 모두 챙겨보았다 할 만하다. 만화는 단오제가 진행되는 강릉 시내의 남대천변에서 시작해 대관령 산신당, 국사성황사, 남대천, 학산마을 등을 두루 담고 있으므로 만화 속 장면들과 함께 맞춰 봄직하다.
먼저 대관령 산신당과 대관령 국사성황사는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릉단오제가 강릉에서 열리지만 산신당과 국사성황사는 소재지가 강원도 평창군(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마루길 527-35)다. 양떼목장 근방에 자리하고 있어 양을 보러 가는 길에 들러 봐도 좋을 만하고, 워낙 고지대라 양력 4월 20일에 들렀을 때에도 눈이 녹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곳에선 김유신과 범일국사의 초상을 만날 수 있으며, 뒷산에는 단오 때 신목으로 쓰이는 나무들이 울창하다. 흔히 종이컵에 초를 꽂거나 향을 피우는 형태로 제를 올리는 게 일반적이나 이곳에서는 절대로 불을 쓰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최근 속초와 강릉 일대를 태운 산불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불을 쓰지 말라는 대목은 만화에서도 산신과 관련한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대관령 꼭대기와 고갯길 시작점인 구산의 가운데에 자리한 옛 주막자리 ‘반정’에도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
대관령 고갯길의 시작 즈음에 자리한 구산서낭당은 강릉국도관리사무소 건너편(강원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556)에 자리해 있다. 큰 안내판이 없어 차 안에서 운전 중 발견하기는 없지만 작은 서낭당이 마련돼 있다. 누군가가 이곳 서낭신에게 무언가를 빌고 사탕을 놓고 간 모습이 이채로웠다.
범일국사의 고향인 학산마을의 학산서낭당은 서낭당 바로 앞까지 차들이 들어차 있는 등 관리가 다소 안 돼 있는 인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유적 안내판에 적힌 주소도 잘못 적혀 있어 찾기 힘들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지도 앱을 쓰는 이들은 안내판에 적힌 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72-2가 아닌 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951-15로 찾아가야 한다. 원형으로 두른 돌담에 신목과 작은 돌 제단이 놓여 있는 구조여서 볼품은 다소 없다. 다만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지 말고 조금 더 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강릉 단오제 유적 코스로 안내된 내용에는 없는 곳이 나타난다.
바로 범일국사의 어머니가 바가지에 해가 뜬 물을 담아 마셨다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했다는 우물, 그리고 그 어머니가 아비 없는 아이라며 범일을 버렸다는 학바위가 있다. 학이 버려진 범일에게 붉은 열매를 먹이며 보살피고 있더라 하여 이름 붙은 학바위는 작은 이정표와 안내판이 있긴 하지만 좁은 산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산행을 해야 나타난다. 학바위로 가는 산 입구 옆에는 범일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강릉 굴산사지 승탑(부도탑)도 자리하고 있다. 우물은 <단오에 오신!>에서 악령을 막다 쓰러진 성황신 범일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산신인 김유신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이 두 곳을 보고 나면 역시 안내코스에는 없지만 범일의 흔적이 남은 곳을 더 보고 가는 게 좋다. 학산서낭당에서 차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굴산사지 당간지주(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181)와 석불좌상(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70-79)이 그것이다. 굴산사는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현재 터만 남아 있지만 절의 당간을 걸어놓는 당간지주의 위용과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석불의 위치까지 감안하면 그 시기 절의 크기와 위세를 짐작케 한다. 다만 석불좌상은 얼굴의 형체가 없는 등 훼손이 심해 조선 대 숭유억불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성황신의 흔적을 보았으면 이제 부인인 여성황신의 차례다. 대관령 국사여성황사(강원 강릉시 경강로1804번길 12-12)는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가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다른 남자와 혼례 치르고 가야 할 집이 너무 멀어 잠시 경방에 머물렀다가 호랑이에게 업혀 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실존 인물 정씨 여인에게는 다소 얄궂은 운명이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신격화한 정씨 여인은 국사성황신과 부부로서 이곳에서 1년에 한 차례 합사되며 추앙을 받고 있다. 비록 문이 닫혀 있어 초상화는 구경할 수 없었으나, 남정네들(?)의 공간이었던 대관령 산신당과 국사성황사에 비해 한결 단아하고 정갈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 게 재밌었다.
음력 4월 15일 합사한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은 이곳에서 5월 3일까지 머물다 정씨 여인이 머물렀다는 친정집 경방에서의 간단한 제를 거쳐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으로 향한다. 역시 남대천 옆에 자리한 경방댁은 현재는 정씨 집안이 아닌 최씨 일가가 살고 있는 사유지여서 들어갈 순 없고 다만 자택의 외향은 멀리서 구경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영신제 때 두 신은 각자 친정이자 처가인 이 경방댁에 들러 현 주인인 최씨 일가가 마련한 제물을 맞는다고 한다.
남대천은 대관령에서 발원해 강릉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동해로 향하는 하천이다. 강이 아닌 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하류인 강릉시내에 이르면 상당히 넓은 폭을 보여준다. 표표히 흐르는 물살을 끼고 시장을 비롯해 다양한 강릉의 의미 있는 공간들이 펼쳐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전쟁과 산업화 시기 구습으로 내몰리며 전국 곳곳의 단오제가 사라지던 가운데에서도 강릉 시민들과 무속인들은 남대천 곳곳에서 작게나마 강릉단오제의 갖가지 풍습들을 이어 왔다고 전한다. 그런 노력 덕에 강릉단오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남대천과 강릉 일대에서 40여 일을 진행한 단오제는 단오제 마지막날인 음력 5월 8일 신들을 제자리로 모시는 송신제와 사용한 물품들을 남대천에 모아 태우는 소제를 끝으로 마무리 짓게 된다.
단오제 유적지들을 꼼꼼하게 살핀 후 단오제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칠사당에 들렀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에 자리하고 있는 칠사당은 조선시대의 관공서로 호적,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 등 일곱 가지 업무를 관장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강릉 칠사당은 몇 차례 고쳐 짓고 타고 다시 짓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수비대가 쓰기도 했고 광복 이후 1958년까지는 강릉군수, 시장의 관사로 쓰이기도 했다고 하니 비교적 근래까지 쓰인 공간이라 할 만하다. 성황신과 여성황신을 모셔오는 일을 대대로 강릉의 장이 해 왔다는데 그런 연유로 단오제의 시작점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7호로 강릉시 명주동 38-1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