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지향적 문화에 들어온 낯선 단어, 자존감
‘자존감이 높다.’, ‘자존감이 낮다.’라는 말이
나는 늘 불편했다.
높고 낮음이라는 형용사가 주는 인지 편향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마치 수직으로 배열한다. 이 표현 속에서는 어느새 자기 존중의 감각마저 비교와 서열의 언어로 번역된다.
겸손이 미덕이라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은 더 이상 성숙이 아닌 위축된 약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https://youtu.be/RX3Na66FSXU?si=j0fzhuBsU2QSIzam
14:18-17:10 구간에서는 호스트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게 왜 한국 사람들은 미국 힙합처럼 자기 과시를 덜 하고, 겸손하냐는 질문에 뮤지션 박재범은 한국 사회의 겸손 문화를 역사적 배경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뮤지션 박재범의 말을 요약하면,
“한국은 식민 지배를 겪었고, 한국어 사용까지 억압받던 시기가 있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전쟁까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과 파괴가 있었고, 나라 전체가 다시 살아남고 재건해야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서 개인이 자신의 부나 성공을 크레 드러내는 행동이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썩 좋게 보이지 않았고, 함께 버티고 다시 세워야 한다는 집단적 정서가 강하게 형성됐다.”
즉, 한국인의 겸손은 단순한 성격 문제나 개인의 자랑을 억누르는 문화가 아니라, 식민지, 전쟁, 재건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생존형 집단 문화의 결과라는 뜻이다.
내가 경험한 자존감은 높고 낮은 것이 아니라 근육 같은 것이었다.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고, 어떠한 자극 때문에 잠시 무너질 수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들리기도 하고, 내가 어떤 감정선을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 담을 수 있는 감정의 무게도 달라진다. 그러나 무너짐과 회복, 주저앉음과 일어섬을 반복하는 동안 내면의 근육은 단단해진다. 중요한 것은 근육이 양이 아니다. 내가 나를 먼저 돌보고,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나를 먼저 아껴주는 감각. 그 감각이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이었다.
요즘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설명할 때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자존감이 높다. 자존감이 낮다.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일상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존감은 단순히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흔들릴 때, 비교에 쉽게 상처받을 때, 자기주장을 하지 못할 때, 혹은 관계 속에서 자꾸 위축될 때도 우리는 그것을 ‘자존감 문제’라고 한다.
물론 이런 설명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경험과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묶어버릴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상태를 지나치게 단순한 문제로 해석하게 된다. 사실은 관계 속 긴장이나 비교에서 오는 불안일 수도 있고, 사회적 평가에 대한 압박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곧바로 ‘자존감이 낮다’는 말로 설명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존감의 문제가 아닌 상황에서도 사람은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처럼 느끼게 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존감이 낮다”는 지적은 때때로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즉, 한국에서 자존감은 단순히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자기 가치감이라기보다 관계적 불안과 사회적 비교를 설명하는 말로까지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먼저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한자뜻을 보면,
자존감(自尊感), 自는 ‘스스로’, 尊은 ‘존귀하다, 존중하다’, 感은 ‘느끼다’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풀면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느끼는 감정, 또는 자기 존재에 대한 존중의 감각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단어가 원래 우월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존감의 핵심은 남보다 뛰어나 존중받는 감정이 아니라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기본적인 감각이다.
어째서 이 단어는 자기 평가적으로 쓰이게 된 걸까.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영어 self-esteem을 번역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self-esteem은 self(자기)와 esteem(가치 있게 여기다, 평가하다)이 결합된 말이다. esteem은 라틴어 aestimare에서 유래했는데, ‘평가하다’, ‘가치를 매기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self-esteem은 보통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하는 정도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마음이 내리는 기본적인 평가가 바로 self-esteem이다.
문제는 이 단어가 동아시아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겼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서양 학문이 일본을 통해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많은 개념어가 만들어졌다. 철학(哲学, philosophy), 심리학(心理学, psychology), 사회(社会, society) 같은 단어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self-esteem 역시 이 과정에서 번역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자존심(自尊心)이나 자존감정(自尊感情) 같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후 일본 서적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여기까지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번역 과정이었다.
자존감을 표현하는 형용사(높다, 낮다)도 high self-esteem, low self-esteem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번역에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표현은 1965년 심리학자 모리스 로젠버그가 사람의 마음을 설문 점수로 측정하면서 만든 자존감 척도(Rosenberg Self-Esteem Scale)이다. 여러 문장에 대한 동의 정도를 점수로 측정하고, 점수가 높으면 high self-esteem, 낮으면 low self-esteem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번역 그 자체보다 문화적 맥락에서의 해석 방식에서 생겼다.
서구 문화에서는 개인을 비교적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괜찮다”라는 자기 평가는 다른 사람과 비교되지 않아도 성립할 수 있다. self-esteem 역시 기본적으로 개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평가로 설명된다.
반면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자기 이해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역사와 문화적 관점에서 우리는 가족, 공동체,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아왔다. 이런 관계 중심 문화에서 ‘자기’라는 존재는 독립된 개체라기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쉬운 존재다. 자기 평가가 단순히 개인 내부의 판단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관계, 집단 안에서 더 강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높게 여긴다는 말도 개인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계적 비교의 맥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나를 높게 평가한다”라는 말은 관계적 위상, 즉 남들보다 나를 더 높게 본다는 의미로 해석된 것인데, 이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말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기울어져 생긴 결과다.
서구 사회에서는 긍정적 자기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같은 자기 긍정 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긍정적 자기감정은 소속감, 관계의 안정을 통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직접 높이 말하기보다는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너 정말 잘했다”라고 칭찬했을 때, 서구적 맥락에서는 “고마워, 나도 이번엔 꽤 잘한 것 같아”라고 자연스럽게 답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종종 “아니에요, 아직 멀었어요”, “운이 좋았어요”, “별거 아니에요”라고 한 발 물러서는 대답이 더 익숙하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말보다 자신을 낮추는 말이 더 예의 바르고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누군가 자신의 장점을 말할 때, 서구 사회에서는 그것이 건강한 자기 확신으로 읽히기 쉽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경우에 따라 자기 자랑이 심하다, 겸손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직접 말하기보다,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방식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다시 말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개인 내부의 선언이라기보다, “나는 이 관계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감각을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심리학 용어라기보다 문화적 번역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self-esteem이라는 개념이 동아시아의 관계 중심 문화와 만나면서, 겸손, 체면, 수치심, 비교 같은 다양한 감정들과 얽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이런 표현에 강하게 동의하는 것이 자기 과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결과 실제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설문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겸손한 사람조차 자존감이 낮아 보이는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차려야 할 점은, 하나의 번역된 단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self-esteem이라는 개념이 ‘자존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이후 우리는 비교에서 오는 불안, 체면이 흔들릴 때의 수치심, 타인의 시선에 대한 긴장까지도 종종 ‘자존감 문제’라는 말로 설명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