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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Nov 02. 2022

초단편소설집 <찬란한 타인들> 후기

은둔고수 유이월의 탁월한 이야기들에 대해

"당신은 찬란해요."


첫 소설집을 발간한 작가의 사인이 적힌 간지의 뒷면에는 그녀가 꾹꾹눌러쓴 사인펜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책을 한권 샀을 뿐인데 졸지에 찬란한 사람이 되다니. 혹시 위 문장 앞에는 '후기를 쓰기로 한'이 생략된 것 아닐까.

얼마 전, 책을 발간했다는 그녀의 포스팀에 꼭 후기를 쓰겠노라는 응원의 답글을 달았던 기억이 났다.


물론 인기있는 그녀의 담벼락엔 이미 수 많은 페친들의 빛나는 후기들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이미 찬란한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후기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서른 개나 되는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단숨에 읽었다. 초단편 소설이라 그랬다기보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한 걸음 바짝 다가서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이면을 우연히 보게 된 느낌이랄까. 면담용 직원명부에 적힌, 건조하기 짝이 없는 경력이나 학력 따위의 정보에서는 도저히 알수 없는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지 않나. 무언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더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어디선가 한번은 경험해봤음직한 묵은 기억의 그늘을 비춘다.


프로즌 요거트 위의 토핑 따위로 이별을 하는 제이미와 노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지는 샐리와 폴처럼 유이월이 창조해낸 인물들은 반투명 비닐같이 얇고 민감하면서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그녀의 인물들은 외롭다. 매일 배달되는 <장미와 와인> 키트에서처럼 누구도 예외없이 느끼는 외로움이지만, 그들은 '다만 살아있어서 발열하는 존재'를 넘어 '낱낱이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타인을 원하고 또 그리워한다.


그들의 타인은 우연히 시티타임즈의 기사에 실린 애덤과 같이 알다가도 알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고, 어느날 홀연히 떠나버린 스밀라 처럼 수습이 어려운 죄책감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타인은 부재함으로써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는 찬란한 존재들이다.


연애의 이야기가 많지만,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도 있다. 페이스북에서 보여주는 평소의 장난끼가 소설에 그대로 배어나온다. 어쩌다 물귀신이 된 사람이나 배꼽이 두개인 노리스케 가문의 이야기를 읽으며 큭큭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남편의 아이가 보낸 메일을 읽지 않고 걸려온 전화를 받을까 갈등하는 베로니카나 고된 육아의 끝에 락스와 화해를 하기에 이른 미라의 심경을 이처럼 섬세하게 묘사할수 있는 작가도 흔치 않다.


다양한 인물들이 마주하는 흔한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그의 내밀한 고민과 고유한 서사를 이렇게 짧고 예리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능력이다.


내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왜 나는 이런 글을 풀어낼 수 없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드는 열패감 때문인데 유이월의 글을 읽고나서도 어김없이 그랬다. 괜히 읽었다. 소설은 늘 읽고 후회하는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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