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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Mar 30. 2023

휴직의 사유

휴직 1주 차 기록




2023년 3월.


쉼 없이 달려온 10년 7개월 회사생활을 뒤로하고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휴직 시작 전 내가 가진 17개의 연차를 먼저 쓰고 휴직이 시작되기에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연차를 소진 중이다.)


쉬는 것도 쉬어 본 사람이나 쉬어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이 되자고 다짐했지만,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회사생활이 시작되기 훨씬 더 이전부터 인생에 온전한 쉼의 시간을 가져본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장학금을 못 받거나 과외를 하러 다니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할 것 같았던 대학시절, 불안함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2년간의 취업 준비, 어느 팀에서든 인정받고 싶고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늘 증명해야했던 회사생활, 일과 병행했던 대학원 생활까지. 빈틈없이 통제하고 야무지게 살아야만 마음이 편한 파워J인 나는 쉬는 것마저 잘 쉬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또 스스로를 괴롭히는 버릇이 나오고 있다.


올해로 결혼 7년차. 남편은 마흔, 나는 서른아홉이다. 서른둘, 서른하나에 만났던 우리가 벌써 둘이 합쳐 여든을 향해간다. 아직 우리에겐 아이가 없다. 확고한 딩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아이를 가지려고 열심히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우선 남편은 전적으로 나의 의사를 존중했고, 내가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이 들 때 까지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대학원 생활이 끝나면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물리적으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아주 큰 공포감이 사라지지 않았고, 내가 엄마로서 객관적으로 아이의 삶을 인정하고 바라봐 줄 수 있을지도 늘 의문이었다. (나중에 아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길게 포스팅 하려고 한다)


복잡한 마음을 멈추기 위해 다이어리를 펼쳐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난임휴직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 남편과 나, 모두 물리적으로 이제 적지 않은 나이다.

- 회사생활과 병행하며 아이를 가지면 좋겠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 과거에 원인 모를 자궁출혈로 입원도 했고,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

- 내가 아무리 무서워 한들 생긴 아이는 어떻게든 태어 날 것이고,

- 따뜻하고 현명한 남편과 함께라면 아이를 잘 키울수 있을 것 같다.

- 내 인생도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슬픔만큼 기쁨도 있었다.


난임휴직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도 한참 동안 회사에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자리를 지키고 싶은 (정확히 말하면 나의 부재로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 나의 마음이 오랫동안 충돌했다. 하지만 남편의 말과 팀장님의 말씀이 결정에 큰 힘이 되었다.


"사실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최근엔 우리에게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 어떤 결정이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그것만 존중하고 따를게"


"너가 빠지면 아쉽기는 하지만, 회사는 남은 사람들로 어떻게든 돌아가. 안 돌아가면 그게 이상한거야. 오히려 네가 한참 동안 회사에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니, 내가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 같아 미안하네. 어떤 결정이든 괜찮아. 지금은 너만 생각해. 상무님께서 혹시 안 된다고 하셔도 내가 잘 말씀드려 볼게"


그 동안 회사를 다니며 팀을 한 번씩 옮길 때도 팀장님께 어떻게 말씀드리지 수 백번 걱정하고, 절대 다른 팀에 보낼 수 없다는 팀장님, 상무님과의 팽팽한 기싸움에 밀려 주말부부도 한 적이 있고, 손 편지를 써서 설득하기도 했던 별별 기억이 다 있던 나는 이런 팀장님의 답변이 너무 고맙고 또 죄송스러웠다. (우리 회사에 이런 팀장님도 계시는구나.) 웃으며 휴직자를 보내주시는 현실 뒤엔 내 몫만큼의 일이 남게 될 텐데, 잘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주신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나의 용기만큼 명확한 것이 주변의 응원이었다. 그리고 늘 배려해준 남편에게 이젠 나도 배려하고 싶다. 오래 걸렸지만 이제서야 엄마가 될 준비를 시작해 보려 한다. (어렵지만) 편안하고 느슨하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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