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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Mar 30. 2023

각 잡고 아프기로 작정한 내 몸  

휴직 2주 차 기록




진짜 이제 회사 안 가도 되는데, 마음은 늘어져라 더 자고 싶은데, 자꾸만 일곱 시에 눈이 떠진다. 눈을 뜨면 목과 어깨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편두통, 알러지, 위염 (+이럴 때 꼭 생리통까지). 수년간 잔뜩 긴장했던 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작정하고 아프기 시작한다. '너 이제 아파도 쉴 수 있으니 내가 좀 마음 놓고 아파볼게'라고 몸이 말하는 듯 몰아치는 고통이었다. 그저 해방감으로 가득할 거라 생각했던 휴직은 수 군데의 병원투어로 시작하게 되었다.


"목이랑 어깨 너무 굳어있어요. 디스크 증세도 좀 보이는데.. 컴퓨터 하지 말고, 책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건강과 관련된 일은 '좀 지나면 낫겠지'에서 시작된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고통을 잊고 몰입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점심시간이나 업무시간에 병원 간다는 유난을 떨기 싫기도 하다. (그래 놓고 꼭 더 키워서 간다) 오랜 시간 모니터 두 개 중 하나를 오른편에다 놓고 사용했더니 몸이 뒤틀린 모양이다.


서른 한 살, 기능성 자궁출혈로 몇십 팩의 혈액과 혈청과 혈소판을 두 팔에 수혈받으며 한 달간 입원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는 원인을 찾지 못했고 (지금도 모르지만), 엄청난 양의 호르몬제와 철분제로 생사를 오고 갔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정상 수치의 반 정도밖에 몸에 피가 없어 병실에서 나를 지키던 엄마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시야가 흐려져 온 세상이 푸른색으로 보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퇴원한 다음날 바로 출근했던 나였다. 분명히 모두가 더 쉬다가 나오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나약해 보이기 싫다는 미친 생각으로 강행했던 것 같다. 하물며 다른 사람도 나를 챙기는데, 내가 나를 챙기지 않는 것에 너무 익숙했다. 요령 피우는 것은 곧 악이라 생각했던, FM 그 자체였다.


유전적으로 간이 좋지 않긴 하지만 술을 끊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는데, 그 입원의 기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후 술을 끊었고 실제로 8년째 금주 중이다. 그렇게 몸이 완전히 망가지는 혹독한 경험을 하고 음식을 철저히 챙겨 먹기 시작했다. 과일과 야채를 먹고, 밀가루를 멀리했다. 술은 끊었지만, 식습관은 유지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정신없이 아무거나 막 먹다가 또 마음을 다 잡고 조절했다가의 반복이다. (아직도 그러고 있다)


대부분의 업무가 그렇겠지만 내 업무는 갑자기 생겨나는 이슈에 대한 대응이 많고, 회사 외부와도 자주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있어서 늘 긴장감이 있다. 오죽하면 매일 아침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마 제발'이 내 기도 제목이었을 만큼. 스트레스와 긴장에서 나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상황이 이런 거야. 내가 컨트롤할 수 없어' 하며 너덜너덜한 멘탈을 합리화하며 살았다. 꼬꼬마 사원 시절보다는 요령이 생겼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 투성이다.


늘 마음이 분주하고, 생각이 끊이지 않는 피곤한 성격. 상대방 표정, 말투가 진짜 조금만 바뀌어도 바로 알아차리는 (아니 알아차려지는) 예민한 성격. 10년 차가 되어도 그저 성실하게 사랑받고 예쁨 받고 싶은 프로 직장러. 그래도 그 긴 시간 고군분투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켜냈다. 나 자신 스스로의 인정이면 충분하다.


몸과 마음들이 이제 날 좀 봐달라고 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루틴은 지키지 못할 때 더 괴로우니까.

우선은 이것만 할 거다.

아침 스트레칭, 산책, 주말 필테, 최소 한 끼 집밥 먹기, 비타민/엽산/따뜻한 차 챙겨 먹기 빠짐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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