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타로집이나 사주카페에 쓴 돈만 100만 원이 넘어갈 것 같다. 물가 상승률 반영하면 더 되려나. 결혼 후에는 재미로라도 그런 걸 믿지 않는 남편 + 결혼생활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에 관심사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친구들이나 회사 동기들이 잘 보는 곳이 있다고 하면 솔깃한다. 시간이 생기니 쓸데없는 생각도 같이 생겨난다. 최근에 또 친구가 잘 보는 곳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중이지만.
대학 시절, 친한 친구와 눈만 맞으면 유명하다던 타로집을 드나들었었다. 파워 짝사랑러이자 남친과 헤어지면 N년상을 치르는 나에게 나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질문은 '제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 사람 속마음이 궁금해요' '그 남자 다시 연락 올까요?' 같은 것들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카드를 몇 장 뽑으면 딱 봐도 거지 같은 카드들이 많이 나오긴 했었다.
"언니한테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사랑받고 있는 여자가 그걸 물으러 타로를 보러 갈 리 없다. 하긴 그 남자가 확신을 줬다면 내가 그 타로집을 안 갔겠지. 그 타로언니들이 용했다기보다 내 얼굴에 써져 있었을 거다. 전전긍긍이라고.
한창 취업 준비하던 시절에 만났던 사주 할아버지는 (지금도 좀 소름 돋긴 한데) 스물여덟은 되어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했었다. 스물다섯에 그 말을 들었으니 절망스럽고 온몸에 힘이 다 빠졌었던 것 같다.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살겠다고 정말 열심히 취업준비를 했지만 (실제로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엔 40군데 가까이 면접을 봤지만 최종적으론 합격이 되지 않았고, 두 군데서 인턴을 했지만 정직원 전환도 안되었다.) 진짜 그 할아버지가 말한 시점이 되어서야 취업을 했다.
'헐 미친. 진짜 맞췄네 이 할아버지?' 나는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더 사주를 믿게 되었다. 친한 회사 동기들과 사주는 몇 번 보다 보니 이제 대충 내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도 아는 경지까지 갔다.
"물로 태어났는데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나보단 남을 많이 챙기는 성격이야. 내가 가진 기운이든 돈이든 많이 나눠줘야 해. 그래도 본인이 나눠줄 만큼 능력이 되니 좋은 거지"
"일 복이 참 많다 못해 터져 버렸네. 마음먹으면 80살까지 일 할 수 있겠어"
"야망 있고, 욕심, 생각, 걱정도 많아"
"나중에 아기 낳으면 스카이캐슬 염정아처럼 될 수도 있어. 애한테 집착하면 안 돼"
"남편이 귀인이네 (나랑 결혼해줘서 고맙다 오빠..ㄷㄷ)"
어딜 가든 저런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한다.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태어난 날에 따라 저렇게 사람의 성격과 인생이 나타나는 출생바코드가 신기하기도 하고 억지 같기도 하다.) 손을 귀에 대면 베일 정도로 얇아 대부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나로서는 좋은 말도 안 좋은 말도 다 흡수해 버리기에, 가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듣고 올 때면 그 이야기들을 비워내지 못해 부정적인 생각이 끊이지를 않았다.
왜 그렇게 끊임없이 미래를 알고 싶었을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 소중한 내 앞의 삶이 궁금하고, 또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던 거다. 소중한 나에 대해 소홀하기 싫고, 촘촘히 잘 대비하고 싶은 마음. 자기 사랑. 그거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지금부터 살아갈 날들이 더 좋다'는 책 구절처럼, 돌아보면 정말 늘 그랬다. 앞으로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에 대한 믿음이 늘 그 순간 일정 강도의 고통도 잘 지나오게 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이 있어서 지금의 휴식도 주어졌을 테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고 친구에게 사주 보러 안 가겠다고 해야겠다. (따라는 가 줄게..) 사주나 타로는 이제 안 볼 거다. 단돈 몇만 원에 내 인생을 맡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방패막 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