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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Mar 30. 2023

제발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을까

휴직 4주 차 기록




"한 달 정도는 이유 없이 마음이 분주할 거예요"


나보다 먼저 휴직을 경험했던 회사 직원이 휴직 전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직원은 휴직 기간 중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한국사능력시험 책도 샀다고 하며, 필요하면 빌려준다고도 했다. K-직장인인 우리는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같아 애석했다.


평일 아침, 늘 반복되는 기상 시간, 오전 업무, 점심, 오후 업무, 퇴근, (특정시기 야근), 저녁, 소파에 널브러져서 유튜브 아니면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 죄의식이 느껴지면 산책, 잠. 그것만이 전부였던 삶이었다. 연차를 쓰거나 여름휴가가 아니라면 평일 햇볕은 점심시간에만 잠깐 쬘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이 남아도는 시간이 주는 느낌이 얼마나 생경하고 낯선지. 분주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잠시 때리는 멍도 죄스럽게 느껴졌다.


맞벌이를 하다가 외벌이가 된 남편 (회사 난임휴직은 무급이다) 이 정말 돈 생각하지 말고 쉬라고 했지만 매달 나가는 대출원금과 이자, 아껴 쓰지만 그래도 더 줄여야 할 것 같은 생활비 등 고정비용을 생각하면 내 연봉이 자꾸만 기회비용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아이를 가지겠다고 마음먹었고 결정했던 건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확고한 것이었기에, 이내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남편에게도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늘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만들어 놓겠다고 다짐했으니 :)  


회사에 다닐 땐 평일에 백화점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나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 어떤 사유로든 일을 하지 않고 평일에 밖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러웠다. 그 팔자 좋은 사람들 대열에 나도 들어선 것이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경의선 숲길을 걸어 홍대입구를 찍고 돌아오거나, 물을 보고 싶은 날은 한강 근처를 걸으며 양화대교를 조금 못 가서 돌아오고, 어떤 날은 덕수궁 돌담길도 걸어본다. 집에 오면 늦어도 3시, 4시. 매일이 토요일과 일요일 같은데 달력을 보면 평일인 그런 상황. 정말 호사스럽다.


남편도 이직을 위해 6년간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4개월 정도 쉬었던 경험이 있다. 남편은 3주 동안은 몸이 회복되고, 2달 정도 지나니 정신까지 완전히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세상 조급한 나와는 달리 남편 특유의 그 인생 2회 차 같은 여유로움이 있는데, '넌 10년을 넘게 일했으니 아직도 몸이 더 회복되어야 하는 단계다. 잘 쉬어줘'라고 말해준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걱정하는 나에게 매뉴얼을 던져주니 그나마 가이드라인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가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반복된다. 무언가를 시작하더라도 비장해지지 말자고도 계속 다짐한다. 이번만큼은 성과로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에만 집중하자.

하려고 하지 말고, 하지 말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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