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가도 갑자기 확 정이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갑작스럽게 꼴 보기 싫어진 인스타그램의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앱을 지움으로써 싸이월드를 시작으로 거의 20여 년간 해왔던 각종 소셜미디어 사용을 마감했다. (메신저의 기능을 하는 소셜미디어인 카카오톡도 없애버리고 싶긴 하지만, 최소한의 연락 수단으로 보편화되어있으므로 제외-) 그렇게 다시 로그인하지 않은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인스타그램이 갑자기 확 싫어졌다지만, 세상에 한 번에 싫어지는 건 없다고 믿는 1인으로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얻게 되는 별로인 감정들이 살짝씩 금을 만들었고, 그 얇은 금들이 작은 수준의 자극으로도 큰 균열을 만들게되었던 것 같다.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글을 쓸 수 있는 각종 소셜미디어들은 기록을 좋아하는 나에겐 그 간 오프라인에 쓰던 일기를 대체할 수 있는 정도의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팔로워, 일촌과 같은 부가적인 서비스들탓에 점점 관계를 확인하는 곳이 되었고, (이렇게까지 말하면 조금 아니 많이 찌질해 보이기도 하지만) 댓글을 주고받으며 관계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누가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수시로 확인하기도 하고, 댓글이 안 달리면 '내 글이 별로인가' 생각하게 되고, '혹시 내가 친한 친구들의 게시물에 좋아요 누르는 걸 빼먹어서 서운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라며 타인의 마음을 내 멋대로 근거 없이 추측하기도 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생각했었나 싶어 다시 생각해도 찌질하지만, 이 마음이 진심이었던 날들이 있었다.)
사소한 것에서도 주눅이 잘 드는 편이고, 자신을 수시로 채찍 하는 성향인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옥의 늪이었다. 분명 타인들도 나처럼 그 네모 칸에 올려도 될 만한 괜찮은 순간들과 좋은 표현들만 요리조리 선별해서 포스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부분만 크롭되어 담긴 타인의 행복과 평범한(또는 지옥같은) 순간의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하루를 온전히 기분 좋게 살아낸 날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 피드를 쓱쓱 올리다 보면 남들에 비해 나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더 괜찮아져야만 할 무언가를 갈구하는 감정이 들었다. 내 주변도, 더 나아가 그 주변의 주변도. 그 네모 칸 안엔 멋지고 잘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결정적으로, 점점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의 포스팅 까지도 무분별하게 접하게 되면서 엄청난 피로도와 지침을 느꼈던 것 같다. 저마다 쏟아내는 감정들, 음식들, 자랑거리들. 그들도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을 채우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간 내가 소셜미디어를 별로인 감정으로 사용했을 뿐이지 이 감정을 보편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게 각자의 삶을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주변인의 일상을 알고 싶지도 않고, 내 일부의 행복만 잘라서 공유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에서부터 저 위에 길게 나열해 놓은 별로인 순간들과 한심함까지. 이 모든 감정을 그만두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만두면 되는 것이었다. '정신 차리고 나를 아끼자. 다른 사람 말고 나에게 잘 보이자' 생각하는 순간, 의외로 로그아웃 버튼을 쉽게 누르고 앱을 지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젠 2년이 다 되어가니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들어가 보고 싶어도 로그인이 안된다.)
그만둠의 효과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우선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주변과 불특정 다수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네모 칸 안의 세상만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되었다. 그 속에 넣기 위한 사진과 글들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세세한 감정까지 타인에게 공유하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보다 매 순간 내가 나를 이해하는 마음이 소중해졌다.
끊임없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살며 연락을 놓지 못하고, 좋은 사진을 담아내려 사진을 마구 찍어댈 때도 있었지만, 휴직 덕에 카카오톡 알림도 꺼 두었고,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해 놓을 때도 자주 있다. 관계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만 했는데도 하루에 주어지는 시간이 더 늘어난 느낌이다.
오프라인 일기는 종종 쓰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체계는 없었기에, (내 기준의) 괜찮은 생각과 마음을 기록할 플랫폼을 찾아다니다 발견한 것이 브런치였다. 가입은 오래전부터 해 두었지만, 휴직 전엔 도저히 마음에 드는 글을 써 내려갈 여유가 없었고, 그저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기웃거리는 수준이었다. 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만에 작가 선발이 될 리가 없지'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지만, 감사하게도 나만의 글이 아닌 작가로서 글을 발행하며 구독자 분들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극소수의 지인들에게만 작가에 선발된 사실을 알리고 글을 쓰던 어느 날, 친한 동생이 '언니 브런치엔 왜 댓글창이 없어? 댓글 쓰려고 했는데 안 써지더라.' 하며 물어왔다. 사실 나는 모든 발행된 글에 댓글 쓰기 허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찌질한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댓글 알람이 오는 순간 겁을 먹고 모든 글의 댓글을 쓰지 못하도록 설정을 바꿔 두었다. 예전의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서 좋아요 숫자나 댓글에 집착할 것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댓글이 달리면 내 글에 대한 애착이 생겨 더 잘 쓰고 싶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겨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고, 댓글이 안 달리면 안 달리는 대로 무플에 대한 집착이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 간 없었던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글쓰기에 크게 소질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됐다. 이곳(브런치)에서 만큼은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쓰는 글이 아니니 조금은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잘하기보다는 편하게 해도 되지 않을까. 최소한의 건강한 소통은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브런치에서 공감되는 작가의 글을 만나면 가끔 댓글을 달기도 하는데, 진심이 담긴 공감과 응원의 댓글을 쓰고 나면뭔가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시작으로 나도 내 글의 댓글 쓰기를 허용하기로 했다.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기분을 가져다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