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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01. 2023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재재


어느 시에서 화자는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 했다. 부대끼는 바람에도 스물셋 청년은 잘도 자라나 시를 읊었다. 새삼 나를 이룬 것들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잠귀가 밝은 건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친구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이었고, 기민한 눈치는 유치원 때부터 왕비와 하인을 자처하던 동화 속을 살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모의 인정에 대한 목마름은 생전 나의 조부모와 식구로부터 철부지로만 여겨지던 나의 부의 억울함의 발현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씩 따지고 보면 나에 대한 긍정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 가지, 남들에 비해 유난히 발달된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수록 괴롭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틈에서 구겨지지 않고 설령 뜨겁게 데도 금세 새살이 돋는 이유는, 여전히 기대하는 이유는 내게 믿을 만한 사람들이 고유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내가 ‘자화상’이란 시를 읊는다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재재다.’



재재는 두 사람이다. 쌍둥이는 아니나 내게 한 세트인 사촌 오빠 둘. (이름이 '재' 자 돌림이라 재재라 하련다. 한 명을 지칭할 땐 '재'만 쓰겠다.) 재재는 내가 눈을 떴을 때부터 곁에 있었다. 친형제자매 사이는 아니나 마을버스가 오가는 거리에 살았기에 우리는 포대기에 쌓였을 때부터 자주 만났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인간관계는 재재에게서 충족했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다. 집 근처 산 중턱에 있는 절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이었다. 어느 날은 하원 시 나는 작정하고 거짓말을 했다. 지금도 그날 봉고 안을 가득 채웠던 선생님 향수 냄새, 거짓말을 해대던 짜릿함이 느껴진다. "오늘 엄마가 유치원 끝나면 재재네로 가랬어요." 덕분에 엄마는 하원 버스를 기다리다 깜짝 놀라 유치원에 전화를 걸고, 재재네로 와야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나, 나와 재재는 마음대로 동네 투어를 했단다. 마당에서 놀다 말고 인사도 없이 우린 그렇게 사라졌고, 온 가족이 산동네를 누비며 우리 셋을 찾았단다. 발견 당시 재-재-나 순서로 동네를 누비고 있었다는데, 재와 재 사이는 약 10미터, 맨 뒤 나는 30미터는 족히 차이가 난 채로 뒤따라 걷고 있었다고. 당시 누가 나를 들쳐업고 갔어도 모를 뻔했다며 우리 가족은 그날 일을 여전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야기한다.



당시 나의 부는 가족과의 여행이라면 질색, 정확히 오른 방향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티브이를 시청해야 했으므로 나는 늘 재재네와 함께였다. 여름휴가도, 생일도,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도. 추석이면 송편을 빚어야 해서 나 먼저 재재네에 갔고, 설날이면 같이 축구를 해야 해서 나 먼저 재재네에 갔다. 그러다 재재네가 이사를 갔다.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는 가야 하는 거리로. 나는 그때부터 평일이면 혼자 버스를 타고 재재네에 갔다. 재재의 엄마는 바이올린 교사였어서 나는 바이올린 교습을 핑계 삼아 갔다. 15분 교습 후 무한대의 시간을 재재네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놀았다. 우리에겐 늘 비밀 공습에 대비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었다.



자라면서 함께한 게임, 함께 읽은 만화책, 소설과 주고받은 음반, 여행 덕분에 우리는 비슷한 감성을 공유했다. 서로의 대학 과제를 하기 위해 영상을 찍고, 찍혀야 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우리에겐 모두 어렴풋이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던 거 같다. 지금도 남들에게는 모르게 하고 싶은 글과 그림을 향한 탐심이 서로에게 모락모락 넘친다는 걸 우리 셋은 안다. 그러나 우린 일단 다 컸다. 각자의 일과 연애, 각자의 결혼, 육아를 전쟁처럼 치르며 산다. 공유했던 문화는 뒤로 하고 이젠 서로의 생계를 살피며 위로할 뿐이다.



분명 우리 사이에 뮤트와도 같은 시간도 있었다. 계속 재생될 예정이지만 묵음 처리되는 듯한, 각자도생해야만 했던 시기. 취업 준비가 그랬고, 잘되지 않은 결혼이 그랬다. 나에겐 어려운 임신이 그랬고, 우리는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 다시 연락을 주고받을 때 우린 서로의 고됨을 오롯이 다 느끼되, 별말 없다가 갑자기 놀리거나 함께 떡볶이를 해 먹으며 웃는다. 얼마 전에는 내가 학창 시절 노래 동아리에서 제작한, 에코 듬뿍 들어간 레코딩 음반을 둘 다 각자의 집에서 찾았다며 들이밀었다. 과거 강매 현장을 여실히 보여주며 그때의 나를 놀려먹는다. 이렇게 어제를 이야기하며 배꼽 잡는 사이가 나를 보호해 준다. 



뮤트를 해제한 후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의 빈 곳을 더욱 알뜰살뜰 살핀다. 보지 못했던 기간에 각자 앓았을 행간을 읽는다. 특히 맏이, 큰 재는 나머지 둘에게 지대한 책임감을 지닌 사람인데, 어느 날 자기 방에 있던 티브이를 어깨에 지고 왔다. 고장 난 우리집 티브이 색감이 답답하다며. 교회라면 혀를 내두르면서도, 내 소원이 '오빠 교회 오는 거'라니 교회에 와서 오른손에 철권 생중계 유튜브를 재생시키고 예배를 드린다. 생일 3개월 전,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정리해야만 하는 건 재재가 나의 오빠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몹시 귀여웠다. 귀여웠던 서로를 기억하고 오늘 만난다. 우린 무척 조심스럽게 서로를 살피고, 내색하지 않지만 이 지구 안에 오직 우리만 살듯 공생하며 놀던 셋이었다. 마치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우리는 지구제일 천하무적이 될 것처럼 함께하던 시간이 있기에 나는 오늘 단단하다. 믿을 만하고, 지켜줄 줄 알고, 위해줄 줄 아는 것이 사람이라는 걸 온몸으로 전인격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누가 나를 하찮게 여긴다 해도 어릴 적 나를 지켜주던 재재가 있기에, 눈만 봐도 알 것 같은 무한한 지지와 공감이 있기에 겁이 나지 않는다. 세상엔 그렇게 나쁜 사람만 있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려준 재재. 오늘도 신문사 거래처를 의전하느라 한우집에서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고, 티슈를 각 잡아 놓고 있을 재 하나, 퇴근하자마자 다리에 매달리는 아들을 씻기고 육퇴 후 먹을 야식을 주문하고 있을 재 둘이 있기에 나는 오늘 하루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하염없이 지지해 보고자 한다. 감히 내가 평생 받은 헤아림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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