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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Sep 18. 2021

병원에 다니는 일

'태풍이 부는 날도 있죠'



내 생애 가장 가고싶은 곳을 물으면 하나 꼽지 못할 정도로 많으나 '가장 가기 싫은 곳' 하면 단연 병원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가기 싫은 곳은 아무래도 산부인과.



산부인과에 앉아 있는데 배가 꽤 나온 산모가 펑펑 울며 상담 중이었다.

간호사는 우는 산모를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말했다.

"내일은 출산 산모들이 많아서 마음이 어려우실 것 같으니 다른 날로 정하죠."



'아, 저분도 출산이 아니구나.'

그 산모는 상담 후 화장실에 들어가 큰 소리로 울다가 나와 내 옆에 앉았다. 나 또한 자궁 수축약을 처방받아 기다리며, 모두가 산 만한 배를 잡고 행복해할 때 목구멍보다 큰 바위 하나를 삼키고 앉아 있던 게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산모는 혼자 왔는지 계속 몸을 가눌 길 없이 비틀며 울었다. 나는 잠깐 산모의 손을 꽉 잡았다 놓았다. 그분은 좀 더 크게 울었다. 나도 그날 이렇게 크게 울었다면 좀 나았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각자의 슬픔에 수치를 매길 수 없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오랜 기간 품에 키운 자녀였기에 감히 그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손 한 번 잡고, 나는 산 송장 같은 몸을 이끌고 소독을 하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오랜만이에요."

의사는 진료를 마친 후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다시 임신 시도 중이세요?"

"아니요. 실은 요즘 근골격계 질환 때문에 여기저기 다 아파요."

의사는 내 상태를 받아 적으며 말했다.

"유산 후 3-6개월 사이, 뼈 사이가 늘어나고, 디스크 환자들은 디스크 증세가 더 심해져요. 관절들도 아프실 거예요. 고용량 영양제랑 칼슘 잘 챙겨 드세요."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이 말, 저 말 힘든 구석들이 나와버렸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간 해주고 싶던 말이 상당히 있었다는 말투로 말했다.

"잘하셨어요. 안 그래도 제가 처음 뵈었을 때랑 지금 너무 달라 보이셔서 여쭤봤어요. 태풍이 부는 날도 있죠. 그러나 태풍이 잠잠해지는 날도 있을 거예요."



의사는 내 또래, 임산부였다. 내 임신 소식을 듣고 같이 기뻐해줬고, 급할 땐 전화나 문자로 지시를 줬다. 냉면이나 자몽에이드를 추천해줬고, 자신도 힘들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유산했을 때, 무척 안타까워했고, 난임병원 몇 군데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나는 태풍이 몰아칠 때 쏟아지는 비와 바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오는 대로 다 맞고 나니 푹 젖은 꼴이 영 매가리가 없다. 그런데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인가 스스로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내 삶에는 언제나 크나 큰 태풍이 일고, 어느 날은 가뭄이었다가 갑자기 강풍과 물길이 몰려오기도 했다. 다 겪어 왔고, 누구든 지나가는 과정에 오롯이 나만 그런 거 같아 위태로웠나보다.



분명 건강에 대한 염려는 나 포함 부모, 남편 등 최극근을 통해 충분히 해왔다 생각했는데, 아직 더 구석구석 미미해야 할 때인가. 안전한 집에 앉아 '이 또한 지나가리' 하고 비를 구경해본다. 하루하루 버틸 만하다. 나름 씩씩한 마음을 안고, 내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병원 투어를 했다. 의사와 생기는 라포는 언제나 따뜻했지만(의사가 무심한 성격일수록 더욱), 언젠간 병원을 모두 뚝 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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