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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Dec 18. 2021

우리 동네에 눈이 내리면

서점 다녀오는 길




겨울이 또 왔다. 날씨 예보를 보니 소낙눈이 몇 시간은 내릴 건가 보다. 내게는, 오전에 피드백 받은  원고를 수정하고, 점심을 먹고, 빵 가게에 들러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하고, 서점에 들러 맡긴 책을 찾고, 다음 원고를 구상하는, 무려 다섯 가지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오후 2시. 계획대로 된 것은 1번뿐이었다. 게다가 창 밖에 슬슬 흩날리는 눈을 보니 잔잔한 요통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미끄러운 바닥을 디딜 생각에.



그럼에도 나섰다. 눈이 오고 어둑어둑해지는 집에, 고요하고 거룩한 이 집에 혼자 있으면 분명 다섯 가지 계획을 해낼 수 없을 테니, 그럼 더 울적해질 테니. '이럴 땐 나가야 해.' 내면의 소리가 발동했다. 서점 사장님의 "잘 오셨어요" 한마디, 이어지는 두세 마디 하고 나면 생기가 돌지 않겠나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잘 오셨다." 이 말은 꼼짝 없이 아파 어디 갈 데 마땅치 않던 시절, 유일하게 날 환대해주는 말이었다. 게다가 동네 서점 기간 기념으로 책갈피와 드립백을 준다는데 그 콩고물이 벌써부터 고소했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서점 아저씨는 노란 장판 바닥에 앉아 "너 HOT 토니 좋아하지?" 하며 잡지 부록 포스터를 주셨는데, 나날이 발전하는 브로마이드 사이즈에 정신이 팔려 서점엘 자주 갔다. 한동안 책 대여점에도 자주 갔는데, 적당히 건조하면서 따뜻한 실내 온기, 지적이고 혜안 있어 보이던 사장님 말투가 생각난다(초등학생인 나는 그때 ‘슬픔이여 안녕’ 문고판을 처음 접했다.) 어느 날엔 엄마와 좁은 통로 속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넓게 펼쳐지는 만화 책방에도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동네로 시집 온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낙이자 취미지 않았을까. 덕분에 내게도 이런 취미가 생겼다.



서점 사장님께 책을 받고, 코로나 때문에 몇 년째 누리지 못하는 연말 분위기에 대해, 그리고 새벽에 눈 쓸어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눈은 정말이지 전보다 더 세차게 내렸다. 나뭇잎 위에 퐁신퐁신할 정도로만, 신발로 스윽 문지르면 깨끗해지는 정도로만 오면 좋을 텐데. 왠지 눈은 '요 정도'를 모르는 것 같다. 남편 눈 쓸겠네, 생각했다. 우리 동네는 눈을 쓸고 거리 닦는 순서로는 왠지 지구 1등일 거다. 생활 리듬이 일정하며 삶에 애착이 있는,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이사 오기 전까지 눈이 '수고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결혼 전까지 28년 동안 친정 집 앞은 엄마나 아빠가 쓸었을 거고, 첫 신혼집은 주인아저씨가 쓸었겠다. 그다음으로 이 집에서 첫눈을 맞던 날, 나는 카페에 갔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이 생각났으니까. 남편과 한 잔씩 들고 걸어오면서 그 손이 부끄러웠다. 많은 이웃이 나와 일찌감치 눈을 쓸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우린 집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놓고 마당에 나와 눈을 함께 쓸었다.



덕분에 이제는 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린 다음날 우리가 출근할 수 있고, 마트에 갈 수 있는 이유가 이웃에게 있다는 것을. 거리에 높게 쌓인 눈은 저절로 녹을 때보다 누군가 치우고 바닥에 염화칼슘을 뿌린 덕에 녹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눈이 한창 올 때는 눈을 쓸지 않는다는 것까지. 어느 정도 눈이 쌓이고 그치면 그때, 슬슬 삽으로 바닥 긁는 소리가 온동네에 청아하게 울린다는 것까지.



언제 그칠지 모르던 눈이 멈추고 볕이 난다. 시리던 눈이 따뜻한 볕에 녹아 결국 또르르 흐르는 것처럼 내 경직된 몸과 마음도 녹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죽일놈의 요통이 나으면 내년 겨울엔 나도 이웃을 도와 삽 하나 품에 끼고 제설 작업에 나설 수 있지 않을지, 미미한 소원을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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