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빚어, 숫자 세고, 후딱 쟁여, 냉동행
명절을 앞두고 가슴에 아로새긴 브런치 글이 하나 있다. 식품 MD 작가님이 쓰신 만두에 관한 글이었다. 엄마가 빚으신 만두 맛이 그립다는 내용에서 나 또한 슴슴하면서 가득찬 엄마 만두가 생각났다. 그리고 시중에 파는 만두에 대한 오해를 확인했는데, 우리가 육즙이라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지방이 녹은 맛이고, 실제 살코기보다 고기의 잡부위가 많이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설 연휴가 다가왔다. 작년 설 연휴를 기점으로 온몸이 구석구석 아파왔고 꼬박 1년을 앓았다. 이번엔 음식을 조금, 살살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예 사 먹긴 또 싫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덜 자극적이고 담백하지 않은가. 마음은 그득한데 몸이 브레이크를 거는 일상, 미미한 일상 중에 명절 음식은 어떻게 결론이 날까.
내 머릿속 깔때기 끝에 만두가 계속 튀어나왔다. 실은 나는 너무너무 만두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만두에 관한 브런치 글은 너무 진심이었고, 읽은 나도 진심이기에. 시중에서 파는 육즙이라 착각했던 지방 가득 만두 말고. 모든 재료가 싱그럽게 씹히는 집만두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 몸으로 만두를 빚을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하다 내 발은 이미 장에 갔다.
당장 두부와 숙주, 돼지고기 600그람, 소고기 200그람, 쪽파 등을 샀다. 여기에 집에 있는 김치와 부추를 섞어 넣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혼자 만두 빚기가 처음이었다. 어릴 적 어른들 틈에서 놀며 자며 몇 개 빚기만 했지 만두소 양을 직접 가늠해본 적은 없었다. 양념도 마찬가지. 어느 블로거 슨생님의 지시를 따라 굴소스도 약간, 들깻가루 약간, 챔기름 살짝 둘러 고기를 재우고 그다음 야채를 버물버물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만두소 양이 참 적었다. 손이 참 작고 소박한 나는 미미.
반면 주변에는 설마다 만두를 한솥 찌시던 이웃 어르신이 있다. 재작년, 설에 어딜 가냐 물으셔서 "집에 시어머님이 오십니다" 했더니 그날로 다시 한번 만두를 한가득 주셨다. 덕분에 그 해 설엔 만두 잔치를 벌였다. 작년엔 윗집 이웃도 '만두 빚는 어르신들 모임'에 소환되어 만두를 빚으시고 우리집에도 주셔서 만두로 호화로운 명절을 보냈다. 이분들께 다 보답하려면 나는 필히 장을 다시 보고, 만두를 한 번 더 빚어야 했다. 그럼 어떠하리! 비록 체력은 딸려도, 시간만은 많은걸.
이틀에 걸쳐 만두를 빚었다. 처음엔 예쁜 복주머니 만두를 만들었다. 다음 날엔 '소고기가 뭐냐, 퍽퍽하다, 만두는 돼지고기!'라 속으로 외치며 돼지고기 가득 넣어 김치 만두, 부추 만두까지 만들었다. 첫날엔 복주머니 만두를 사진 찍어 SNS에 올릴 여유도 있었는데, 둘째 날엔 '일단 빚어, 숫자 세고, 후딱 쟁여, 냉동행'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변에 나누고, 샤부샤부용 만두, 어머님용 비건만두까지 빚어 냉동고에 착착 쟁인 다음날,
좀 놀라운 것은 내가 만두 어택을 하기도 전에, 이웃 만두 어르신이 만두 세 봉지를 가득 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목디스크 염려하며 겨우 요만큼 빚는 동안 무릎이 아파 언덕길도 오르내리기 힘드신 그분은 또. 역시. 주변에 넉넉히 나눠줄 만큼 만두를 빚으셨다. 다시 한번 어른들 앞에 내 간장종지 만한 미미한 손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이미 만두는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어머님의 오랜 친구분이 직접 피까지 빚은 만두를 또 크게 한 봉지 주셨다. 시골 할매가 손수 피를 밀어 만든 만두는 그 깊이가 달랐고 나도 모르게 “맛있어요”라며 파닥거렸다. 내 파닥거림에 한 봉지가 추가됐다.
덕분에 우리집 냉동고엔 만두가 많다. 메뉴가 마땅치 않을 때 한 줄씩 꺼내 먹는 중이다. 나는 왜 만두가 냉동에 쟁여져 있는 것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고 흡족한지. 손으로 소를 채워 넣으며 먹을 이들 든든하길 바라는 마음의 온기까지 전해져서일까. 하도 많이 주고받아 이젠 출처를 따지기도 어려운 서로의 만두 맛을 보자니, 분명 혼자 빚었는데, 어렸을 때처럼 친척들과 모여 만두 빚은 기분이 든다. 아직 아픈 몸을 어르고 달래 무려 만두라는 성과를 내니 감격스럽기도 했다. 아무래도 만두는 계속 빚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