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동사는 추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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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사랑이란 동사는 추억하지 않는다




세월을 비벼놓은 그대 거친 손등이

남이 해준 것만 먹고살지 않았다는 시위로 보여

내가 너에게 한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이겠지


바퀴벌레 산책시키기를 취미로 삼을까 했더니

그대가 궂은 겨울비를 맞은 듯한 얼굴로

바퀴벌레 목걸이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 거냐고

내 버킷리스트로 남겨두자고 했을 때

내가 너에게 한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이겠지


달지만, 코 푼 휴지 같은 약속을 내가 마구 날려도

적어도 사랑하는 동안은 유효하니까

너로서는 그저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내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약속이라 할 때

내가 너에게 한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이겠지



그랬네 이제 사랑을 따진 걸 되따지는 건

사랑은 놔두고 사람을 앓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할 일 다한 사랑이 명사로 돌아온 건데

우리가 더는 하릴없어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사랑의 무게가 어느 쪽으로 쏠리든

사랑하면서는 끝낼 수 없으니까

서로 시나브로 사랑한, 다만, 내가 좀 더 사랑한,

그런 거라고 자족하는 게 좋겠어

네가 나보다 한 번쯤 더 웃어도 좋게 말이야


사랑했다는 것이 사랑하는 것만 못해도

마지막 웃는 얼굴로 가면, 안 될 게 뭐야


응? 웃는 얼굴도 보여주기 싫어?

내 얼굴은 갑자기, 왜?

내 얼굴이야 늘, 네 거였잖아

그건 아마, 네가 내 얼굴에 쓰고

지우지 않은 낙서 때문일 거야

그건 내가 천천히 지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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