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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Sep 22. 2023

그러게요!

생각편의점

그러게요!




하나. 아무리 덩치가 크고, 손이

오랑우탄만큼 크다고 해도

갓 익힌 컵라면을 한입에 먹기는 어렵고

그 뜨거운 국물이 얼굴에 튀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젓가락질을 해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덩치가 크고, 손이

티라노사우르스처럼 작다고 해도

제 항문을 닦을 수단을 

만들거나, 갖고 태어납니다


하나. 우리는 자아를 갖게 되면서

세상사에 대한 동정심과 함께

무엇에든 부속물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삽니다

그래서 늘 하는 말이,

나는 나 같이 살면서 

나를 산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시대에서 '나'의 시대가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만


하나.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은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확실히 비정상적이며, 

더불어 사는 우리에게

할 일과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을

나누는 능력이 자랑할 일은 아닌데,

그럼에도, 타인의 권리를 위임받고,

그것을 수임하면서

게으를 권리를 포기하고서도

그저 권리만 차지한 채

시시덕거리는 인간이 많습니다

 

하나.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것이 그릇으로,

인간의 땀, 똥이 담길 수 있고, 

목마른 자를 위한 물도 담기며 

어떠한 성수도 담길 수 있는 데도

그 그릇을 비난하지 않는 것은

그릇을 그릇으로 쓰는 덕분입니다

거기 무엇인가를 담은 인간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겠지요


하나. 비가 듣고 있을 때는

그 듣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물방울과 땅이 어울려 만드는,

악기가 만드는 인위적 음악보다

화와 열을 식혀주기 때문인데,

부침이든 지짐이든, 빈대떡에

술 한 잔이 빠끔히 생각나려면

기와집이나, 판잣집 지붕

양철판으로 빗길을 낸 처마 아래의

마루에 걸터앉아야 합니다

제자리가 있는 세상만사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에

사람 같은 이가 앉아서

'뻘짓'을 해대는 통에

진정 사람이 그리운 걸 겁니다


하나. 영화 'The post'를

보신 분은 기억하겠는데,

언론의 자유와 국가 안보가

맞붙은 소송에서, 

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법원 기자의 전화를 통해

메그 그린필드 기자가 전하는 

평결에 붙인 블랙 판사의

의견은 이랬다고 합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언론 자유를 보호한 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언론이 본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피통치자에 봉사하기 위한 거다"

아쉽게도, 우리와는 달리

'기자와 언론'이 있는 나라의 판사가

통치자에 대고 한 이야기입니다


하나. 먹고사는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데

사랑이 뭔, 한가한 소리냐 싶지만

결국 사랑하기 위해 기어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자신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세상 고민을 다 끌어안은 듯한

심각한 얼굴로 사는 그대가

꽤 한심해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그대의 위(胃)가 고장 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오직 심로(心路)뿐입니다

그 길은 자신이 내는 게 아니라

사랑이 깔아주는 것으로 

길 아닌 길을 간다 해도

삶을 위로할 겁니다

나아가 우리의 생체가 시간과 겨뤄

이긴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 느껴도 좋은 즐거움과

내일 느끼게 되리라는 즐거움이

약속된 것도 아니며, 같지도 않을 겁니다


하나. 그대의 표정에, 그래도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그리는 법을

하루라도 젊을 때 배우는 게 낫지요

그걸 사랑이 해줄 겁니다

아니면, 자고, 먹고, 싼 시간으로 

채워진 삶 뒤에 남는 것 역시 

자고, 먹고, 싸다가 죽는 것이란 건 

모두 아는 사실 아닌가요?

현실을 향해 울분을 느낄 때,

그것도 파고들어 가면, 삶에 대한 

사랑이 만든다는 것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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