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와, 도망이 습관이듯이 '도전'도 습관이다. 최근 나는 도전이라는 파도에 최대한 몸을 맡기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한지 아직 너무 얼마 안 돼서, 아직 아주 편안하게 습관으로 정착한 상태는 아니다. 매 순간 두려움과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마주하지만, 이미 난 파도에 올라탄 거다. 올라 탄 이상, 더는 도망갈 수 없다. 파도를 온전히 느끼며 물에 빠지지 않도록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러닝 모임을 가기 전 '그냥 취소한다'라는 선택지는 아예 배제했다. 오랜만에 20살 대학생 시절의 기분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긴장감. 두렵지만 설렘도 공존하는 그 감정 말이다.
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하고, 헬스장이라는 장소도 안 좋아한다. 러닝머신도 재미가 없어서 끈덕지게 해 본 적이 없다. 처음 왔다고 이야기하니 모임장님이 러닝머신에서 어느 정도로 뛰냐고 물어봤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3km와 5km 중에 선택해서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3km를 선택했다. 나는 심지어 3km라는 거리에 대한 감도 전무했다. 모임장님과 같이 맨 앞에서 해맑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대해선 알지 못한 채...!
정말 천천히 뛰고 있었지만 '이제 진짜 못하겠다'라는 순간이 왔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모임장님이 '이제 반 왔다'라고 말하는 거다. '와...' 저질 체력인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좌절스러웠지만 어떻게든 몸뚱이를 이끌고 나아가는 것 밖엔 방법이 없었다. 맨 앞에서 모임장님과 스몰토크를 하면서 달리는데, '저 이제 못 하겠어요!'라고 할 자신은 없었다. 어떻게든 악바리로, 정신력으로 버티며 이 악물고 뛰었다.
핸드폰을 쥔 왼손에선 식은땀이 나서 자꾸 핸드폰이 손에서 미끄러지고, 얼굴은 미친 듯이 뜨거워져 있었다. 이렇게 오래 달려본 건 30년 인생동안,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계속 숨 가쁘게 호흡을 해서 그런지 복근마저 아파왔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길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것도 첫 경험이었다. '뭘 먹고 온 것도 아닌데, 달리기로 복근에 자극이 온다고..?'
"그래도 잘 뛰시는데요~?"
"너무 힘들어요..!! ㅠ"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간신히 대답했다.
자꾸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임장님 쪽으로 자꾸만 쏠리기 일쑤였다. 진짜 죽을 것만 같았다.
"저 진짜 못 하겠어요..! ㅠ"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저기까지만!"
기적적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나중에 보니 22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린 거였다. 도착해서 바로 화단의 돌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표정 관리도 힘들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기에 바빴다. 다른 사람들은 일어나서 다리를 풀고 있는데, 나는 힘이 풀려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앉아있다가 물도 마시고, 조금 서있다 보니 신기하게 진정이 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였다. 사람들과 기분 좋게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라면 원래는 더 낯설어야 하는데, 힘든 일, 그것도 신체 활동을 같이 하고 나니 이상하게 전우애(?), 친근감이 막 들었다.
"좀 괜찮아졌어요?" 모임장님이 물었다.
"저 내일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ㅠ..!"
"저도 처음엔 진짜 죽을 것 같았어요. 근데 하면 할수록 점점 나아져요!" 다른 모임원이 격려해 주었다.
"진짜요?"
나 원래 더 낯가리는데...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나서 온몸에 혈액과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뭔가 기운도 샘솟고 신나서 뒤풀이까지 따라갈 뻔했다. 다이어트 중이라서 참았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와 얼굴을 보니, 난생처음 보는 붉은 인간이 거울 앞에 있었다. 원래 아무리 힘들게 운동을 해도 볼까지만 빨개지는데, 눈 위를 넘어 눈썹 위까지 지나 이마까지 빨개져 있었다. 흉측한 몰골을 보며 '뒤풀이 안 가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얼음팩을 얼굴에 갖다 대고 나서도, 얼굴이 진정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신나서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정말 괴로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체력장의 '오래 달리기'가 1.2km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것도 굉장히 길고 힘들게 느껴졌었는데...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갑작스레 3km를 성공한 것이다. 얼떨결에, 간신히 성공한 것이었지만 진짜 내 인생의 기적이었다. 누가 뭐래도 말이다.
같이 하는 것의 힘, 그리고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했던 경험이었다. 다만 나에게 3km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하얀데 나 혼자 헉헉대며 빨개져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각성하고, 다음 모임에 나가기까지 3~4주 정도 텀을 두고 그전까지 혼자 연습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친구가 달리기 어플을 이용해 같이하자는 제안도 해왔다.
역시 밑도 끝도 없이 나가보길 잘했어. 새롭게 동기부여를 얻은 내가 앞으로의 시간 동안 체력적, 정신적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