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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샘 Feb 09. 2024

아시안컵의 실패, 스타트업에 대입하기

리더의 독단적 의사결정과 시스템패싱의 문제점


손흥민의 눈물은 안타깝지만 나는 아시안컵의 실패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4강이라는 성적을 차치해두고 보면 경기력은 처참했다. 선수들의 약점이 제대로 보완되지 않았고, 팀 전체의 강점을 활용하지 못한 전략이 사용되었다. 황인범과 박용우 같이 피지컬이 약한 중원의 조합에게 너무 넓은 공간을 커버하도록 요구하며, 팀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킨 점은 전술적 실패의 대표적 예이다.


 클린스만은 이전부터 전술적 문제와 태만한 태도가 지적되어 왔다. 최근 경력인 헤르타 베를린에서의 라이브 방송을 통한 갑작스러운 사임 발표, 그리고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미국에서의 개인 시간에 대한 구설수 등은 그가 3년이나 백수로 있었던 이유이다. 한국 축구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었다. 여전히 전술은 알 수 없고 K리그를 포함해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지 않고 미국에서 시간을 보낸다.


 벤투 체제까지 이어 온 한국 축구의 개혁 과정과 시스템 구축 노력은 중요한 단계였다. 국가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이 일관된 축구 스타일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김판곤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감독이 설계한 시스템이 있었다. 벤투가 물러나고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가 주도하는 축구”를 계승하여 더 발전시킬 감독이 필요했다. 그러나 절차를 통해 추려진 감독후보자는 축구협회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는 독단적으로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결정하였다. 시스템 설계자가 떠난 축구협회에서 오랜 시간 만들어진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선정 배경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리더의 시스템 패싱과 리더의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한국축구는 다시 색깔을 잃어버리고 제로 베이스로 돌아왔다.


 스타트업 CEO분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 특히나 본인이 잘 모르는 영역에서 ) 화려한 커리어의 사람을 뽑았다가 크게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경영자가 욕심에 시스템을 패싱 하는 일이 생긴다. 흔한 사례로 1차 면접에서 떨어진 후보를 CEO가 뽑고 싶다고 채용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후보자를 뽑을 요량으로 검증의 절차를 아예 스킵하는 경우도 있다. HR에서 이처럼 괴로운 일이 없다. 후보자도 이러한 맥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클린스만처럼 협상에서 유리한 계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결정을 구성원들에게 애써 합리화하는데 리소스도 사용해야 한다. 100명이 넘어가고 체계가 필요한 시점에 이런 일들은 어렵게 만든 시스템을 망가트린다.


 나는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로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제 조건은 시스템의 의견이 경영자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함께 시스템을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CEO의 몫이라고들 한다. 스타트업의 경영자는 HR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지만, 모든 일에 관여하고 모든 걸 결정해서는 안된다. 사업 초기에는 필연적으로 경영자의 결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회사가 커감에 따라 시스템을 통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매번 합리적인 결정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그 결정은 일관성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요한 보직자를 결정하거나 승진을 시킬 때, 커미티를 구성하여 연관된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경영자가 추천한 직원이더라도 커미티의 대다수가 부정적인 의견이라면 이를 수용해야 한다. 경영자는 HR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번 실패로 독단적 의사결정의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이를 교훈으로 삼을 기회를 얻었다. 혹여나 우승이라도 했으면, 개선의 기회는 다음으로 미뤘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최근 기사를 보면 감독경질도, 사임도 없을 것 같다. 축구협회가 잘못된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리소스를 낭비하는 대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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