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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j Oct 14. 2019

객관식 시험이 아닌 글쓰기로 하는 국제 학교교육, IB

인도 국제학교에서 경험한 IB 교육과정을 소개합니다

이 글이 속해있던 브런치 북  <AI 시대, 우리 아이 교육은?>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https://wikibook.co.kr/aiedu/


인도(India)라는 나라는 무엇을 떠오르게 만드나요? 배낭여행, 요가, 힌두교, 많은 인구, 개발 도상국 등 다양한 단어들이 생각나실 겁니다. 유학, 교육이라는 단어는 감히 연관 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통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 유학을 가지, 인도에 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 것 같으니깐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작은 아들은 과학고 진학이 마지막 문턱에서 좌절된 후 일반고등학교를 진학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자퇴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습니다. 별 다른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게 잘 다니던 학생이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는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었습니다.


아이는 첫 한 달 동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저녁 9시쯤 와서 다음날 또다시 오전 8시까지 등교하는 생활이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거쳐야 하는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숨이 막혀 자퇴를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얘기해보면 그 당시에는 그저 그런 반복적인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이미 중학교 때 많은 경쟁과 시험을 보았기에 고등학교에서의 경쟁과 입시에 대한 거부감에 더 가까웠다고 저한테 얘기하고는 하더군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작은 아들을 고등학교 유학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큰 아들도 이미 홍콩에서 대학교 유학 중이라 집안 상황이 넉넉하지 않아 최대한 경제적인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갔던 코엑스에서 열린 유학 박람회에서 인도에 있는 영국식 국제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곳이었기에 지인을 통해서 인도에서 유학하였다는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거주하면서 한국에 유학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님을 만나 설명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아이는 인도 벵갈루루 (Bangalore)에 있는 국제학교에 진학하는 도전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멀고 먼 인도에 있는 The International School of Bangaglore (TISB; https://www.tisb.org)로 유학 시작!


The International School of Bangalore (TISB)는 영국식으로 교복을 입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학교였기에 낯선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진학을 결정하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 학교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라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학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IB 과정을 여러분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객관식만을 고집하는 한국의 교육 과정


저와 제 아들들이 느낀 한국에서의 교육은 배움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시험문제를 효과적으로 정확하게 푸는데 중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였습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공부 목적을 배움보다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함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험 위주의 교육은 성과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어떠한 과목에 대한 진정한 학구열을 생기게 하기보다는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경쟁심만 불 지피기 쉬운 불완전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너무나도 큰 한계점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정답이 있고 선생님 수업에 답이 있는 학교의 환경과는, 세상의 대부분의 지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특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를 찾아내고 구현해야 할 때, 정말 답이 나와 있지 않는 모르는 걸 알아내는 과정은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객관식에 익숙한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겪은 경험이 적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거부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험에서 문제를 잘 풀고 올바른 정답을 고르기만 하면 좋은 대학교를 가는 데까지는 큰 문제가 없고는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을 비슷한 방법론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습 또한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사회에서 통상 정답이라고 일컫는 의대, 법대 진학, 공무원 임용시험에 몰리는 것 역시 이러한 객관식에 익숙한 사회의 부산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만들어낼 수 없다면,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이 문장은 한국의 교육 방식의 한계점과 해결법을 동시에 시사합니다. 또한 작은 아들이 인도 국제학교 3년 동안 경험한 IB 과정은 파인만의 이 철학과 일맥상통합니다.


IB 교육과정이란?


IB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시작된 교육과정으로, 학생을 글로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키우기 위한 목적을 가진 교육 과정입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포함하는 과정인데, 전 세계의 수많은 국제학교들이 채택하고, 대부분의 대학들이 국제적인 고등학교 커리큘럼으로 인정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작은 아들의 경우 2년 동안 3개의 심화수업(Higher level; 수학, 컴퓨터, 물리)과 3개의 일반 수업 (Standard level; 경제, 영어, 중국어)으로 구성된 총 6개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수업에서 정말 많은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과학, 영어, 경제 할 것 없이 모든 과목의 평가가 글을 써내는 방식으로 중점이 잡혀있습니다. 모든 시험은 긴 서술 형식시험이었고, 그 이외에 한국의 수행 평과 제도와 비슷하게 과학 수업은 보고서를, 영어 수업에서는 연설과 같은 글을 추가적으로 써야 했습니다.


또한 IB의 커리큘럼에서 특이한 점은 3 Core라고 불리는 Extended Essay와 Theory of Knowledge (ToK), 그리고 Creative, Activity, Service (CAS)입니다.


일단 Extended Essay는 4000자 가까이 되는 소논문인데, IB에서는 한 문장으로 "It is an independent, self-directed piece of research, finishing with a 4,000-word paper." (독립적으로 혼자 연구를 설계하여 써야 하는 4 천자짜리 소논문)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대학교에서의 연구 능력을 미리 키우고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좀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Theory of Knowledge (ToK; 지식 이론)는 일종의 철학 과목으로 1600자 정도의 에세이 글과 발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생들이 지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무엇을 아는 것이란 어떤 의미인가 깊게 탐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에세이들의 주제 예시인데, 고등학생들이 쓰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오합니다.  

    “To what extent are areas of knowledge shaped by their past? Consider with reference to two areas of knowledge.” (지식은 어느 정도 과거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두 가지 지식 영역을 참고하시오.)  
    “'There is no reason why we cannot link facts and theories across  disciplines and create a common groundwork of explanation.' To what  extent do you agree with this statement?” (여러 분야의 사실과 이론을 엮어서 새로운 지식을 위한 공통 기초작업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느 정도 이 문장에 대해 동의하는가?)  
    “There is no such thing as a neutral question. Evaluate this statement with reference to two areas of knowledge.” (세상에는 중립적인 질문이란 없다. 이 문장을 두 가지 지식 영역을 참고하여 평가하시오.)  
    “'The task of history is the discovering of the constant and  universal principles of human nature.' To what extent are history and  one other area of knowledge successful in this task?” (인간 본성의 변하지 않는 본질과 보편적 원리를 찾는 것은 역사의 과제이다. 역사 또는 다른 지식 과목은 이 과제를 어느 정도 발전시켰는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 Creativity, Activity, Service는 교과 과정 외에 미술 같은 창의성과 관련된 활동,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육체적인 활동, 그리고 남을 위한 봉사 활동 세 가지 분야를 말합니다. 학교 생활 동안 각 분야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졸업 전에 이 활동들로부터 느낀 점, 배운 점 등을 정리하여 15장짜리 보고서로 제출해야만 했습니다.


IB 커리큘럼의 구조

이처럼 IB과정은 앞서 소개해드린 3 Core와 함께 수학과 과학, 영어와 제2외국어, 미술과 사회 과목을 중점으로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자랑합니다. 마치 대학 과정 같은 느낌이죠?


이러한 IB 교육과정은 단순히 문제만 풀 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글의 형식에 맞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글을 적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시험에서도 개념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에 맞는 답을 적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그러한 글들을 적기 위하여서 많은 양의 글을 읽어야 했고 잘 모르는 내용/방식들을 많이 접해야만 합니다.


물론 작은 아들도 처음에는 글을 적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로 적어야 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많이 겪었던 문제 중 하나는 수학이든 과학이든 머릿속으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적어야 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은 아들은 되돌아보면 이것은 표현의 한계가 아니라 이해도의 문제였다고 얘기합니다. 내가 충분히 믿고 이해해야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과 설득을 할 수 있듯이, 나의 지식 역시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르는 게 아닐까요? IB 과정은 이러한 철학을 교육과정에 그대로 반영하여 작은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결국 많은 수정과 피드백 만이 이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합니다. 작은 아들이 처음 인도에 갔을 때 본인 생각을 부족한 글로 표현을 해보니 본인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고 선생님들의 피드백이 혹평처럼 들리는 등 꽤나 힘들었지만, 결국 그것들이 자극과 배움이 되어서 조금씩 자신감이 자라나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글을 적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더 높은 이해도로 읽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 또한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의 교육 방식은 이러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문제에 맞는 답만 찾으면 되기 때문이죠. 결국 교육이라 함은 수학, 영어, 경제 등 특정 과목에 대한 지식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주입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되면 그저 암기된 지식만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남에게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가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의 한자에서도 이러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修學)은 숫자를 다루는 수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을 닦는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진정으로 학생들이 학업과 미래를 스스로 닦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요?


지난번 큰 아들이 진학한 민족사관고의 교육 이야기, 그리고 이번 인도 국제학교의 IB이야기를 하며 한국의 일반적인 고등학교와 정말 다른 교육 방식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참고가 많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매거진은 브런치 작가 pj의 가족들이 함께 발행하는 가족 프로젝트입니다. 화자는 pj의 어머니로, 가족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풀어낼 예정입니다.


매주 포스팅되니, 꼭 매거진 또는 작가를 구독해주시기 바랍니다!

목차

0. AI시대, 내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 자동차와 공룡을 좋아하던 6살 아이가 컴퓨터를? 

2. 간단한 게임 만들기로 시작한 코딩 공부 

3. 우리 아이,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시작해야 할까? 

4. 아이들에게도 효과적인 프로젝트 중심의 코딩 공부 

5. 인공지능 번역시대, 아이 영어 공부 중요한가요? 

6. 부모의 작은 노력이 모여 큰 아이를 만든다 - 일찍이 시작된 영어 공부

7.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8.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영재는 만들어질 수 있다 ~ 작은 아들 이야기

9. 객관식 시험이 아닌 글쓰기로 하는 국제 학교교육 IB (현재 글)

10. AI 시대에 과학/수학 교육이 중요한 이유





**참고 자료


학교 오피셜 웹사이트 (https://www.tisb.org/)

https://www.youtube.com/watch?v=Ma7o6VpFnf0

전세계 국제학교 top 5 안에 들었다는 소식과 함께 학교를 소개하는 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XHca7kueKy4

어느 한 한국 학생이 만든 TISB 소개 영상. 이 학생 유투브 채널로 들어가면 인도 학교 생활에 대한 다양한 VLOG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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