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일 때부터 '애착 육아' 관련 서적을 읽고, 상담을 받으며 정했던 우리 부부의 첫 결단은 바로 낼 수 있는 최대의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었다. 나 1년, 남편 1년의 유급 육아휴직을 내면 두 돌이 넘을 때까지 가정보육을 하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
우리 때는 5~6세는 되어야 유치원으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돌만 지나도, 맞벌이 가정의 경우 돌 전에도 어린이집에 입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법으로 정해진 육아휴직은 사기업의 경우 1년 남짓이며 이마저도 다 내기 어려운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부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부부도 1년간의 육아휴직을 모두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워킹맘이 제법 있고 육아휴직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대기업도 아니고 일반 중소 민간기업인 탓에 1년을 한 번에 모두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내가 1년의 육아휴직을 모두 낸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그만두려나보다'라고 짐작하는 눈치였다. 내 휴직계를 결제하시던 임원 분도 너무 길다며 눈치를 주셨다. 하지만 내가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을 때, 내 옆에 있는 것은 회사 사람들이 아닌 내 자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직장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아이의 어린 시절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남편의 경우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 보다 자유로운 공무원이지만 그럼에도 남자가 1년의 육아휴직을 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남편이 휴직을 낼 때도 윗분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남자 동료들도 휴직을 내긴 하지만 몇 달에 그치거나, 휴직 중에도 육아에 '전념'하기보다는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승진 시험 준비 등에 주로 할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집의 경우 육아휴직 기간 동안 그 어느 기관에도 보내지 않고 오롯이 가정보육만을 했다.
아이와 오롯이 24시간 붙어있는 그 시간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리 못 자고 못 씻고 못 먹어도 아이 웃는 얼굴에 모든 피로가 눈녹듯 사라지는 엄마들도 많다는데, 안타깝게도 난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아이는 선천적으로 잠이 없는 체질이고(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가족 세 명 중 아이가 가장 늦게 잠든다.) 돌 전에는 수면 패턴 잡기조차 쉽지 않아서 밤에도 수시로 깰 뿐더러 한 번 깨면 몇 시간을 잠들지 않고 놀거나 떼를 썼다. 배가 고파서인가 싶어 모유나 분유를 주면 맛있게 먹고 더 '원기충전'을 해서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놀아달라고 하는 아기였다. 새벽 5~6시까지 뜬눈으로 새우기가 일쑤였다. 엄마 아빠는 점점 좀비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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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낮이 수월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아이는 생후 100일부터 만 7개월이 될 때까지 내려놓기만 하면 우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100일의 '기적'이 아닌 '기절'이 찾아온 우리 아이는 갑자기 엄청난 낯가림과 분리불안이 와서 아기띠로 하루종일 안고 있어야 했다. 아기를 안은 상태로 화장실도 가고 외출도 하고 밥도 들고 먹고 스마트폰으로 아기용품도 사야 했다. 그리고 밤에도 잠이 없으니 '육퇴'는 꿈도 못 꿨다. 아이를 어렵사리 재우고 나면 남편을 붙들고 하소연을 하다가 엉엉 우는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