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1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나는 수많은 간접체험을 통해 임신·출산·육아(임출육)란 한없이 고되고 괴로운 것임을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가깝게는 우리 엄마의 "내가 너를 낳느라고 그 좋던 피부가 다 상하고 이가 안 좋아지고 애는 어찌나 울던지~"로 시작하는 경험담부터, 가장 친한 친구가 첫째를 낳자마자 "너네는 애 낳지 마, 낳을거면 신중하게 생각해"라고 신신당부했던 말. 그리고 인터넷에서 읽었던, 읽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끔찍한 임출육 후기들. 그들에 따르면 임신을 하는 순간 24시간 내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소주 2병을 원샷하고 배멀미를 하는 듯한 입덧과, 심하면 목발을 짚어야 할 정도의 '환도'가 서는 통증, 제대로 걷지도 눕지도 못하는 만삭의 고통에 이어 2박3일간 진통을 하고 '굴욕 3종세트'를 겪으면서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 때쯤 응급제왕 수술로 출산해 그후로도 몇년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며 24시간 육아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증언들의 말미에는 항상 하나의 문장이 무슨 공식처럼 쓰여 있었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임출육이었지만, 아기의 웃는 얼굴에 모든 고통을 잊어버릴 정도로 너무 행복해서 둘째를 계획하고 있다"고. 마치 독자를 우롱(?)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반전이다. 저렇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 체험을 몇 번이나 넘기고도 '고작' 아이 웃음에 다 잊을 수 있다니? 하지만 미혼일 때의 내게는 그저 남의 일일 뿐이었다. 마치 어릴 때 책에서 보던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은 걸 보는 느낌이었다. 아, 좀 신기하긴 한데 그럴 수도 있나보네.
하지만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발견하고 나서는 이제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나는 당장 아기를 맞을 설렘과 행복보다는 지금껏 들어온 많은 (협박에 가까운) 임출육의 고통에 대한 증언들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내가 그걸 다 극복할 수 있을까?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냥 평범한 엄마라도 가능할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항상 덧붙이던 마지막 문장이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낳으면 일단 다 할 수 있다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아기 미소만 보면 다 잊고 행복해진다잖아. 나도 그럴 거야.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입덧은 참을 만한 수준으로 아주 약하게 겪었으며, 그 외에 이렇다할 특이 증상 없이 무난무탈하게 임신기를 보냈다. 임신을 하고도 한동안 다른 산모들도 다 나처럼 세끼 밥에 간식까지 잘 먹고, 출퇴근하고, 주말에 놀러도 가고, 정기검진 외에는 딱히 산부인과 갈 일 없이 지내는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출산은 제왕절개로 아이 둘을 낳은 우리 엄마가 강력하게 수술을 권고해서, 마침 겁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별 고민 없이 선택제왕 날짜를 잡았다. 때마침 아기 머리도 평균보다 많이 큰 편이어서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의료진의 세심한 케어로 참을 만한 통증만 겪으며 무사히 회복했다. 슬슬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임신과 출산이 다 견딜 만 했으니, 육아도 어느 정도 할 만 하겠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육아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눕히기만 하면 바로 꿀잠을 잤다는 남편과는 달리 우리 아기는 안타깝게도 나를 닮아서 온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렇다고 낮에 잘 자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 20시간을 잔다는 다른 신생아들과는 달리 우리 아기는 평균 10시간도 안 자는 것 같았다. 먹성도 워낙 좋아서 100일만에 8.6kg를 기록할 정도였다. 몸무게가 잘 안 느는 것보단 나았지만, 내려놓기만 하면 우는 아기다보니 하루 종일 거구의 아기를 안고 있어 안 그래도 약해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당시 우리는 신혼집으로 얻은 실평수 12평 가량의 작은 투룸 빌라에서 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곳에서 우리 부부만 살다가, 차차 아이를 갖고 더 넓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보다 너무 빨리 아기가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볕 잘 들던 거실에는 바로 옆에 신축 빌라가 생기는 바람에 종일 시끄러운 공사 소음에다가 햇볕도 잘 들지 않게 돼 버렸다. 아기를 키우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서 외출조차 쉽지 않아졌다. 온종일 울다 먹다 잠깐 잠이 드는 듯 하다가 또 울기를 반복하는 아기를 안고, 교대근무 때문에 이틀에 한 번 집에 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24시간이 넘는 시간을 혼자 아기를 돌보다 보니 내 몸과 마음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때 못 먹어서 아기띠를 한 채 서서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못 가서 생전 없던 변비가 올 지경이고, 오로지 아기와 나만이 존재하는 작은 집 안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야 한다는 것. 사실 이 모든 어려움은 비록 예상했던 것보다 좀 더 힘들었을지라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만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한 건 다른 문제였다.
'왜 나는 그들처럼 아기 미소를 봐도 행복해지지 않지?'
그렇다. 나는 육아가 힘든 건 둘째치고, 전혀 행복하거나 보람차지 않았다. 작은 사람이 꼬물꼬물 움직일 때는 귀엽다는 생각은 들어도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은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내가 행복할 때는 그저 아기를 누군가에게 잠시 맡기고 홀로 외출을 하며 개인 시간을 가질 때 뿐이었다. 육아 그 자체는 그냥, 고통스러운 업무일 뿐이었다.
나는 모성애라는 게 없나? 나는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나?
그 때부터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