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2
나는 이제 아기를 낳은 나 스스로를 책망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연애 시절 이곳저곳으로 여행과 데이트를 다니며 찍은 사진들은 '비트윈'에 연도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매일 밤 아기를 재우고 컴컴한 방 안에서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롯이 나 하나만 신경쓰면 되던 날들, 직장에서 퇴근하고 오면 나 혼자만의 공간인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맛있는 저녁을 해 먹고 노트북을 켜 넷플릭스나 보던 날들. 주말이라면 늦잠을 자도 되고,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던 날들. 친구들과 '급 약속'을 잡아 집 근처 이자카야에서 수다를 떨던 날들. 오로지 나를 위해 짤 수 있던 미래 계획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적어도 향후 10년 이상은 불가능한 일들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좀 더.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다지만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은 임신출산을 쉽게 결정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 난 직장일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마침 결혼도 했고 나이도 적지 않으니 이 참에 내게 시간을 줘 보자고 임신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게 된 육아는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어도, 그 이상이었다. 나를 온전히 버리다 못해 나를 죽이고 대신에 아기를 살려내야 하는 일 같았다. 마치 자연의 수많은 동물들이 번식의 의무를 다하면 생명을 다하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섭리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아기띠를 한 채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마트폰으로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보는 것밖엔 없었다. 초반엔 뉴스 기사도 읽고 영어회화도 연습하려 했지만 이미 육아 노동으로 소진된 정신과 육체로는 전혀 생산적인 걸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날도 최악의 기분이었다. 마침 누군가는 임신을 고민 중이라는 글을 올렸고, 수많은 댓글들이 '애는 최대한 일찍 낳아야 좋다'며 부추기고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물론 육아에 체력이 필수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덜컥 낳아도 될 문제인가? 심지어 체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20대에도 골골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40대에도 철인3종경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바로 육아는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이 몹시 중요한 것 같았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아기에게는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한다는 것,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남편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것. 보통의 정신적 성숙도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난 젊은 미혼 여성들이 많아 보이는 그곳에 글을 남겼다. 육아는 너무 너무 힘들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되도록 출산은 말리고 싶다고, 생각보다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아주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순식간에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댓글은 나를 가르치려 들거나 화를 내는 것들이었다. '나도 같은 개월수 아기 육아 중인데 매일매일 행복한데 너는 왜 그 모양이지?'로 시작하며 자신의 '육아 방법'을 가르치는 장문의 댓글도 있었다. 물론 그 댓글에 쓰인 아기 달래는 방법 중 (일부러 하지 않은) 유튜브 보여주기를 빼고는 모두 이미 시도해 본 바 있으나 우리 아기에게 통하지 않는 방법들 뿐이었다. 나랑 육아 경험치가 비슷한 아이 엄마인데 왜 나는 그 방법을 해 보지 않았을 거라 믿었는지, 지금도 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그 외에는 '남편이 도와주면 그리 나쁜 상황도 아닌데 왜 엄살을 부리냐' 라는 질책과 '체력이 약한 것 같은데 영양제도 좀 먹고 운동도 하고 그래'라는 조언(?)도 있었다. 나는 그때 심한 현기증과 반복되는 몸살기운으로 수십만원대의 산후보약을 먹고 있었고 영양제는 임신 때부터 종류별로 챙겨먹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은... 돌 전 아기를 양육해 본 사람이라면 따로 베이비시터를 두지 않은 가정에서 정기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대부분 알고 있을테니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홈트? 우리 집의 작은 거실은 이미 아기 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댓글에 하나하나 답을 달려다 나는 쓸데 없는 짓을 했다 싶어서 아예 글을 삭제해버렸다. 하지만 너무 뜻밖에 받게 된 냉대와 질시는 가뜩이나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내 정신에 깊이 타격을 줬다.
그 전에도 유모차를 끌고 나가기만 하면 한 마디씩 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아기 엄마는 격려와 존중의 대상이라기보단 훈계와 질시의 대상이라는 것을 몸소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산부일 때는 지하철 좌석까지 마련돼 있을 정도로(물론 논란이 많지만) 형식적이나마 사회적 배려를 받아 왔는데, 그 아이가 세상으로 나온 순간 나는 힘들다고 해서도 안 되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엄마 자격'이 없는 나쁜 여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데, 그냥 무조건 참아야만 하나?
그렇다고 했다. 친정 엄마도, 친구들도, 맘카페의 많은 엄마들도, 모두들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된 이상 별 수 없지 않냐며. 이미 낳은 애를 뱃속으로 넣을 수도 없고 네가 힘을 내서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들 했다. 나 역시 아기에 대한 책임감 하나만으로 그 말을 들으며 꾸역꾸역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하지만 인내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결국 아기띠가 잠기지 않아서, 냄비가 뜨겁다는 이유로 엉엉 울며 대성통곡을 하는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겪게 됐다. 회사는 힘들면 퇴사라도 하고, 인간 관계는 안 만나면 그만인데, 엄마가 된 이상 육아는 내 인생이 계속되는 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절망감이 말로 할 수 없었다. 급기야 누우면 매 순간 진지하게 자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