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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7개월차, 정신과를 알아보다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3

by 뚜벅초


남들은 '100일의 기적'이 오면 괜찮아진다고, 아기가 6개월이 넘으면 훨씬 살만해진다고들 했다. 애석하게도 우리 아기에게 100일의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분리불안이 시작되며 단 한 순간도 내 품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차라리 '아기체육관'이라도 펼쳐 놓으면 컨디션 좋을 때는 제법 놀기도 해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내가 눈에 띄지 않으면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우리 아기는 정확히 6개월 30일까지 낮잠을 아기띠 안에서만 잤다. 대근육 발달이 늦은 편이라 뒤집기는 170일이 되어서야 시작했고(보통 100일 전후로 시작한다), 200일이 훌쩍 넘어서도 배밀이조차 쉽지 않아서 본인이 더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가령 주말 이틀의 휴일이 있으면 토·일 중 하루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머지 하루는 집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또 일주일을 살아갈 힘이 충전됐다. 부득이하게 이틀 연속 외출을 하면 방전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한 것도 신기한데(다행히 결혼생활은 남편이 교대근무를 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나와 24시간 365일 매 시간, 단 10초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누군가가 생기는 육아는 그야말로 숨만 쉬어도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괴로움을 그저 참았다. 참고 외면하고 그냥 남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기도 더 순해지고 나도 엄마 역할에 익숙해지며 괜찮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울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 급기야 아기가 가뭄에 콩나듯 잘 자는 날에도 나는 혹시나 아기가 깨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지새게 됐다. 아기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가장 힘든 것은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아기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안정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정서적인 상처를 깊이 입고 자라왔다. 임신 때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육아서를 읽으며 내 아기에게는 절대 정서적 결핍을 주지 않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기를 귀찮아하고 있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아기에게 물려줄 것 같아 두려웠다. 결국 자책감이 심해져서 모두가 잠든 밤에는 다시 극단적인 생각이 강박적으로 찾아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기 앞에서 우는 모습이나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참았다. 그러다 어렵사리 아기를 재우고 나면, 지친 남편을 앉혀 놓고 하소연하다가 통곡을 했다. 너무 힘든데 방법이 없다고. 직장 일에 육아까지 이중고를 짊어지고 사는 남편도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그게 유일한 해소 방법이었다. 온라인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엄마들이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고 효과를 봤다는 글들을 여럿 봤다. 솔깃했지만 선뜻 정신과 예약을 잡을 수 없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내게 그곳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가야 할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자살을 직접적으로 시도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아기를 학대할 정도는 아니잖아, 그래도 아주 가끔은 기분 좋을 때도 있잖아. 나는 그렇게 차일피일 예약을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에 퇴근하는 남편이 평소보다 몇십 분 정도 늦어졌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차가 조금 막혀서였다. 그날따라 아기는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놀자고 졸랐고, 나는 그날 새벽 5시가 돼서야 잠에 들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나는 갑자기 아기를 앞에 두고 큰 소리로 통곡을 했다. 이렇게 힘든데 왜 다들 참으라고만 하냐고, 니들이 나처럼 살아보라고, 하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못하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보라고. 아기는 겁에 질려 눈물을 터트렸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아무런 기운이 없던 나는 그냥 힘없이 아기 옆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날 바로 정신과를 알아봤다. 나의 힘듦은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지만, 그 힘듦이 직접적으로 아기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단 약을 먹으면, 어떻게든 감정을 조금 추스를 수 있을거야. 적어도 아기 앞에서 화나 울음을 참을 정도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어렵지 않게 지역 내 신경정신과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SNS를 보니 여성 원장님이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분인 만큼 내가 겪고 있는 문제 상담에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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