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4
처음 정신과에 가던 날, 나는 지난 30몇년간 잦은 잔병치레 때문에 수많은 병원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 날처럼 병원 가는 게 조심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내가 갈 병원은 다른 많은 병원들이 입점해 있는 건물의 한 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와중에도 정신과가 있는 층에 다른 병원들도 같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만약 다른 병원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내가 정신과에 간다는 걸 눈치챌 테니까. 다시 볼 일도 없는 타인들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과도하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처음 들어선 정신과는, 내과나 이비인후과 등 내가 평소 다녔던 병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너무 평범했다. 내심 '이상한 행동을 하는 환자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까지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한 게 민망할 정도로 누구 하나 입을 열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그들 역시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각자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도움이 필요해서 이곳을 찾은,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인기가 많은 병원이라 대기 시간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는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왔기 때문에 내심 아기와 떨어져 대기실에서 책을 읽는 고요한 시간이 지루하기는커녕 편안하기만 했다. 출산 전 같으면 지루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을텐데. 긴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떤 점이 힘드셨냐고 묻는 의사 선생님에게 내가 한 첫마디는 "남들은 육아가 힘들어도 다 행복하다는데, 저는 하나도 안 행복하고 너무 힘들어요"였다.
선생님은 대뜸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라고 반문했다. "나도 하나도 안 행복했어요. 지금 10대 아이들 키우는데, 지금도 그 때로 돌아가라고 생각하면 끔찍해요."라고 바로 받아쳤다. 갑자기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힘들다는 나한테 왜 육아를 즐기지 못하냐고 책망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의 수많은 임출육 경험담 속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도 아기 미소만 보면 너무 행복해서 다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글들에게, '전문가'가 단호하게 반박했다!
"물론 육아를 강아지 키우듯 즐기는 성격의 사람들도 있어요. 강아지 키워 봤어요?"
"아뇨, 아 고양이는 키웠어요."
"고양이는 달라요. 고양이는 혼자 노니까 중학생 같은 거죠. 고양이 좋아하는 분들이면 육아 힘들 수 있어요."
나는 갑자기 또 불안감이 들었다. "근데, 강아지 좋아하는 성격인 것 같은 분들이 육아도 잘 하고 아이들도 밝게 잘 크는 것 같던데..." "아니에요. 사랑이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유치원만 들어가도 고양이형 엄마가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조금 의외였던 점은, 내가 겪고 있던 우울감이 아직까지도 산후 호르몬 영향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라는 설명이었다. 보통 산후우울증이라고 하면 길어도 출산 100일 내로 짧게 겪고 끝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나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최대 산후 1년까지도 호르몬의 불균형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병원을 찾은 산후 200일경은 오히려 그 증상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라고.
나는 상담 끝에 결론적으로 취침 전에 먹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항불안제 소량을 처방받았다. 약의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처음 먹는 '향정신성의약품'이 생경하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이걸 먹으면 이제 아기에게 화 내고 짜증내지 않게 될까?하는 기대감에 안심이 됐다. 그날 밤, 처음 취침약을 먹고 나는 임신 때 이후로 아주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