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올인클루시브 호텔 즐기기
라마단이 계속되고 있는 5월의 시작, 연휴처럼 조금은 긴 공휴일이 있었다. 이집트에 오래 산 사람이면 알고 있는 여행 팁은 라마단 기간에 여행을 많이 가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집션들이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동안 리조트나 휴양지에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쾌적한 환경에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한 긴 휴가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후르가다'를 다녀오기로 했다. 카이로에서 자동차로 5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으로 홍해가 접해있는 리조트 촌으로 유명하다. 시나이반도에 자리한 '샤름엘셰이크'와 더불어 이집트의 대표 휴양지 이다. 후르가다가 좀 더 저렴하기 때문에 유럽이나 러시아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바캉스 장소이기도 하다.
후르가다로 가는 길은 캐나다나 아이슬란드에서 운전했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시야가 트인 끝을 알 수 없는 길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연한 원목 색을 띄는 모래 산과 마른 땅이 끝을 모르고 뻗어있었다. 아무 볼거리가 없어서 운전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차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운전이 수월하기도 했다.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이후로 올인클루시브 호텔을 예약한 건 오랜만이었다. 일박에 약 25만 원 정도인데 아침, 점심, 저녁, 간식 및 모든 음료수가 무료인 데다가 홍해가 바로 보이는 방이어서 휴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후르가다와 접해있는 홍해는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사이를 흐르는 폭이 좁고 긴 바다이다. 성경으로만 알고 있었던 홍해 바다는 멀리서 보았을 때 짙은 파란색과 옅은 하늘색이 뚜렷한 경계를 가지고 일렁이고 있었다. 성경을 읽으며 상상했던 어둡고 두려운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름은 Red sea인데 왜 파란 바다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름에 대한 여러 가지 기원이 있었다.
첫 번째로 언급되는 것은 많은 산호초가 자라고 있는데 보름 때, 물이 밀려 나가면 바닷속 깊이 있던 산호초들이 수면 가까이에 자리 잡게 되면서 붉은 산호초들 때문에 바다가 붉게 보인다는데서 홍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나흘 동안 바닷가에서 수영하면서 보니 물이 꼭 유리처럼 투명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설은 아카바만 동쪽에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만까지에 걸쳐 붉은 산맥들이 바다와 만나는데 이때 그 붉은 빛이 바다에 비쳐서 붉게 보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실 사막지대에서는 붉은 모래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또한 일리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설득된 세 번째 이야기는 터키 남쪽에 있어서 홍해라고 불렸다는 설이다. 투르크인들은 방향에 따라 ‘동쪽(청) 서쪽(백) 남쪽(홍색) 북쪽(흑색) 중앙(황색)’ 이렇게 색을 부여했다고 한다. 터키 북쪽에 있는 흑해가 오스만 튀르크가 들어선 15세기부터 사용되었다는 점과 터키어로 서쪽에 있는 지중해를 백해라고 부르는 점등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논리적인 추론이다.
세 가지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을 믿을지는 몰라도 홍해 바다를 앞에 두고 주스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게 특권처럼 다가왔다. 유럽과 러시아에서 많이 찾는 휴양지라서 그런지 온통 파란 눈의 서양인들 사이에 섞여서 더더욱 이집트가 아닌 것 같다는 착각이 들곤 했다.
무한히 제공되는 음식은 맛있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바다는 반가웠다. 바다에 한발을 디딜때 마다 뜨거운 태양과는 다르게 얼음처럼 차가워서 움츠려 들다가도 수영을 하다보면 이내 추위를 잊게되었다. 선배드에 누워있다가 수영했다가를 반복하고 책을 읽었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는 게으른 하루가 이곳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5월인데도 매일매일 40도를 갱신하는 여름의 길목에서 바다를 벗삼아 졸고 웃던 시간이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여행은 자주 했지만 유럽인들 처럼 느긋한 휴가는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지가 아니라서 오히려 마주앉은 홍해만으로 마음의 만족이 가득찼다.
이집트에 왔다면 기자 피라미드만큼이나 후르가다에 들려보는 건 어떨까?
뜻밖에 유럽식 휴가를 선물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