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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Nov 02. 2022

상실의 슬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에게

세상에는 결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상실의 슬픔이 내겐 그러했다.


나는 걱정이 많아서 어린 나이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나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의 삶을 구성하는 그의 조각이 점점 더 맞춰져 갈수록 나 스스로에 대한 죽음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더 두려워했다. 그 없는 삶이 상상되지 않아서.


두렵지만, 혹은 두려워서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80쯤 되어서 그가 먼저 떠나면 어쩌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그 없이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순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차라리 미쳐버리는 편이 나았을까,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가슴이 쓰라리게 아픈 상황에서도 밥이 입에 들어가고 잠을 자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인 내가 혐오스럽기도 했다.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서, 지금 당장 죽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Remember that he wants you to be happy."

한동안은 아무것도 읽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내가 직면한 이 거대한 슬픔과 고통을 감당해내기에도 버거웠다. 긴 시간 고심해서 보냈을 지인들의 연락에도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모르는 사람에게 '그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걸 잊지 마'라고 온 메시지를 읽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9년을 함께 했는데, 단 한 마디의 작별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너도 나를 두고 떠나기 싫었을 텐데,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마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지 않을까. 너를 두고 먼저 가게 되어 미안하다고. 나도 너와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고. 그동안 아주 많이 사랑했고, 정말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고. 나는 이제 없지만 어디에서든 함께 할 거라고. 그리고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말라고, 꼭 다시 행복해지라고.


떠난 그가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다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생각하니 그를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직면하는 그리움에 마음이 아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는 하루를 보내고, 울다가 잠드는 밤을 보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나가는 시간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힘겹게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밤 일어난 사고에 나는 다시 떠올리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5개월 전으로 끌려가버렸다. 뉴스 기사 제목만 읽었는데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면서도 여전히 거짓말 같은 그때의 상황. 심정지와 CPR, 응급차, 중환자실에서의 40일, 장례식, 그 이후의 고통스러운 나날들.. 옆의 친구가, 연인이, 그리고 작별인사도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져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 그리고 내 이후에 상실의 고통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받아본 사람으로서, 그 위로를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뉴스에서 접한 장면이 자꾸만 생생히 되풀이되고, 파도처럼 찾아오는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의 감정 때문인지 멍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는 것도 미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리다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세상은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산산조각 나버렸는데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세상이 밉기도 했었다.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마음만큼은 아니어도, 여기 이렇게 같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같은 경험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는데, 내가 지금 혼자 감당하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먼저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다.  글이  거대한 슬픔의 무게를 이고 있는 사람에게 닿는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느끼는 어떤 감정, 어떤 생각도 다 괜찮다고. 힘든 마음을 잘 보듬어주려면 몸이라도 건강해야 하니, 꼭 건강하게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자라고. 크기도 가늠이 되지 않는 슬픔을 소화해내는 것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고. 어떤 연유로든 죄책감은 절대 느끼지 말라고. 분노는 지금 감당하기에는 너무 괴로운 감정이니, 지금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슬픔에만 집중해도 좋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당신의 안녕과 행복일 거라고. 그리워하고 슬퍼하되, 떠난 사람을 위해서라도 꼭 스스로를 장 챙기라고.



삶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젊은 나이에 너무나 안타깝게 떠난 이들의 명복을 바라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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