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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May 03. 2022

서점일기 #1

2021.12.7

계약한지 한달 보름 정도 지난 것 같다.

계약할 때는 한 달이면 충분히 오픈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작은 평수에, 인테리어도 소박하게 할 거면서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는 내면의 타박이 매일 들려왔다. 내가 이렇게 추진력이 없고, 결정장애에 게으른 인간이었던가. 조금은 그렇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라며 괴로운 날도 많았다.

그 괴로움에 대한 내 안의 변명과 핑계는 늘 있었다. 인테리어 업체를 만나고 견적을 비교해보느라, 인테리어 사장님이 너무 바빠서 자꾸 미팅을 뒤로 미루셔서, 거의 정했던 인테리어업체와의 진행사항을 뒤엎고 새로운 업체와 하게 되서.. 히즈윌과 하기로 하고서 단 3일만에 천장공사, 도장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하염없이 진행이 길어졌다. 합판 가구를 제작하고, 스테인 마감을 하고, 가구제작을 추가하고, 이케아를 서너번 다녀오고... 지금의 핑계는 남편의 일이 많아서다. 연말에 몰려 있는 디자인 작업들이 우리 로고 디자인을 지연시켰고, 간판 제작이 안 되니 추가시공일정을 잡을 수가 없고 등등....

변명과 핑계를 일삼았지만, 그래도 조금씩조금씩 진행이 되어 테이블만 빼고는 스테인 2번, 테이블 바니시 작업까지 얼추 끝이 났다. 내일 벽면에 붙을 전면 책장 공사와 싱크대 설치, 윈도우시트 제거 공사를 하고 나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출 것 같다. 나머지 가구와 소품, 조명설치, 그리고 제일 중요한 책 주문 등 앞으로 할일도 잔뜩 남긴 했지만.

열심히 하고도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면만 보인다.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설명할 때 그런 부분을 내가 나서서 얘기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오늘은 그동안 부족했던 것 말고, 애쓴 것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해두어야겠다. 사장도 처음이고, 인테리어도 처음이고 모든 게 처음인데 무작정 합판으로 가구를 모조리 제작해버린 패기는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다. 결과를 떠나서,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꽂히면 앞만 보는 나란 녀석. 그래서 감당해야 하는 수고와 뒤치닥거리, 결과에 도달하기 전까지 불안과 의심, 주위의 원망어린 눈빛들.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나의 이 패턴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해보고나니 노하우도 생기고, 다음에는 더 요령껏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무거운 합판으로 가구를 만들고 내 손으로 칠하고 다듬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한번 해보고 나니 절대 다시 같은 방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을 찾을 거라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

> 합판은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다. 원목이면 더 좋겠지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다음에는 좀더 얇은 소재로 전문가에게 맡겨서 전체가 통일감 있게 인테리어할 것이다. 바니시마감도 전체적으로 하고. 아니다 다음 책방 책장은 땡스북스처럼 컴팩트한 모듈책장으로 꾸밀테다. 돈 많이 벌어서!


계속 손보고 수정해나가고 꾸며나가다보면 정가는 공간이 될 것 같다. 빨리 보고싶다. 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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