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휘슬러의 삶
하우스키핑 일도 적응을 했고, 밴쿠버 한인 마트에서 한국 음식, 조미료, 재료들도 장을 봤다. 휘슬러에서의 생활이 안정화가 되어 자리가 잡혔다. 이제 앞으로 다치지 않고 잘 살아가야 하는 일만 남았었다. 아직도 이런 모든 일들이 신기하고, 좋게 잘 풀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일이 적응이 되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쉬는 날이나, 퇴근 후 즐길 수 있는 취미거리를 하나 찾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한국에선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를 했었다. 다행히 휘슬러에도 축구팀이 있었고, 심지어 대회까지 열리고 있었다. 휘슬러에 있는 호텔들 또는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8개 팀이 만들어졌다. 그 8개 팀이 여름 동안 리그제로 진행된다.
경기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일을 마치고 옷 갈아입고 가기 좋은 시간대이다. 대회에 출전하는 대부분 선수들이 일을 마치고 오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계획을 세운 듯하다. 전후반 45분씩 90분 경기를 하고 선수 교체는 제한이 없다. 이 규정은 아이스하키에서 따온 듯했다. 리그가 끝나기 전까지, 매주 화, 목요일 경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여자 선수들이 꼭 팀에 있어야 했다. 경기에 뛰는 선수 11명 중에 2명은 여성 선수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만약 여성 선수가 1명밖에 없다면 남자 선수 9명, 여자 선수 1명으로 총 10명으로만 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런 규정을 가지고 경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라운드 안에서 여성이라고 편의를 주는 것은 없었다. 남성 선수와 똑같은 규정으로 대하고,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가 몸싸움을 펼쳐 여성 선수가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경기는 진행되었다. 신기한 점은 여성 선수들도 넘어졌다고 해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어나서 수비 자세를 취하거나, 공격에 적극 참여했다. 그녀들은 매우 공격적인 자세로 축구에 임했다. 조금만 걷어차이면 곧바로 똑같이 걷어찼고, 연신 Fxxx!!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경기를 했다. 남자 선수들 그 누구도 여자라고 봐주지 않았었고, 필드 위에 같은 선수로서 인지했다.
축구는 남성들의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에서 계속 취미생활로 축구를 했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이벤트성 경기를 제외하고는 여성과 남성이 한 팀으로 이뤄 경기를 한다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리그 대회를 열리는 곳에선 더욱 그랬기에 놀라웠다. 내 편견이 산산조각 나는 날이었다.
환경적인 부분도 많이 달랐다. 특히 천연 잔디가 신기했다. 한국에서 인조 잔디나 흙으로 된 운동장이 주로 이루는데 휘슬러는 달랐다. 천연 잔디였고, 잔디가 길어서 푹푹 빠지는 느낌이 들어 뛰기가 힘들었다. 또 선수들도 엄청 거칠었다. 한국에서 축구를 할 때 슬라이딩 태클이 자주 나오지 않지만, 휘슬러에선 조금만 공을 끌면 바로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왔고, 몸이 먼저 들어와 내 중심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아마추어 축구에서도 꽤나 거칠게 하는 선수들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파란 하늘 밑에서 공기가 맑고, 천연 잔디에서 공을 찰 수 있어 행복했다. 캐나다에서 뛸 수 있고, 휘슬러에서 공을 찰 수 있는 사실에 기뻤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규정으로 축구를 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들은 언제나 특별했다. 내 삶의 경험치가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춥지가 않고 기분 좋은 마른바람이었다. 휘슬러에도 그렇게 여름이 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꽤나 멀었지만 왠지 이 날만큼은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축구했던 것 중에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