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휘슬러의 삶
캐나다에서 무슨 일을 할까?라는 질문을 한국에서부터 스스로에게 했다. 반대로 많이 들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질문을 바꿔야 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듣는 것도 버거운 나의 영어 실력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 우연히 하우스 키핑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투숙객이 떠난 호텔방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유창한 영어 실력보단 건강한 신체가 필요했고, 성실함만 있으면 충분했다. 자신 있는 거라곤 건강한 팔과 다리이었고, 나름 성실한 내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관광지이자 호텔 산업이 많이 발달되어 있는 휘슬러에서 워홀 생활을 보냈다. 밴쿠버에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나오는 시골이긴 했지만, 휘슬러 빌리지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다 구할 수 있었다. 많은 호텔 중 휘슬러 포시즌 호텔을 선택했고, 2차례의 면접 끝에 채용이 되었다.
하우스키핑 일은 꽤나 고단했다. 침대를 만들기 위해 시트를 빼고 넣는 작업은 나에게 고난이었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윗몸을 굽혔다가 펴자면 허리가 들쑤셨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뒤집어 있는 시트를 그대로 깔 수 있어 항상 주의해야 한다. 킹사이즈인 침대 양 쪽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걷는 양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이 과정들이 진절머리가 나고 화가 솟구쳤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도 잠시 머물다 가는 구름처럼 금방 사라져 갔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반복하다 보니 내 감정의 날카로운 면은 물러지고 자동화된 기계처럼 할 수 있는 지경에 달았었다. 더러웠던 방이 깨끗하게 치워진 모습을 볼 때면 알게 모르게 성취감이 솟아올랐었다. 방을 치우면 치울수록 투숙객들의 생활 패턴이 보였고,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한 호기심으로 인한 질문이 내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해답도 없었고, 답해줄 자도 없었다.
하우스키핑 일을 하다 보면 뜻밖에 행운을 맞이하기도 한다. 바로 팁이다. 북미에서는 팁 문화가 잘 발달되어있다. 식당 같은 곳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팁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하우스키핑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처럼 기대를 품고 방을 들어가면 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을 때 팁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때 기분은 큰 노력 없이 행복을 싼 값으로 산 느낌이었다.
하우스키핑,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를 아예 쓰지 않는 것 또한 아니다. 미팅은 영어로 진행되고, 게스트들을 만났을 때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또 오피스에서 요구도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구석구석까지 청소할 수 있는 세밀함도 필요하고, 호텔 규정에 맞게 물품을 비치할 수 있는 기억력 또한 필요하며 꾸준히 할 수 있는 건강함도 필요하다. 하우스키핑은 꽤나 잠재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우스키핑은 매력적인 일이다. 흔적을 지우기 때문이다. 많이 구겨지고 더러워진 침대 시트를 갈아주고, 새하얀 시트를 가져와 호텔 규정에 맞게 침대를 만들어준다. 새로운 수건들과 정해져 있는 호텔 물품들 모두를 새 물품으로 바꿔야 한다. 포시즌 호텔 바닥은 어두운 색계 열의 카펫이다. 이 카펫은 비밀을 잘 지키기 때문에 청소기를 구석구석 잘 청소해줘야 한다. 어디 숨어있는 머리카락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해줘야 한다. 또 그들의 냄새까지 지워야 하니 호텔에선 독한 세제와 방향제를 쓴다. 이렇듯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투숙객들 대부분은 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러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누구인지를 잊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고여 있는 익숙한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추억을 찾기 위해 올 수도 있다. 그들이 살아온 집에는 지우려 하면 할수록 번지는 잉크 같은 기억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내가 가족들에게 주었던 상처 혹은 가족들에게 받은 고통들이 지워지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 붙어있다. 하우스키핑은 청소라는 행위로 투숙객들이 순백의 시트 위에 누웠을 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잠시나마 잊도록 도와주고, 호텔에 머무는 동안에는 오직 현재를 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 워홀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그중에서 하우스키핑만 20년 가까이하신 멕시코 할머니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침밥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다고 하면, 멕시코 할머니는 아침밥은 항상 먹고 다녀야 한다며 핀잔과 함께 본인이 싸오신 커피와 빵을 내게 줬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자기 나이 되면 큰 일 난다면서 아침밥의 중요성을 나에게 주입시켜줬다. 아침밥의 중요성을 외국인 할머니께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멕시코 할머니께서 내게 해주신 말이 있었다. 그 말은 내 마음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그 말에는 그 간 경험해온 세월과 그 속에 겹겹이 쌓여서 생긴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우스키핑 일은 누구나 하길 싫어하지. 하지만 아무나 못해. 때론 일은 너무 힘들고 고되지만, 나는 하우스키핑 일을 만족하고 너무 사랑해.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