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nock! Knock! 05화

나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휘슬러의 삶

by 림스
쉬는 날 커피를 마시며 쉬는 집 앞마당


“어제 가족 단톡 방 봤어? 네 동생 취직했다고 하더라."


오래간만에 룸메형이랑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한국에서 카카오톡 통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아빠였다. 동생의 취업 성공과, 동생이 앞으로 다니게 될 회사에 대한 정보 등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평소에 표현은 잘 안 했지만, 그간 동생이 열심히 살아온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동생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면도 있었다. 그래서 동생의 취업이 진심으로 축하하고,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제 시작이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이제 너 내년에 한국에 오면 너만 취업하면 돼~ 너 벌써 내년이면 스물일곱이다. 큰일 났어”


“큰 일 이요? 무슨 큰 일?”


“스물일곱 살이잖아, 그게 큰일이지 뭐야.”


사실 아빠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지는 첫 문장에서 알았다. 한 번 되물음으로써 내 생각과 주장을 피력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굳이 전화로 더 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해 보였다.


한국에서 ‘나이’란 그 사람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준다. 만약 그 설명이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걱정이라는 명분으로 과한 오지랖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남자 나이로 26살의 삶은 보편적으로 마지막 학년을 보내거나 막 취업을 한 상태여야 하고, 나이 30살이 되면 슬슬 결혼 생각을 해야 하며, 나이 40이 넘어가면 안정된 직장과 집, 돈, 자식이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마치 초록색은 잔디여야 하고, 파란색은 하늘이어야 하며, 빨간색은 해님이어야 하는 것처럼.


그 과한 오지랖은 사실 걱정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있는 것을 하나쯤이라도 알아채는 순간 오지랖을 부림으로써 ‘그래도 쟤보다는 낫다.’라는 자신만의 위안거리로 삼기 때문이다. 동경이 어렵지 동정은 쉬우니깐.


하지만 캐나다는 달랐다. 나이를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한국인들과 통성명할 때 정도만 필요했다. 일을 할 때 필요한 이력서에도, 면접에서도 쓰거나 묻지 않았다. 그저 ‘나’라는 사람에 집중해줬다. 나이는 그저 내 헤어스타일과 같은 나에 관한 것 중에 하나였다. 중요한 것도 아닌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 그게 나이였다.


이렇다 보니 캐나다에서 와서 지내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위의 삶이 정답인 줄 알고 살아왔고, 그렇게 살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았다. 나이, 물론 중요하지만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것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옅어졌다. 사람의 얼굴, 인종, 피부색이 다 다른 것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기준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부터 다르게 살 것이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오기 전까지는 직장인 친구들에게 회사에서 밀어내기 전까지 퇴사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퇴사할까?라고 고민하는 친구에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삶은 다양해. 나오고 싶으면 나와. 당연히 책임은 네 스스로 지는 것이지. 하지만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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