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 좋아하는 걸 알게 된 사람이 흔히 하는 오해가 '당연히 소설을 많이 읽었을 것'인데, 사실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별로 이유는 없다. 내 독서는 목적이 없는 순수한 취미라서, 직업적으로라도 이야기를 많이 접해야 한다는 의식 같은 게 전혀 없었다. 그저 단순히 내겐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까지 쓰다 보니 생각났는데, 마지막으로 읽었던 문학상 수상 모음집이 끔찍하게 재미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독자의 의문을 자극하고, 캐릭터들이 각자 제 알아서 날뛰다가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하며 책장을 다 넘기고 마는 그런 힘이 근본에 있어야 한다. 근데 그 문학상 모음집은 뭐랄까, 명료하지 않은 데다 극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먹어주는 문학 사조만 신경 쓴 문장들을 나열해 코끼리코 만들어 빙글빙글 돌다가 뜬금없는 결말로 앞의 내용을 전부 모호하게 날려버린 채 기어코 여태까지 참고 책장을 넘긴 이를 병신으로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작가에겐 이 글을 보는 나와 소통하려는 마음이 있기는 한가? 싶은 실망감. 문학상 심사위원 보라고 쓴 글일 테니 내가 불평할 건 아니지만.
하여간 험담이 길어졌으나 올해가 되며 생각한 여러 가지 들 중 하나는, 다시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그게 야끼소바를 먹다가 든 생각인데,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야끼소바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면을 국물에 말지 않는다는 발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 국물은 면을 담근 물이 아니라, 면 요리를 정의하는 절반의 구성원이다. 게다가 가난했던 시절에 상한 막국수를 먹고 체한 경험까지 있어서 국물이 없는 면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면이라는 장르의 요리가 크게 볶음면과 탕면으로 나뉘니 면요리의 절반을 싫어하고 살았던 셈이다. 어느 날 어디선가 야끼소바의 요리법에 관해 쓴 글을 읽었는데 무슨 변덕인지 그날따라 그게 먹고 싶었다. 아마도 위에 얹은 달걀프라이와 간장 소스, 돼지고기 토핑에 관한 묘사가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면을 국물에 말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큰 마음먹고 주문한 야끼소바의 맛은 면의 형태를 했다는 것 말고 국물 면요리와 아예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불 맛이 살아 있는 재료의 향기와 물에 젖지 않은 식감, 소스가 졸아들며 배가 된 진한 맛은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후회하게 만들만했다.
알고 보니 나는 아주 단편적이고 별 거 아닌 이유로 가질 수 있던 절반의 즐거움을 잊은 채 면요리를 먹고 있었다. 묘하게 그 순간 소설이 생각났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을 싫어해.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것 또한 변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유연하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지금은 그렇다는 감상이 들지언정, 그것에 관한 판단은 유보하는 여유를 갖는 것. 나의 세계를 정의할수록 가질 수도 있을 즐거움의 총량은 줄어드는구나 생각했다. 야끼소바를 먹음으로써 찾은 절반의 즐거움처럼.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읽어봤는데 괜찮았던 소설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