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일기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대중교통의 불편함과 늘 함께 하는 것이다. 배차 간격이 긴 데다, 버스가 마을 구석구석까지 다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구에 차가 두 대있는 집이 드물지 않다. 남편이 통근버스가 있는 회사에 다니면 차 한 대로도 충분하지만(이 지역에서는 흔한 경우다), 우리 집은 두 대가 필요한데도 한 대밖에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더 불편했다. 병원에 가려면 아픈 아이, 아프지 않은 아이 모두 데리고 움직여야 해서 택시를 부르기도, 남의 차를 얻어 타기도 곤란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다닌다. 학교까지 거리는 멀지 않지만 통학로 중간중간 인도가 없는 구간이 있어 대부분 부모가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주거나, 학원차량을 이용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학원도 안 다니고, 엄마 차도 없기에 매일 걸어 다닌다.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에 달팽이도 보고, 길고양이 집이나 제비집도 찾아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저 집은 애가 많아서 그런지 애들을 내놓고 키운다"며 (다 들리게) 수군거린다. 외벌이라 차 한 대 더 사기 쉽지 않아서 그렇겠다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고는, 굳이 내게 그 말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런 말들이 돌고 돌면서 우리 집 아이들은 ‘소중하게 키워지지 않는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엄마 차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우리는 괜찮다며, 기죽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나 또한 불편할 뿐이지 기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내버스도 잘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대견했다. (내가 쿨병에 걸린 걸까?)
몇 년 전, 아이가 노선버스가 없는 곳까지 매일 다녀야 해서 카풀을 한 적이 있다. 최근 그 집 아이가 우리 아이를 따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내게 말하지 않고 숨겨서 이미 몇 년 전 일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잘 지내라고 차를 태워 보냈었는데…… 엄마 차가 없어서 다른 집 차에 신세를 져야 했던 것이, 아이를 침묵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상처는 아직까지 아이에게 남아있고, 지금 겪는 문제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내가 제때 알아차렸더라면 그중 하나는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없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가난이 맞네. 차가 없는 것은.
어른인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