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3
개인주의자 선언-나라는 레고 조각-
2019. 9월에 끄적끄적
생각을 낳는 문장
"그냥 레고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거다."(19쪽)
레고 조각은 전체에 잘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 거부의 마찰없이 레고 조각은 전체에 합체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잘 다듬어 지지 못했다. 어쩌면 레고 조각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잘 들어맞지 않거나 끼워져 있으면 늘 가슴속에는 불만의 튕겨짐이 생겼다. 어쩌면 합체 여부가 기준인 레고 조각보다 독립된 개인이 각자의 지향으로 끝없는 버걱거림 속에 존재하는 것이 더 인간적일 것이라는 요즘 내 생각이다. 레고 조각이 되지 못한 수많은 선택들, 인간들, 성향들, 생각들 이 모든 것에 더 집중하고 싶다.
나는 차라리 별개로 분리된 존재로 필요한 상황에서의 한시적 동행을 원했던 것 같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과잉 기대도 말고 과장된 절망도 치우고 서로 그나마 예쁜 구석을 찾아가며 참고 살자 싶다. "(19쪽)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나온 글 중에서 가장 동의하는 부분이다. 인간에 대한 과잉의 기대는 벼랑 같은 실망을 낳고 곧 냉소를 낳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리라는 그런 쿨함이 더 어려운 것 아닌가?
나는 늘 쿨한 척, 냉소를 보이다가도 결정적으로 사람에게 기대한 후 낙담의 술잔을 들이켰던 것 같다.
냉소와 열정의 좌충우돌 속에서 마음은 충분히 물렁하게 다져져서 다음의 문장을 이해하고 진실로 동의하게 된 듯하다.
" 인간의 본질적 한계, 이기심, 위선, 추악함 운운하며 바뀌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존재답게 최소한의 공존의 지혜를 찾아가자."(18쪽)
미련하게 반복하고 반복된 실패는 나로 하여금 위 문장이 현실에서 어떤 위력이 있는 지를 잘 알도록 해주었다.
" 나이를 먹으며 조금 나아지는 것이 있다면 관성의 법칙으로 멈춰 있을 때 조바심 내지 않고 몸을 맡겨두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20쪽)
이 판사님은 정기적으로 겨울철에 리셋과정을 갖으며 마음과 상황을 점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리셋이 다시 움직이도록 몸과 마음을 비워 준다고 한다.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낙관적이어서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아직 떨 깨져서 인지 맹렬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나의 둔함을 한탄한다. 나는 속도에 몸과 정신을 맡겨 무한의 속력에 일체가 되고 싶다.
아마도 이 판사는 자신이 원했던 부분에서 정점을 올라본 경험이 있어서 여유의 필요성을 잘 알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고 한 번도 제대로 걷지도 달리지도 못했다. 여유의 시간을 갖다가 멈춰 서서 영원히 달리지 못 할 것 같다는 불안이 내겐 더 크다.
어떻게 박살나던 맹렬한 속력에 내 스스로 겁을 먹고 브레이크를 밟을 만큼, 그렇게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