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삶, 가려진 밥의 이야기
“예술은 삶에 대한 비평”이라고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은 주장한다. 나는 사소한 것, 버려진 것, 무관심, 바닥, 비관적인 것들에 대해 사회가 규정한 위치와 평가, 접근법으로 응축된 공고함을 흔들려 한다.
나는 멋지고 재미있고 유쾌하고 신비롭고 흥미롭고 다의적이고 간접적이며 복합적일 것을 요구하는 현실의 코드체계에서 이탈한다. 알쏭달쏭한 관념과 개념의 장벽 뒤에서 나를 보호하기보다 나와 작품의 등장인물에게만 중요한 소통체계를 형성하기 위해 기꺼이 비웃음과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두려움에 기꺼이 마주한다.
‘고요한 밥 거룩한 밥’은 삶에 대한 것이다. 삶의 시작과 결과에 밥이 있다. 한 끼의 식사는 먹는 이의 생존방식(밥 벌이)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삶의 단면이다. 단면은 사물이나 사건의 여러 현상 가운데 한 부분적인 측면인 동시에 시간의 집적이 드러나는 궤적을 나타내기도 한다. 삶이 밴 작품은 결과만이 아닌 과정의 축적을, 흔적과 노동의 집적이 녹아 있는 것이다.
현재 삶을 구성한 과거의 층위는 결과를 형성한 존재였음에도 결과물에 과거의 역할과 존재를 부정당하기 쉽다. 이번 개인전은 결과를 독식한 주인공과 그 분들에 의해 익명으로, 주변인으로, 배경으로, 과정으로 떠밀렸던 사람과 삶의 등장에 나의 노동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조건 하에서 교환의 영역은 등가교환관계이며 위계가 발생하지 않는다.
내 작품의 존재 의의는 한 가지 색으로 규정된 수많은 익명의 존재들의 몫을 찾고 배제와 떠밀림으로 제거당한 꿈의 진전을 매개하는 것이다.
2019년 9월 인천 계양구 주민도서관 건물에서 발견한 폐기물 딱지 붙어 있는 나무 상판도 버려지기 전에는 누군가의 한 끼의 식사, 끽연의 휴식을 주었을 것이다.
캔버스 틀과 식당 의자도 한때는 예술가의 열정과 자영업자의 희망을 지탱해주던 물건이었다. 현실이 꿈의 포기를 강요한 순간 그 의자는 시설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정든 식당을 떠나야 했던 주인에게 쓰라림만 주는 것으로 변했고 그 틀은 작가에게 미련의 눈물을 자극하는 사물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새로움은 낮은 가치평가를 받아왔던 것들이 갤러리와 도서관에 진입하여 인간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돕는 것이다.
보리스 그로이 [Boris Groys]가 주장하는 새로움은 이전까지 없던 무엇인가를 창출하거나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가치위계를 전도하는 것에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소한 것, 낮은 것, 낯선 것, 원시적인 것 혹은 속된 것이 가치절상 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보리스 그로이의 문제의식은 그간의 나의 작업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의 과정을 설계하는 데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버려지고 배제된 물건과 삶에 동병상련을 느끼지만 나의 노동으로 형성한 작품은 나의 투사물이 아닌, 그들의 삶과 나의 표현이 재구성되어 각자의 꿈이 딛고 설 ‘꿈틀’이기를 희망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작업의 원리는 흔적의 집적과 노동의 집약이다. 삶의 과정과 결과를 표현하기 위해 반투명의 재료를 겹겹이 쌓아 올려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고, 배식대와 의자 모두 버려진 나무토막을 결합하거나 집적하는 노동의 집약을 통해 제작했다.
이전에 유화물감으로 작업했던 작품이 이번에는 하나의 바탕이 되고 그 위에 한지를 한 겹 올릴 때마다 해당하는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결과물은 한 면의 그림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그 화면 아래에도 겹겹의 그림이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 작품 중에서 습작 시리즈와 거리 취식 시리즈 등은 결과에 배제된 과정을 밥 벌이가 남긴 삶의 흔적과 상흔을 각각의 화면에 구성하고 이를 집적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스크래치는 등장인물이 삶에서 겪은 흔적을 표현한다. 스크래치 기법을 토대로 회화,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등장인물에 따라 맞췄다. 스크래치의 확장기법으로서 프로타주를 쓰거나, 또한 프로타주를 지움으로써 형상을 만들었다.
전통적 회화 재료 대신에, 등장인물의 삶과 환경에서 흔하게 보이는 사물이나 재료를 써서 정서적 공감을 표현했다. 흑백의 화면구성은 본질과 현상이 전도된 관계를 보여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 사물과 화폐 관계로 바뀌어 마주선다. 이런 전도에 따라 인간보다 화폐나 상품을 사회의 중심으로 파악하는 물신숭배가 나타난다. 화려한 색과 화장술의 향연 속에서 흑백을 통해서 원초적 진실을 찾는다.
나의 흑백 동경은 “나에게 색채란 인위적인 것, 화장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롤랑바르트 [Roland Gérard Barthes]의 주장에 찬동한 것이며 “칙칙하고 어둡다”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의 방법을 고집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목탄, 단색 판화, 완성 후 긁어내는 스크래치는 내면에 새겨질 이미지의 홈과 흠을 깊게 파서 오래 지속하게 만들 것이란 생각에서다.
나의 존재와 시간이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않고 작업을 통해 갚는 것이 작가의 존재이유임을 깨닫는다. 나는 더 우직하고 더 투박하고 더 거칠게 긁고,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려서 체념의 굳은 살 속에 감춰진 삶의 상처를 예민하게 표현하기를 희망한다.
돈 잔치의 향연을 화려한 색과 모순적 개념으로 감추는 위선의 시대에 나는 진정어린 흑백과 긁기와 칼질로 버려지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으로 구성하고 싶다.
임동현, 봉투 밥,491.0×116.8cm_Mixed media on canvas_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