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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12. 2019

나는 사실 대만을 잘 몰라요

가오슝에서, 열네 번째 일기

음식점에 가면 꼭 처음 보는 것만 시켜보는 사람이 있다. 남들이 거기 어때?라고 묻는 순간을 위해 굳이 어딘가로 여행을 하고, 온갖 것을 다 해보려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사실 여행뿐만 아니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어느 정도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뭔가를 잘한다고 말하기가 겁났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평생 무엇에도 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왜냐면 세상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나 두 사람, 혹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재능 있고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괴로웠다. 세상엔 이렇게나 잘난 사람이 많은데 대체 난 어떡하냔 말이다. 


늘 느끼지만 몇 개월 만에 인생을 바꿨다는 사람들은 쉽게 신뢰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사람이 해온 게 있지. 어떻게 하루 만에 달라지겠는가? 그건 그냥 희망사항이다. 그렇기에 당연하게 대만에 오기 전에도, 또 와서도 내 행보는 비슷했다.


어학원에서 남들보다 못할 내 모습이 싫어서 아예 방학 동안 중국어 공부만 했다. 맨바닥에 헤딩하는 기분이 좋지만은 안았다. 이번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고, 쓰던 소설은 아무리 봐도 쓰레기 같았으며 두 달을 학원에 바쳤는데 어째 선생님 말은 여전히 라틴어나 아랍어 같이 들렸다. 즉 분명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 같았다는 소리다. 학원에 갈 때마다 언니에게 짜증을 부렸다. 쓰레기 같은 나날들이었다.


대만에 와서 처음 얼마간은 괜찮았다. 여행을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서 그랬을까. 처음 몇 주 같은 그냥 재밌었고, 모든 것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를 가도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그렇지만 몇 주 지나고도 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터 우연히 불안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이곳에서. 앞으로도 밥을 먹고 식사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고, 공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등 지금까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을 제대로 못 해 곤혹스러운 하루를 겪고, 나는 나도 모르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여기선 도저히 못 있겠어. 내가 미쳤지. 왜 오겠다고 했을까!'


말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았다. 고작 몇 마디 단어를 안다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도무지 녹록지가 않았다. 어학원은 어느 날부터 한자 시험을 보기 시작했고, 처음 얼마간은 시험 범위를 가르쳐 주지 않고 문제를 냈다. 그때 어째서인지 참지 못하고 편지를 썼다. '제발 시험 범위를 알려주세요. 어디를 공부해야 할지 몰라요. 바보가 된 기분만 느낍니다. 공부를 하고 복습을 하게 해 주세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응석이었다. 나는 내가 계속해서 죽을 쑤고 있었던 게 너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바보가 되는 경험. 나는 전부터 그걸 견기질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내 발음을 고쳐주거나 내 문장을 고쳐주거나 하면, 분명 고마워야 하는데 어쩐지 수치스럽고 괴로웠다. 특히 여행에 있어서도 그랬다.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밖에 나가면 무조건 여행을 다녀야 한다고. 젊은 시절에 남는 건 여행뿐이라고. 특히 대만은 한국 사람들에게 손꼽히는 여행지가 아니던가. '거기 좋다는 데, 거기 가봤어?' 하고 물어보면 응. 근데 별로더라. 정말 좋더라.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아니 안 가봤는데.' 하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즉,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작 4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계속해서 쏘다녔다. 정말 나도 그 자아라는 걸 찾아보고 싶었고, 남들 앞에서 대만 전문가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도 대만에서 살다 왔는데, '라는 말을 해보고 싶었다. 아 난 정말 내가 잘나 보이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세 번의 타이베이, 두 번의 타이중, 그리고 칭징 농장과 치진 섬을 오가면서 나는 계속해서 더 많은 곳을 갈 생각을 했다. 모아놓은 돈은 진작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체력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세 번이나 크게 앓았다. 체하고 감기에 걸리고, 아침에 도무지 일어나질 못했다. 그런데도 강박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때는 그래야만 할 거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야 솔직히 말한다. 나는 대만을 잘 모른다.


남들 다 간 데서 가봤지만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곳. 칭징 농장에 가보시길

 대만을 잘 아는 것처럼 지껄이곤 했지만, 고작해야 몇 개월 산다고 그 나라의 겉핥기 이외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옷장에 숨어든 어린애처럼 슬쩍슬쩍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내 나름의 기억을 가지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지난 학기에 잠깐 들었던 중국어 회하 수업의 선생님의 말이 제격이다. 

'고작 공부 그거 잠깐 한다고 평생 그 나라에 살았던 사람처럼 말하길 바란다면 욕심이 지나친 거예요.'   


그렇다. 사실 내 모든 문제는 거기서 나온다. 나는 욕심이 너무 크다. 가끔은 글도 한 자 쓰지 않으면서 미래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길 원하고, 집에 도착하면 항상 아무 데나 옷을 던져놨으면서 내일은 반드시 깔끔한 방에서 살기를 바란다. 남들 앞에서는 늘 준비되길 바라고, 처음 겪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길 바랐다. 


지금은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내 친구 지현은 내 말에 극심하게 공감하며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이건 한국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가지고 있는 생각 같기도 해. 태어날 때부터 다 잘하길 바라는 거지. 머릿속으로 할 줄 아는 말도, 남 앞에서라면 더듬거리고 작아져. 목소리는 긴장으로 굳고 말에는 성조가 사라지지. 왜냐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내 주위에는 현자들만 살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그 말에 가슴 깊이 공감한다. 잘하고 싶다. 뭐든지. 정말 뭐든지.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안 해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러니 여기서는 솔직히 밝혀본다. 나는 대만을 잘 모른다. 대만 사람만큼도 모르고, 대만에 숱하게 여행 다니는 사람만큼도 모를 거다. 그렇지만 대만에 대한 추억은 있다. 


대만 친구들과 함께 대한 추억도,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 걷고 말하고 내 이름을 처음 부여받던 그런 기억들이 있다. 사실 고작 그거 살고 전문가를 자처하려 했던 일도 웃기다. 사실 나는 이십 년을 넘게 인천에서 살아놓고, 아직도 부평 지하상가에서 길을 잃는다. 그런 걸 보면 솔직히 나는 주위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아마 나에게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누가 나에게 '그럼 너 대체 대만에 대해 아는 게 뭐야?' 하고 어이없이 쳐다보면, '그래도 몇 개월을 살았는데 아예 모르지는 않죠.' 하고 대답할 생각이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작년 여름, 잠깐 했던 단기 인턴 때 나의 사수였던 메인 피디께서는 이런 말을 했다. 


'남이 그저 잘하죠?라고 물으면 그냥 잘한다고 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해요. 그런 사람이 일을 더 받고, 그러다 보면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어요.'


자신의 실력의 자부심을 갖고, 실패와 수치심을 잊어버리란 말을 이렇게 고급스럽게 하다니. 내 기억에는 그분도 중국어를 전공하셨는데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공자의 통찰력이라도 얻는 걸까? 나 역시 공자의 어리석은 제자라도 되기를 바라며. 누군가 내게 대만에 물으면 기꺼이 이렇게 대답하리다.


'사실 잘 아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아예 모르진 않아요. 그래도 남들보다야 많이 알죠. 그리고 한 번 더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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