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혜 Aug 22. 2023

#5 아등바등, 애쓰면서 사는 건 이제 그만둡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잖아요

운전을 할 수 없던 옛날부터 나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걸 좋아했다. 카라멜곽처럼 생긴 아파트와 빌라, 그리고 옹기종기 모인 주택들, 그 안에 불이 켜진 것과 꺼진 것이 어지러이 뒤섞인 풍경이 좋았다. 우리 집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먹고 소리 지르던 아빠, 날씨처럼 변하는 기분을 갖고 있던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내가 살던 우리 집도 멀리서 보면 저렇게 풍경이 될까. 천 여개의 집에는, 몇 배의 삶이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멀게 느껴지기에, 딱 몇 미터만 떨어지면 그저 풍경이 되기에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일 평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걸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똑같은 아파트에 다른 층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같은 방향에서 찍은 작품을 본 적 있다. 할머니부터 청년, 그리고 아이들까지 저마다의 삶은 너무나 다른데 같은 구조의 집에서 촬영된 그 작품 속에선 모두가 어딘지모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때 내 마음속 어딘가에, 어린 시절의 고속도로의 풍경과 함께 어딘가 위로를 받았다. 모두의 삶이 얼마간 비슷하다면, 내 외로움도 슬픔도 딱 나만 괴롭히지는 않을 테고 누군가는 같은 아픔을 갖고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테니까.


'회사를 그만뒀다.'라고 말하자 올해 초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왜 그만뒀냐.'라고 물었다. 회사를 그만둔 초기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내가 회사에서 겪는었던 막막함을 왈칵 토해내곤 했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가끔 속에서 '한'이 맺히는 먹먹함마저 느끼며 줄줄이 사탕처럼 이야길 마치고 나면, 순간적으로 속이야 시원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또 온 세상에서 나만 억울한 것처럼 굴었던 게 아닐까. 회사를 나만 다닌 것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복지 자체야 괜찮은 곳이 아니었을까. 나보다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도 있는데 어쩌면 나를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한심해하지는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들은 후, 몇 명에게는 '혼자만 힘든 척한다.' 거나 '그래도 회사를 그만둔 걸 후회하지는 않느냐'는 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제 얼굴에 침 뱉기인 줄도 모르고 집안싸움을 생중계하고 다니던 학청시절처럼 심장이 따끔거리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또 한 번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했던 걸까. 어쩌면 휩쓸렸던 건 아닐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마찬가지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러나 늘 결과는 같았다. 그러나 저러나 난 회사를 그만뒀다. 열풍에 휩쓸린 철없는 어린애처럼, 또 자기 뜻이 분명해 보이는 멋스러운 사람처럼.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여두어도 일어난 사건이 바뀌지는 않기에 난 그저 객관적인 사실에만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회사를 다녔다면 돈도 있고, 2~3년간의 미래도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연봉 조건도 내 연차에 업계 평균치를 고려했을 때 분명히 상위권이었을 테니까. 이런 점을 상기시키며 몇 번이고 퇴사할 결심을 억누르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수렁처럼 생각이 이어졌다.


먹고살려면 물론 회사를 다녀야 한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먹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살 일인지, 내 인생이 이만치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해야 할 어떤 가치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난 이미 몇 년 전부터 살고자 하는 의욕에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실감하고 있었다. 글로도 쓴 적 있다. 사고 싶어서 벼르고 별렀던 옷을 살만한,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무선 이어폰을 살만한, 그리고 홧김에 친구와 도망칠 동남아 비행기표를 살만한, 딱 30만 원만 있으면 나는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이 그 지경까지 가니 반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까짓 30만 원 안 벌면, 이 고생을 안 해도 되지 않나?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난 끊임없이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어야 했다. 아니, 솔직히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해도, 하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이 턱 끝까지 꾹꾹 눌러 차 매 순간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제 자리에 있으면 결과적으로 나만 뒤처지는 꼴이 아닐까? 분야가 공부가 되었든, 여가 활동이 되었든 또 운동이 되었던 난 언제나 유통기한 얼마 남지 않아 10%, 20% 할인 딱지를 붙을 일만 남은, 잉여 상품이 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이 자본주의가 문제야. 노동자의 인간성을 죽이고 사람을 부품 화하는 사회의 근본 체제부터 문제가 있다고.'

내가 이런 소릴 할 때면 다들 어디선가 본 '공산주의 밈'이라고 생각하여 웃곤 했는데, 사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고작 체재 비판 따위가 아니었다. 가끔은, 아니 꽤 자주 난 사람이 먹고 자고 살아 숨 쉬는 이른바 '생生'이 근본적으로 잔인하고 무쓸모한 개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소비해야 하고 먹어치워야 한다. 눈떠서 잠드는 그 순간까지 내 삶을 위해 쓰이는 전기와 물 그리고 음식의 값어치를 내가 하고 있을까? 드라마 <굿 플레이스>에서는 인간이 살아 숨 쉬는 이 삶이 이미 너무 복잡한 이해관계로 구성되어 있어 '선과 악'을 이전처럼 간단히 나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아픈 할머니를 위해 비를 뚫고 가서 바나나를 사 왔다면, 나라는 개인에게는 물론 좋은 일이지만 바나나를 생산하며 터무니없는 임금을 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나 그 바나나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일으켰을 공해를 감당할만한 일이었냐고 하면 솔직히 모르겠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의미 있는 계산이 될까? 그러나 우리나라 1,000원은 도쿄에서는 약 100엔, 타이베이에서는 약 25위안이다. 어떤 기후의 어떤 사정의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느냐에 따라 같은 나라에서도 그 선혼 가격매김이 달라진다. 결국 화패단위는 그 옛날 우리가 조개껍질을 가지고 물물교환을 하던 그때처럼,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임시방편으로 제안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극에 달해, 시애틀로도 도쿄를 사지 못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이처럼 화폐가치라고 해서 확고한 불변의 가치를 갖고 있지는 않기에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한 '생'의 가치를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개념으로 생의 가치를 고려해 보면 어떨까?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데, 일을 하다 보면 아주 가끔 행복하고 대부분 괴롭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이야 말로 가치가 있고, 행복하지 않은 삶이야 말로 무가치한 것이 아닐까?

이 논리는 굳이 번거롭게 반박하지 않겠다. 다만 세상엔 '버티는 삶'이 너무 많다. 그 고통을 감히 재단할 수 없기에 따라서 이 역시 논리적이지 않다. 살다 보면, 아침에 일어나 사람으로 꽉꽉 들어찬 지하철에 엉거주춤 끼어선, 서있다기보다는 '껴서 떠 있는' 상태로 약 한 시간 정도를 출근하고, 계속해서 혼이 나다 보면, 살기 위해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이 모든 게, 숨을 쉬고 일을 하고 밥을 먹는 게 다 그저 버티는 것만 같을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살아있다는 건 뭘까?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그러나 누군가는 전혀 알지 못할 책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감동받고, 또 점심에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들어가 퇴근 때까지 버티는 삶. 하지만 즐거운 날보다 그냥 죽어서 고통을 끝내고 싶은 사건 사고들이 더 많던 그 하루하루를, 정말 '산다'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죽어선 안 되는 걸까? 아무리 봐도 살아서 더 나아질 게 없는데, 삶을 오색찬란한 무엇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게 그저 과대포장은 아닐까?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대다수가 이렇게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아등바등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내가 그들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어떻게 저렇게까지 오버하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두가 그렇게 각기 다른 색의 안경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에 나에겐 너무도 어려운 일이, 누군가에겐 그저 오전에 사 온 커피와 함께라면 그럭저럭 해나갈 만한 일이라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일도 그렇고 공부도 운전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요령껏 공부해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곤 했지만, 어쩐지 공부가 너무 어렵고 막막하게 다가오는 사람도 세상엔 많다. 또 나는 운전을 하는 게 재밌고 올림픽대로처럼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로를 달릴 때면 그토록 따스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어디 가고 싶은 사람도 없고 운전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 운전면허만 따고 신분증으로 쓰는 사람들이 세상엔 더 많다는 것도 안다. 같은 이치로, 나에게는 회사가 어렵다. 꾸준히, 남들처럼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죽으려고도 해 봤는데, 생각보다 그냥 잘 살아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깔끔하게 죽기란 너무 어려웠다. 아등바등 애를 쓰고 마지막엔 운에 맡겨야 할 만큼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결국 같은 맥락이다.


 너무 아등바등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냥 할 수 없다고 놓아 버리는 게 답일지도 모른다. 철봉에 죽을 둥 살 둥 매달려 있는다고 일분 육 초가 일분 오초보다 더 건강하다고 볼 순 없는 것처럼. 불교에서는 소유가 곧 번뇌라고 보았고, 그래서 결국엔 '무'無로 돌아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모든 이치는 그렇게 흐르나 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니고 내 힘으로 할 순 없는 일을 해내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는 삶이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면 굳이 굳이 댐을 세워 물을 가둬 고인 물을 썩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내 짝사랑은 매번 같은 순간에 끝이 났다.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 해도, 결국 그의 마음 안에 내가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난 비로소 안달복달하던 사랑을 탈탈 털어버릴 수 있었다. 나는 그렇기에 퇴사했다. 회사가 힘들어서,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고 그냥 내가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곳에 계속 있으려면 죽었다 다시 태어날 각오를 해야 했기에 그만뒀다. 왜냐면 다시 태어나기엔 지금의 나를 만족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한창 흔들리고 괴로워할 때, 친한 언니한테 이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사실 죽으면 끝날 일에 난 왜 이렇게 연연할까? 사실 내가 죽어도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왜 나는 살아서 계속 같은 문제에 부딪히는 일을 고집할까? 그러자 언니가 그런 소릴 하지 말라며 어떤 사회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다 서로서로에게 어느 정도 속해 있어. 네가 갑자기 죽어 없어지거나, 내가 갑자기 죽어 없어진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그만큼 피해를 끼치는 거야. 왜냐면 그 사람들의 세상엔 네가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굉장히 그럴싸한 이야기다. 며칠 전 나도 비슷한 글을 썼지 않는가. 사람들은 각자 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고, 각자의 세상은 모두 다른 언어와 문화, 규칙을 갖고 있다고.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나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나의 세상 안에 부모님이 언니가 또 친구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모형정원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면, 갑자기 남의 집에 쳐들어가 '그 나무는 내가 주긴 했지만, 내 나무에서 꺾은 거니까 내 거야!'라는 논리를 피우며 남의 정원을 망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의 노래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내게 힘을 빼라고, 상체와 특히 어깨에 힘이 너무 잔뜩 들어가 있으며 그래서야 모든 게 억지스러울 뿐이라고 매주 우려를 건넸다. 내가 정말 그런가 집에 와서 곰곰이 들여다보니 정말 내가 요리를 하다 집중할 때면, 잘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나면, 대답하기 곤란할 때면 습관적으로 턱에 힘을 잔뜩 주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면 작년에 한창 회사 일로 고민이 많던 시절, 친구들이 놀러 와 우리 집에서 하루 자더니 밤사이 내가 그렇게 소릴 지르고 발끝까지 힘을 바짝 주고 있었다고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했던 기억이 났다. 할 수 없는 걸, 못 하는 걸 그냥 그러려니 하지 않고 왜 못할까, 왜 안 될까 왜 그렇게 전전긍긍했을까. 그러니 그렇게 세상살이가 어려웠구나. 나는 대체 어린 시절부터 스물 중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기에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쓰면서 억지로 억지로 살았던 걸까. 나와 가장 오래 함께한 건 나인데 이럴 때면 내가 참 멀고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언젠가는 나의 삶 전반에 대체 어떤 두려움이 있었길래 이렇게 힘을 바짝 주고 부들부들 참아내며 사는 게 삶이라고 여기게 되었는지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고 길게 풀어써보고 싶다.


요즘처럼 하루 한 편 글을 써서 올리는 일, (나는 개인적으로 '글쓰기 차력쇼'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 챌린지에 '회사 없이 건강하게 죽어가는 글쓰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결국 오늘의 글과 같은 맥락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물론 세상엔 더 많다. 하지만 때론 '이 회사를 다니면서는 그럴 수 없다.' 거나, 나처럼 회사를 다니면 삶 자체가 자연스러울 수 없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나름의 영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지은 제목이다. 퇴사를 해도 삶은 이어지니까. 난 다음 달부터 완전히 다른 업계에서 1년 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을 하게 됐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나를 먹여 살리고자 하는 나의 자연스러운 발버둥이 멈추지 않도록 일복도 여전한 모양이다.


딱히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왜 '건강하게 죽어가는 글쓰기'라고 적었을까. 왜냐면 사실 우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으니까, 어딘가로 출발하면 '걷고 있다'라고 하지 않고 '어딘가에 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 내 삶이 책이라면 그냥 이젠 책을 북-찢어버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끝맺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지어보았다. <젊은 ADHD의 슬픔>이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후킹하면서도 공감가게 쓰기엔 아직 내 글빨이 변변찮은 모양이다. 그런들 어찌하리. 그렇다고 제목으로 애쓰다가 시작도 할 순 없으니까 일단을 이렇게 한 번 써보겠다. 누군가 좋은 제목이 떠오르면 은근슬쩍 말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난 '자연스러운' 감사를 담아 사신 곳으로 절을 하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의 글에 알맞은 노래로 나는 이랑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를 기꺼이 추천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작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과 말 사이에 즐거움을 찾기에 바빴다. (노래 가사 중 일부)



 









매거진의 이전글 #4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걸 잊지 말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