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 글 쓰겠다고 했는데 또 일주일 만에 브런치 앞에 앉았다. 변명은 많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금, 토 이틀을 서울에서 인천까지 장거리 운전을 했고 올 때는 늘 깜깜한 밤이었다. 일요일엔 전 직장동료의 결혼식이 있어서 아침부터 천근 같은 몸을 이끌고 전철로 한 시간 반 거리를 오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요일은 자격증 시험을 보고 수, 목은 정신없이 아침에 먹을 빵, 당근 라페, 후무스 등을 만들고 세탁기를 적어도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를 돌리느라 하루 온종일 몸을 움직였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 피곤한 마음을 감당 못하고 언니와 엄마에게 다소 투덜거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월요일부터 학원에 가 있을 때 말고는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고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은 책을 읽었다.
새로 시작한 일은 나의 은사께서 새롭게 여신 학원에 국어 강사로써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새로운 일이라 아직은 나도 정신이 없지만, 수학이나 영어 과외를 할 때처럼 막막한 기분은 적어서 한편으론 안도감도 든다. 회사를 다니는 늘 그만두기 바로 직전, 마지막에 봤던 면접에서 면접관으로 들어온 대표는 내 이력을 보고 이런 얘길 했다. "책이야 잘 쓰면 잘 팔리겠죠. 유통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그럼 거의 한 일이 없는 거네요?" 집에 오면서, 그 회사에 들어가지 말아야겠다. 하고 결정하면서 저 질문은 내내 내 마음에 남았다. 그렇다면 약 2년 하고도 6개월, 통념적으로 3년 차의 생활동안 대체 내가 한 일은 무엇이며, 내 삶에는 결국 무엇이 남았을까?
물론 수업시간, 자는 시간 할 것 없이 숨어서 판타지 소설을 탐닉했던 어린 날들, 기분 따라 화내던 부모님을 피해 도망쳤던 나만의 소설 세계, 그리고 한 달에도 한두 권씩 국어 문제집을 새로 샀던 지난 시간들도 분명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좀 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대표를 다시 만날 일도 없고, 그 역시 다시 만나면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저번 회사 지난 직무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할 것이고 굳이 그의 뒷담을 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회사 생활에서 돌이켜보면 내게는 참 많은 귀인(貴人)이 있었고, 그들에게 배우고 받은 많은 시간들 덕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올 수 있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거의 종교와 다름없었던 전 사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혜 씨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 팀은 서로 더 친해질 수 있었어요. 우리 팀에 와줘서 고마워요, 지혜 씨
흔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난 인연과는 '진짜' 친구나 '진짜' 인간관계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근래 대학교 동창 모임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실수로 진짜 속내를 내비치는 순간, 상대는 '솔직하게 말해 괜찮아'라고 해놓고 이를 약점으로 써먹기 일쑤라고. 나에게도 그런 적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고 내게 이런 한탄을 하게 된 뿌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싶어, 그건 그렇지 하고 동의하고 넘겼다.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뻔한 말이지만 친구랑 나이와 상황을 막론하고 생기는 귀한 존재다. 귀인이 시대와 상황을 타지 않는 것처럼, 내 사수 역시 사회생활을 통해 만났지만 근 10년 동안 만난 사람 중 가장 귀한 존재 중 하나라고 다소 쑥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녀를 귀한 인연이라 느낀 까닭은, 함께 일한 건 약 1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1) 나를 뒤흔드는 감정의 파도를 인지하고, (2) 파도에서 일어나 (3) 파도를 대하는 올바른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남들 눈치를 보는 게 아주 습관이었다. 내 자리는 워낙 입구와 출구가 잘 보이는 위치라서, 가만히 있다가도 누군가 새롭게 걸어오는 모습이나 겨우 집에 가는 모습 피곤과 분노를 이겨내며 꾸역꾸역 타자를 치는 모습 등이 한눈에 내다보이곤 했다. 그런 데다가 저번 회사는 규모가 워낙 커서 서로서로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것과 상호 간 비즈니스 매너를 지키는 것, 회사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회사의 일부로서 행동해야만 하는 순간 등등 그동안 소규모 회사만 다녀봤던 나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상사나 거래처에서 한 소리라도 들고 나면, 다음날부터 그가 입구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이자마자 속이 역류했다. 실제로 회사를 다니는 고작 2년 몇 개월 동안 매주 병원에 가서 위염약을 받았는데도 역류성 식도염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나중엔 길을 걸어 다니다가도 저절로 위액이 역류해 '우웩' 하고 구역질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나에게는 한 마디만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마음 깊이 나를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내가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한 마디, 한 마디 등이 계속 마음이 쓰여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밤마다 불쑥불쑥 끔찍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럴 때면 사수는 늘 그 숲 속 깊은 곳에 자리한 호수처럼 깊고 차분한 얼굴로, '기분 나쁠만해요.' 라든가 '불안할만해요.'라는 식으로 내 감정을 우선 인정해 주고 공감해 줬다. 내가 내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 끙끙댈 때면 '그럼 지혜 씨 마음에 가장 큰 감정은 무엇인가요? 어느 정도의 규모인가요?' 등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실체 없는 불안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감정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데, 사수는 더 나아가 '~~ 게 해보면 어떨까요?' 라든가 '~~ 점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라고 본인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사수는 본인이 나에게 어떤 악감정도 없으며, 질책이 아니며 굳이 업무에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섞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혀 나를 안심시켰다. 또한 자주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제가 지혜 씨처럼 말했다고 해서 지혜 씨는 저를 안하무인이라고 생각할 건가요?'라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럴 때면 그동안 안팎으로 일어나는 불가해한 문제들을 대충 정리하고자 '내 탓'을 했던 나는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러면 대게 별 일 아니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가 또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사수는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나, 일을 하다 보면 으레 겪을 수밖에 없는 고비들에 힘들어할 때 한 번도 내게 '대체 왜 그러냐.' 라든가, '안 그럴 순 없는 거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무엇이 되었든 인정해 주었고, 나라는 인간이 가진 한계치를 '약점'이 아닌 그 자체로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 주었다. 특히 내가 특별히 못나지도 않았고, 제법 잘난 곳도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나의 불안과 걱정을 유난스럽지 않다고 말해주었기에 나는 내가 특별히 못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사람들이 이 일로 나를 비난하면 어떡하죠?'와 같은 가상의 불안을 느낄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다고 해서 별 일 생기지 않는다며 나보다 더한 잘못이나 언행을 하고도 잘만 살아가는 기기묘묘한 사회생활 '썰'을 풀어주었고, 정말로 별 일 아닌 걸로 불안해했다면 '그런 걸로 비난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주었다. 더불어, 간혹 내가 이상하게 뒷걸음질 칠 때면, 턱 하니 내 손목을 잡아주기도 했다. 내가 칭찬은 못 받아들이고 비난만 흡수할 때마다 '지혜 씨는 칭찬을 인정하는 일이 어색하시군요.'라고 말해주었고 결국 여러 절망감에 회사를 그만둘 때쯤 인수인계를 하며 내가 자조적으로 '별 거 없다. 나는 하는 일이 별로 없다.'라고 중얼거리자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지혜 씨가 방금 알려준 일들 모두 중요한 일이고, 저는 지혜 씨가 하는 일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결국, 퇴사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도 내가 나가면 일이 늘어날 게 분명하고 한동안 분위기가 뒤숭숭할 게 뻔한데도 사수는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덥석 안아주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웃음기로 잘 무마했던 순간이었는데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 느끼지 말라고, 사는 건 원래 남보다 자신을 살펴야 한다고 말해주었던 것도 바로 사수였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난 정말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건 나 자신에 대한 이유도 있지만 더는 피해자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무던한 팀원들에 비해 갈팡질팡했던 나 때문에 팀장님은 마음고생부터 시간낭비까지 많은 피해를 입었고, 끝끝내 나를 포기하면서 느꼈을 허탈감이나 배신감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다시 만날 수 없기에, 이를 상쇄할 기회조차 이젠 없다. 아마 나는 지나가는 사람일 테고, 나 따위야 벌써 잊고 잘 살겠지만은 사람에게는 수치심이란 게 있지 않겠는가? 일이 많아서든, 적응이 힘들어서든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번거롭고 귀찮은 직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매번 내 마음속에 사수가 나타나 차분하게 말한다.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별생각 없으실걸요. 있으셔도 뭐,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늘 침착하게 일할 수 있을까요? 관리자이자 상사에게 그런 불안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지혜 씨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해요. 앞으로 안 그러면 되는 거죠.'
나태주 시인의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는 시처럼, 나는 이제 사수가 없어도 사수를 향해 경애와 사랑을 보낼 수 있다. 왜냐면 내 안에 사수가 남긴 말들이 싹이 나고, 잎이 되어 꽃을 피웠기 때문에. 마음의 파도를 이겨내는 가장 강한 마음은, 파도가 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겨내거나 슬퍼하기보다는 '내가 이토록 어렵구나' 하고 탄식하고 파도에 질 수밖에 없는 나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인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파도가 치고 밤이 계속되는 암울한 삶에서도, 나를 이끌어 줄 마음의 불꽃이 있다. 격려와 사랑은 그래서 강한 것이다. 비난은 사람을 한 순간 무너지게 만들지만, 애정 어린 조언은 매 순간 사람을 다시 일어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토록 함께고, 시간이 지나 사수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도 그가 세우고 간 단단한 처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존재할 것이기에.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가는 전철을 함께 탄 사수가 문득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지혜 씨가 들어오고 우리 팀은 서로 더 친해질 수 있었다고, 우리 팀에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사수와 헤어지고 나서도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나는 둥둥 뜬 마음으로 계속해서 그 말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나도 어딘가에 속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나를 환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한평생 겉돌기만 한다고 느꼈던 나도 누군가에게는 반갑고 고마운 사람일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 역시 사수와 같이 되고 싶다. 좋은 인연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도 나는 누군가 내게 종교를 물으면 장난스레 '사수교'라고 답한다. 사수가 알게 된다면 질색팔색할 일이지만 뭐 어떤가. 사수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