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수영 가요.
수영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아이가 2주간의 방학을 끝내고,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는 날이었다. 오랜만의 등원이 낯설어 칭얼대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여러 방법으로 달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탕 하나 먹고 갈까?"
"싫어요, 안 갈래요."
"다녀와서 타요 보자."
"싫어요, 어린이집 가기 싫어!"
이러고 있으니 마침 연차를 써서 하루 쉬고 있던 남편이 다가와,
"이응아, 아빠는 아침에 회사 가지. 엄마는 수영 가지. 이응이는 어린이집에 가야 해."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납득한 표정으로
"가기 싫은데, 힝."
하면서도 겉옷을 입고 아빠와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엄마는 수영을 간다.
지난번 개학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수영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이응아, 아빠는 아침에 회사 가지. 엄마는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지. 이응이는 어린이집에 가야 해."
전업주부이니 이 말도 틀린 것 하나 없지만 왜 나는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약점을 잡힌 것처럼 불편했을까?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삶보다 수영하는 삶이 더 값지다거나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엄마는 수영 간다라는 말이 나의 일인 양, 회사에 가는 것만큼이나 값을 쳐주는 느낌이었다.
일상적인 가족과의 평범한 대화에서 그들과 다르게 나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정신 차린 뒤,
"그래, 아빠는 열심히 일해서 이응이 장난감 사줄 돈도 벌고, 엄마는 열심히 수영해서 이응이 수영 가르쳐 줘야지." 라며 나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그때 느꼈다. 내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구나. 분명 수영이 나의 자존감 높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대화를 계기로 수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몸이 피곤할 때면 게으름 피우며 강습을 빠지기도 하고, 강습날에 약속을 잡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후에는 회사에 출근하는 감각으로 일정표에서 강습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생리날이 겹쳐도 탐폰을 끼우고 강습에 임했다.
누가 알아주길 바란다거나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래야 스스로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쓰고 보니 너무 비장하네. 글을 조금 덜어내야 할 것 같다. 휴.
어쨌든 수영장에 출근 도장을 찍던 어느 날, 수영 강사님께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았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이냐면, 우리 수영 강사님은 칭찬은커녕 안 되는 부분 지적하느라 바쁘신 분이라 나도 칭찬을 받고 얼떨떨한 기분이 하루 종일 남아있었다. 같이 수영을 하는 수친(수영 친구)들도 요즘 확실히 더 잘하는 것 같다며 엄지 척을 날려 주었다.
가족과의 일상 대화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이 강사님의 칭찬으로 이어지며 점점 수영에 진심이 되었다. 어느 날은 아이 친구 엄마가 수영 대회에 나가냐고 물어온 적도 있었다.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집으로 돌아오며 '수영 대회'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내가? 수영 대회를? 그런데 잠깐, 안 될 것 뭐 있나?
그날 저녁 아이와 잠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떨리는 마음으로 수영 대회 스타트대에 선 내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