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손

by TJ

카이의 왼손 끝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빛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회복실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빛이 손가락을 흐리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엘레나가 그의 손을 잡으려 하자, 손끝이 닿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의 첫 마디가 비어 있었다.


피도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카이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표정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너무 차분해서 엘레나는 더 화가 났다.


"언제부터예요?"


"새벽."


"왜 말 안 했어요?"


"말하려고 했어."


"언제요? 손목까지 사라진 다음에?"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그의 왼손을 붙잡으려 했다. 손바닥은 아직 있었다. 하지만 손끝이 있어야 할 빈자리에 손가락이 닿자, 차가운 바람이 빠져나갔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닫히지 않은 문틈을 만지는 감각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요라 마스터."


이요라는 회복실 가장 안쪽 침대 옆에서 봉인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밤 전투로 로브는 찢겼고, 오른쪽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움직임은 정확했다.


"보고 있다."


"보고만 하지 말고 말하세요."


이요라는 카이의 손등에 은빛 가루를 뿌렸다. 999 아래로 번진 1000번째 선이 가루를 밀어냈다. 선은 피부 위의 상처가 아니었다. 피부 밑에 있는 시간의 틈이었다.


은빛 가루가 선 가까이에서 증발했다.


이요라의 손끝이 오래된 주문 문양을 더듬었다.


"존재 기반이 밀리고 있다."


"알아듣게 말하세요."


"카이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999번의 기억과 태양석 반응으로 현재에 고정된 사람에 가깝다."


카이가 눈을 감았다.


엘레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1000번째가 시작되면서, 그 고정점이 크로노스 쪽으로 끌려가고 있다."


"크로노스가 카이를 데려간다는 뜻인가요?"


"아니다."


이요라는 단호히 말했다.


"크로노스가 봉인 안쪽에서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카이의 존재가 그 빈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다. 둘은 같은 실패에서 생긴 두 조각이다. 하나가 버티면 다른 하나가 닳는다."


엘레나는 숨을 멈췄다.


카이의 왼손이 아주 조금 더 흐려졌다.


"막는 방법."


"폭풍의 요람."


"그곳에 태양석 핵이 있다. 태양석 조각이 기억을 붙잡는 못이라면, 핵은 못을 박는 망치다. 거기서 카이의 존재를 다시 계약해야 한다."


"요람까지 얼마나 걸리죠?"


"정상 경로로는 이틀."


"카이는?"


이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나 남았냐고요."


카이가 대신 말했다.


"하루."


엘레나는 그를 보았다.


"누가 그래요?"


"내 손이."


그는 흐려진 손끝을 들어 보였다.


"이 속도면 해가 두 번 뜨기 전에 없어져."


"그걸 왜 당신이 그렇게 쉽게 말해요?"


"쉽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런데 크게 말하면 네가 여기서 멈출까 봐."


"저를 또 계산하지 마세요."


카이는 입을 다물었다.


회복실 밖에서 다친 학생들이 옮겨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이름을 불렀다. 아카데미는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엘레나는 창밖을 보았다.


부서진 학당.


지하 봉인문.


크로노스.


카이의 사라지는 손.


스톰엔드에서 들려온 마라의 목소리.


모든 방향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제가 떠나면 봉인문은 누가 지켜요?"


이요라가 대답했다.


"내가."


"혼자서요?"


"남은 교수들과 함께."


"어제 교단이 뚫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문을 숨기지 않는다."


엘레나가 돌아섰다.


"무슨 뜻이죠?"


"숨긴 문은 냄새를 남긴다. 교단은 그 냄새를 따라왔다. 이제는 봉인을 여러 겹으로 나눠 학당 전체에 펼칠 거다. 문이 한 곳에 있지 않게 만들겠다."


"그럼 마스터가 위험해져요."


"이미 위험하다."


이요라는 부러진 봉인석을 집어 들었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네가 만든 위기가 아니다."


엘레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요라는 처음으로 설명이 아니라 책임을 말했다.


그때 회복실의 등불이 모두 꺼졌다.


바람도 없는데 불이 꺼졌다.


창문 위로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엘레나는 곧장 카이 앞에 섰다. 카이는 검을 잡으려 했지만 왼손이 따라오지 않았다. 손잡이를 쥐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그의 얼굴이 아주 잠깐 무너졌다.


엘레나는 그 표정을 보지 않은 척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카이가 오른손으로 검을 잡았다.


"아직 서 있어."


"알아요."


방 한가운데, 공기가 접혔다.


푸른빛이 얇게 열렸다. 봉인문이 아니었다. 균열의 아주 작은 틈. 그 틈 사이로 아이의 손이 비쳤다. 크로노스의 손이었다.


엘레나는 카이의 사라진 손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크로노스."


손이 유리 너머에서 밀듯 허공을 짚었다.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직.


짧았다.


그러나 들렸다.


카이가 한 걸음 다가갔다.


"크로노스."


아이의 손이 떨렸다.


아버...


멈춤.


또 늦은 사람.


카이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늦지 않겠다."


틈 너머에서 작은 웃음 같은 숨이 들렸다.


늦지 마.


"카이를 살릴 방법이 폭풍의 요람에 있어?"


엘레나가 물었다.


손이 아래로 움직였다. 긍정인지, 그저 버티는 움직임인지 알 수 없었다.


핵.


"태양석 핵?"


기억 다시 묶어.


"그러면 너는?"


크로노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이가 끝내 반박하지 못한 것이 답이었다.


엘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를 대가로 쓰지 않아."


틈 너머의 손이 멈췄다.


카이도 그녀를 보았다.


엘레나는 한 단어씩 말했다.


"카이도. 너도. 둘 다."


아이의 목소리가 아주 작아졌다.


어려워.


"그래도."


불가능할지도 몰라.


"그럼 불가능한 걸 하러 가."


크로노스의 손이 허공에 작은 원을 그렸다. 푸른빛이 잠깐 스톰엔드 쪽 지도를 만들었다. 바다. 검은 바람. 요람으로 이어지는 옛길. 지도 끝에 붉은 점이 깜박였다.


첫 문.


"스톰엔드."


마라.


그 이름이 크로노스의 입에서 나오자, 엘레나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마라가 왜?"


듣기 시작했어.


"정령을?"


응.


틈이 흔들렸다. 크로노스의 손끝이 빛으로 흩어졌다. 카이의 왼손도 동시에 더 흐려졌다.


이요라가 다급히 봉인석을 들었다.


"연결을 끊어야 한다. 둘이 같이 닳고 있다."


엘레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크로노스, 기다려. 우리가 갈게."


늦지 마.


틈이 닫혔다.


등불이 다시 켜졌다.


회복실의 시간도 돌아왔다. 밖의 신음소리, 치료사들의 발소리, 깨진 유리 밟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카이가 자기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세 개가 사라져 있었다.


엘레나는 그 손을 보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출발해요."


이요라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아카데미의 이동 결계가 손상됐다."


"걸어서라도."


"스톰엔드까지 반나절 이상이다. 그다음 폭풍의 요람 입구를 찾아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가면 중간에서 잡힌다."


"그럼 준비하세요."


이요라는 엘레나를 보았다.


"내가?"


"마스터가 아카데미를 맡겠다고 했죠. 그럼 우리가 떠날 길도 열어 주세요."


이요라의 얼굴에 짧은 웃음이 스쳤다. 지친 웃음이었다.


"명령하는 법을 배웠구나."


"배운 게 아니라 더 미룰 수 없는 거예요."


"좋다."


이요라는 책상으로 가서 낡은 지도를 펼쳤다. 아카데미에서 스톰엔드까지 이어지는 하늘길과 지상길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그중 쓰이지 않는 낡은 보급로 하나를 짚었다.


"바람의 정원 아래에 오래된 하강로가 있다. 창립 초기, 아카데미가 하늘에 고정되기 전 쓰던 길이다. 지금은 폐쇄됐지만, 결계 밖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다."


"위험하겠죠."


"그렇다."


"빠른가요?"


"가장 빠르다."


엘레나는 카이를 보았다.


"갈 수 있어요?"


카이는 오른손으로 검을 고쳐 쥐었다.


"가야지."


"그 말 말고요."


그는 그녀를 보았다.


"같이 갈 수 있어."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이요라는 봉인석 세 개를 엘레나에게 건넸다.


"하나는 길을 열고, 하나는 추적을 흐리고, 하나는 카이의 소멸을 잠시 늦춘다. 마지막 것은 하루에 한 번만 써라. 두 번 쓰면 카이의 시간이 찢긴다."


"나보다 봉인문에 쓰십시오."


"닥쳐라."


이요라의 목소리가 낮고 날카로웠다.


카이가 멈췄다.


"네가 사라지면 엘레나는 혼자 남는다. 그 아이도 혼자 남는다. 네 죽음을 거래로 내놓는 버릇을 이제 그만둬라."


회복실이 조용해졌다.


카이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엘레나는 봉인석을 받았다.


"마스터는요?"


"나는 여기 남는다."


"다시 숨기려고요?"


"아니."


이요라는 창밖의 부서진 광장을 보았다.


"이번에는 모두가 보는 곳에서 버틸 거다."


엘레나는 그녀를 오래 보았다.


"죽지 마세요."


"명령이냐?"


"네."


"어렵겠구나."


"해내세요."


이요라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의 정원은 더 이상 정원이 아니었다. 어제의 전투로 유리 온실은 깨졌고, 공중에 떠 있던 흙섬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도 몇몇 푸른 잎은 살아 있었다. 그 잎들이 엘레나가 지나갈 때마다 작게 떨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생각이 엘레나를 버티게 했다.


하강로 입구는 분수 아래에 있었다. 이요라가 건넨 첫 번째 봉인석을 끼우자 말라붙은 분수가 갈라졌다. 오래된 돌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어둡고 좁은 길이었다.


카이가 먼저 내려가려 했다.


엘레나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엘레나."


"당신 왼손 없어요."


카이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저는 아직 화났어요. 그러니까 제 말 들어요."


카이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엘레나는 계단 첫 칸에 발을 올렸다.


그때 카이가 낮게 불렀다.


"엘레나."


그녀가 돌아보았다.


그의 왼손은 손목까지 거의 비어 있었다.


"고마워."


"뭘요?"


"두고 가지 않아서."


엘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오른손을 잡았다.


"하루 안에 요람까지 가요."


계단 아래에서 검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카데미 위에서는 이요라의 결계가 다시 솟아올랐다. 은빛 사슬이 하늘을 가르고, 부서진 학당 전체를 하나의 봉인처럼 감쌌다.


카이의 왼손이 손목까지 사라졌다.


엘레나는 그의 오른손을 더 세게 잡았다.


하루.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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