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동맹
어둠이 스카이 아카데미의 첨탑을 삼키고 있었다.
엘레나가 거울 차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알던 세계는 이미 반쯤 무너져 있었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동쪽 탑은 검은 균열에 잠식되어 마치 거대한 손이 건물을 움켜쥔 것처럼 비틀려 있었고, 한때 푸른 빛으로 가득했던 바람의 정원은 잿빛 먼지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늦었어."
카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눈은 거울 세계에서의 경험 이후 더 깊어진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왼손에 쥔 시간의 조각이 희미하게 맥동했지만, 그 빛마저 예전 같지 않았다.
"늦지 않았어." 엘레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도 확신은 없었다.
스카이 아카데미 대강당. 한때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바람의 노래를 배우던 그곳은 이제 전쟁 회의실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원형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에는 붉은 표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각각의 표식은 데미안의 그림자가 삼킨 영역을 나타냈다.
"대륙의 삼분의 일이 이미 함락됐습니다."
아르카누스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엘레나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북부 산맥의 드워프 왕국, 동쪽 숲의 엘프 연합, 남부 해안의 인어 도시... 모두 연락이 끊겼습니다."
침묵이 대강당을 채웠다. 탁자 주위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공포가 새겨져 있었다. 바람의 장로 세 명, 스카이 아카데미의 교수 다섯 명, 그리고 각지에서 모여든 전사들과 마법사들. 한때 대륙을 지키던 수호자들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고작 스물여섯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가진 건 뭐죠?"
한 젊은 전사가 물었다. 그의 갑옷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묻어 있었다.
엘레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세 개의 빛이 떠올랐다.
"폭풍의 심장." 첫 번째 빛이 푸른색으로 맥동했다.
"시간의 조각." 두 번째 빛이 은색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세 번째 빛은 거울처럼 투명했다. "거울 차원에서 가져온 '진실의 파편'."
아르카누스의 눈이 커졌다.
"진실의 파편이라... 그것이 실존했단 말입니까?"
"거울 속의 내가 줬어요." 엘레나가 말했다. "데미안을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열쇠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림자 속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은빛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그녀의 눈은 시간 자체를 담고 있는 듯 깊었다.
엘레나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어머니?"
실비아 윈드콜러.
엘레나의 어머니이자, 20년 전 사라진 전설의 바람부름꾼.
"정확히 말하면, 네 '원본'의 어머니지."
실비아의 말에 대강당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엘레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거울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원본'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가슴에 못을 박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실비아가 엘레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 엘레나의 뺨을 감쌌다. 따뜻했다. "네가 누구의 복제품이든, 네가 느끼는 것, 네가 사랑하는 것, 네가 두려워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진짜야."
엘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여인은 진심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크로노스가 보냈어." 실비아가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크로노스가 마지막 힘을 써서 시간의 틈에 갇혀 있던 나를 꺼내줬지."
카이가 앞으로 나섰다.
"크로노스가요? 그는 사라졌습니다. 시간 법정에서..."
"사라진 게 아니야." 실비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아이는 자신을 시간의 직물 속에 녹여넣었어. 데미안이 시간 자체를 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강당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크로노스—엘레나와 카이의 아들이자 시간의 수호자—가 자신을 희생했다는 사실이 모든 이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실비아가 지도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도의 중심, 대륙의 정중앙을 가리켰다. "폭풍의 요람.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자, 모든 것이 끝나야 할 곳."
"데미안이 거기 있다는 건가요?" 아르카누스가 물었다.
"데미안뿐이 아닙니다." 실비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원본 엘레나와 원본 카이... 그들의 영혼도 거기에 갇혀 있어요."
회의는 밤새 계속됐다.
작전은 단순했다.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전력으로 복잡한 작전을 수행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세 팀으로 나눈다.
첫 번째 팀은 아르카누스가 이끈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남은 마법사들과 함께 방어 결계를 유지하며, 데미안의 그림자 군단을 최대한 오래 묶어둔다.
두 번째 팀은 실비아가 이끈다. 바람의 장로들과 함께 폭풍의 요람까지의 길을 연다. 데미안이 만들어놓은 시공간의 왜곡을 뚫어야 하기에, 실비아의 경험이 필수적이었다.
세 번째 팀은 엘레나와 카이. 단 둘이서 폭풍의 요람 깊숙이 들어가 데미안과 직접 대면한다.
"자살 작전이군요."
젊은 전사가 말했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한 가지 더." 실비아가 말했다. 그녀의 눈이 엘레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폭풍의 요람에서 세 개의 유물을 하나로 합쳐야 해. 폭풍의 심장, 시간의 조각, 진실의 파편. 이 셋이 합쳐지면 '근원의 빛'이 탄생해. 그것만이 데미안의 어둠을 소멸시킬 수 있어."
"대가는요?" 카이가 물었다.
실비아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어떤 대답보다 무거웠다.
"근원의 빛을 만들려면... 그릇이 필요해."
"그릇?"
"빛을 담을 존재. 세 유물의 힘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 근원의 빛 그 자체가 되는 존재." 실비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그 존재는... 소멸해."
대강당이 얼음처럼 굳었다.
엘레나는 알았다. 실비아가 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세 유물 중 두 개를 다룰 수 있는 존재, 바람과 시간 모두에 연결된 존재는 이 세계에 단 한 명뿐이었다.
자신.
"안 돼."
카이의 목소리가 대강당을 갈랐다. 그의 손이 엘레나의 팔을 잡았다. 떨리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반드시."
"카이..."
"당신을 잃고 세계를 구하는 건 의미가 없어." 카이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원본의 우리는 이미 그렇게 실패했잖아. 한쪽을 희생해서 다른 쪽을 구하려다 결국 둘 다 잃었어."
엘레나는 카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야."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미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눈이었다.
새벽이 왔다.
출발 전, 엘레나는 스카이 아카데미의 옥상에 홀로 서 있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한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람이 지금은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너는 선택할 수 있어."
바람이 속삭였다. 아니, 바람 속에 담긴 무수한 목소리들이 속삭였다. 과거의 바람부름꾼들, 수천 년간 바람과 함께했던 이들의 잔향.
"희생만이 답은 아니야."
엘레나는 눈을 감았다. 거울 차원에서 만난 또 다른 자신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흐려.'
그리고 크로노스의 마지막 말.
'엄마, 아빠...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만들어주세요.'
"다른 결말..." 엘레나가 중얼거렸다.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잠은 잤어?"
카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밤새 뜬 흔적이 역력했다.
"너야말로."
카이가 엘레나 옆에 섰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지평선 너머로 검은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데미안의 영역이었다.
"방법을 찾았어." 카이가 말했다.
엘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근원의 빛의 그릇. 네가 될 필요 없어."
"카이, 실비아 님이 말했잖아. 세 유물을 다룰 수 있는 건—"
"한 명이 아니라 둘이면 돼."
엘레나의 눈이 커졌다.
카이가 엘레나의 양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원본의 우리는 각자 싸웠어. 각자의 힘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그래서 실패했지." 카이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 크로노스가 우리를 만든 이유도 그거야.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대가는..."
"반으로 나눠지겠지." 카이가 미소 지었다. 슬프지만 따뜻한 미소. "소멸이 아니라, 변화가 될 수도 있어. 확신은 없지만... 너 혼자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엘레나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픔만의 눈물이 아니었다.
"바보 같은 왕자."
"바보 같은 마법사."
두 사람의 손이 맞잡혔다. 그 순간, 시간의 조각이 눈부시게 빛났다. 마치 그들의 결심에 응답하듯.
출발은 정오였다.
스카이 아카데미의 정문 앞에 스물여섯 명이 도열했다. 갑옷을 입은 자, 로브를 걸친 자, 맨몸에 주먹만 쥔 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장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하나였다.
아르카누스가 첫 번째 팀을 이끌고 동쪽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 그가 엘레나에게 말했다.
"처음 스카이 아카데미에 왔을 때, 당신은 바람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네, 기억해요."
"지금은 폭풍을 품고 있군요." 아르카누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엘레나가 그에게서 미소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돌아오십시오. 가르칠 것이 아직 많습니다."
실비아가 두 번째 팀과 함께 하늘로 올랐다. 바람의 장로들이 만든 기류가 그들을 실어 날랐다. 실비아가 엘레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 원본이 하지 못한 것을 해줘."
"뭔데요?"
"살아서 돌아오는 거야."
그리고 엘레나와 카이만 남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할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말이 필요 없었다.
엘레나가 바람을 불렀다. 카이가 검을 뽑았다.
폭풍의 요람을 향해, 마지막 여정이 시작됐다.
그런데 그들이 스카이 아카데미을 벗어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 카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카이? 왜 그래?"
카이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의 왼손—시간의 조각을 쥐고 있던 손—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시작됐나 보군."
"뭐가 시작된 거야?!"
카이가 엘레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엘레나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거울 차원에서... 나는 너와 다른 것을 봤어." 카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거울 속의 내가 말해줬지. 크로노스가 우리를 만들 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나의 존재 기반은... 불완전해."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고!"
"나는 폭풍의 요람에 도착하기 전에 사라질 수도 있어."
바람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을 지른 것은 엘레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