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극복으로 여겼던 운전면허 취득
"네가 운전하지 못하는 이유 열 가지 말해봐, 그럼 잔소리 안 할게" 나와 일하는 양 팀장님은 작년 1월부터 운전면허증 취득을 고집했다.
내 나이 38살.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녀도 불편함에 익숙해 있었다. 3년 전 서울에서 살 때만 해도 주변 3km 근방으로 중계역, 노원역, 하계역 등 지하철이 많았다. 간혹 장거리, 서울 외 지역의 경우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불편하다는 생각보다 불편해도 예전보다 좋아진 대중교통 시스템과 장애인 콜택시 제도가 내 삶에 익숙해 있었다.
그동안 내 삶의 비교 기준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대중교통으로 사회생활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불편함을 내가 아닌 사회 환경으로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그것만을 비판하는 관계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자극을 준 사람이 바로 양 팀장이다. "네가 운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 아니냐?" "못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외면한 것 아니냐?" “너랑 함께하는 가족을 생각해라” “너의 아들을 위해서라도 운전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
나의 삶을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그동안 내가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열등한 존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양 팀장의 말이 나에게 장애를 극복하라는 말이 아닌 배리어프리를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자동차 운전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면허시험장이 너무 멀어서, 업무시간 외 연차를 써가며 다닐 여력이 없다며, 포기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내가 이사 온 곳은 용인장애인운전면허장에서 멀지 않았다. 그렇게 2월부터 4월까지 2달 동안 필기시험, 운전연습, 기능시험, 도로주행을 끝으로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자동차 운전은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줄곧 그것을 장애 극복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운전면허 취득을 강조했던 양 팀장이 처음엔 미웠지만 지금은 큰 재산을 얻은 것만 같다. 15년 전 복지관 이용자에서 지금은 동료로서 장애인 권익옹호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 계단을 없애는 것이 배리어프리일까, 모든 교통약자들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능성을 외면하며 ‘장애 극복’으로 치부했던 관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계단이 없어도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계단은 장애가 아닌 과정이 되고 있었다. 난 그동안 내 주변의 계단과 턱을 없애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계단을 없애지 못해도!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경험하고 공유한다면 내가 몰랐던, 포기했던 가능성을 발견하고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내게 익숙해진 환경을 억지로 따라 하려는 것은 아닌지. 골형성 부전증 장애를 갖고 있는 내가,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부러지는 내가, 운전한다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닌지. 그렇지만 해야만 한다.
가족들과 지하철로 다니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을 걱정하며, 계단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다니며, 민원을 넣는 행위만이 배리어프리를 위한 활동은 아니다. 내가 운전면허증이 없었다면 나 때문에 가족들은 더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