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쁜 걸 좋아했다. 책 읽는 것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참 좋아했다.
한장 일하고 있었던 청충처음시절, 맥킨토시라는 기계를 봤을 때의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낯설지만 아름다웠던 그 화면은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그렇게 나는 편집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충무로와 을지로를 오가며 밤을 새우던 날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맥으로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안고 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버거운 일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제야 나는 멈춰야겠다는 걸 느꼈다.
좀 더 안정적인 출판사로 옮겨 북커버 디자인과 편집 일을 이어갔지만,
결국 3년 만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내려놓게 되었다. 주부라는 이름은 낯설었고,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가정과 일 사이에서 마음은 계속 흔들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야 다시 일을 해보려 했지만,
세상은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쉽게 포기했던 건 아닐까, 지금도 가끔은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감이 떨어졌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내 안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런 나에게 자이언트플라워가 다가왔다.
2017년쯤, 아직 국내에선 생소하던 그 꽃이 내 눈에는 너무도 예쁘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건 뭐지?', '이걸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료를 찾아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고,
때로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으며 배움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만드는 게 참 재미있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내 손끝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그 감각이 너무 좋았다.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었고,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단순한 행위가 내 안의 무너졌던 부분들을
조용히 다시 세워주는 듯했다.
물론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 하나를 배우고 나면 다음이 당장 연결되지 않아 불안해하고,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안달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조차도 내게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다는 걸 안다.
자이언트플라워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 남아 있던 창의성과 감각을 다시 꺼내게 해준 열쇠였다.
다시 시작해볼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로움아트플라워'라는 이름으로 내 작업을 하나하나 쌓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꽃으로 공간을 꾸미고, 클래스를 통해 또 다른 여성들과 만나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꽃을 만들며 나를 다시 피워내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언젠가 나처럼 멈춰 선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당신 안의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고, 지금도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