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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엘굿 Feb 02. 2024

뜻밖의 선물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둘째 아이가 며칠 전부터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피부과에 가봐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마침 오늘 시간이 나서 동네 피부과에 방문했다. 접수를 니 4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배고프다고 하길래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과 음료수를 먹이고 다시 피부과에 올라가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확연히 줄어있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 물었더니 접수처 직원분은 바로 진료실에 들어가시면 된다고 답해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갔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정말 많은 진료를 보셨는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선생님은 우리를 맞이하셨다. 선생님은 돋보기 같은 걸로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남자아이고 방학이라 아이가 세면 하는 걸 싫어하죠?"

그 소리를 듣고 너무 웃겨서 순간 크게 웃었다.

"좀 싫어하는 편이죠"

라고 대답했다.


"다행인 게 오돌토돌 올라온 게 외부요인에 의해 생긴 게 아닙니다"

"안에서 올라왔어요"

"피부가 건조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답게 정말 점잖게 말씀하셨다.

나는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았다.

나 역시 어렸을 적 방학이면 아침 늦게 일어나 밖에 나가 하루종일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진짜 세수도 안 하고 나가서 뛰어놀다 밥시간 돼서 엄마가 찾으러 오면 들어가 밥만 먹고 또 나가 뛰어놀았다.

추워서 안 씻고 귀찮아서 안 씻고 그냥 안 씻었다.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선생님 그러니깐 세수를 안 하고 로션을 안 발라서 이렇게 된 거라는 거죠?"

선생님은 순간 온갖 고민이 해결된듯한 표정으로 정말 밝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 맞아요!"


나와 선생님은 작은 방에서 최대한 배려하는 크기로 호탕하게 웃었다. 아이는 별로 창피해하지 않는 듯 갸우뚱거렸다.

"세수를 잘하고 로션을 꼼꼼하게 바르게 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한 달 동안 관찰해 보시고 그래도 안 나면 다시 오세요!"

"참고로 특별한 처방전도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을 알았기 진료실을 나오는 발걸음은 정말 총총거렸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겠지. 병원에 들어갈 때의 심각함과 진료를 받고 나서 가벼운 증상이라고 들었을 때의 마음 말이다. 총총총 토끼처럼 걷는다는 게 마음의 안도감과 함께하는 기쁨의 표현인 것 같다.


접수대에서 진료비 계산하기 위해 금액을 물어봤다.

"선생님께서 선물이라며 진료비 없다고 하셨어요"

간호사로 추정되는 접수대 직원은 퉁명스럽게 사무적인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이의 증상도 심각하지 않은데 진료비조차 받지 말라고 선생님께 말하신 거에 대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도 하루종일 아픈 사람들만 보다 아들처럼 안 씻어서 온 재미있는 환자를 보니 장난이라도 치고 싶으셨나 보다. 선물이라고 표현까지 해주시고 기분이 좋았다. 접수대 직원분께 감사하다고 내가 표정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로 웃으며 말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꽈배기와 핫도그가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손 가득 얹어주었다. 평상시 설탕을 묻히지 않고 먹였는데 오늘은 반만 묻혀달라고 말했다. 아들은 진짜 맛있게 꽈배기와 핫도그를 순식간에 먹었다.


와이프와 딸에게 카톡으로 오늘 병원에서의 일을 주절주절 적었다.

정말 모두 큰 소리로 웃는 듯 카톡 메시지로 웃음이 가득했다.


걱정스럽게 병원에 갔는데 정말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아주 작은 선생님의 배려로 우리 가족은 안도의 기쁨과 큰 웃음 그리고 평생의 좋은 추억이 생겼다.


아들이 훗날 며느리감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 꼭 이 말을 해줘야지라고 생각했다.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안 씻어서 두드러기가 났어!"

"결혼하거든 며느리 네가 잘 관리해라!"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키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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