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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Apr 18. 2021

축하합니다. 나는 괜찮아요. 저도 행복합니다.

- 곧 임신


2021년 4월이다. 마지막 시험관 후, 크리스마스, 신정, 구정, 생일, 결혼기념일까지 보냈다. 그 사이에 회사에서는 부서를 변경했고 집도 이사를 했다. 작년에 임신에 성공했다면 지금쯤 배가 불렀을 수도 있었겠다.


푹 쉬었다. 감기약이라도 탈 때면 ‘혹시 임신일 수도 있는데 문제없는 약이겠죠?’ 운동을 할 때면 ‘배에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동작으로 해주세요.’라며 매사 내 결정과 선택의 근간에 있던 ‘임신’과 무관한 시간을 보냈다. 6개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하고 일에도 푹 빠져 지냈다.


작년 휘몰아치듯 시험관에 매달릴 때 옆 자리에서 내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던 동료가 얼마 전 나를 찾아왔다. 언제나 서로의 근황을 살피고 걱정을 나누는 사이다. 응, 어쩐 일이야?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나는 직감했다. 임신 5개월이라고 했다. 와우 축하해! 몸은 괜찮아? 출퇴근은 괜찮은 거야? 쏟아지는 내 질문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고 했다. 내가 고생한 걸 알고 있고 그만큼 지쳤을 텐데 자신이 먼저 임신을 한 게 미안하다고 했다. 야, 그게 왜 미안하냐? 네가 안 준 거야? 나도 곧 할 거니까 그런 말 말어. 너의 그 기운을 내게 주면 된다.


하하호호 얘기를 잘 끝냈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같은 업무를 하며 동고동락했고 언제나 행복하기를,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다. 난 그녀의 임신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그런데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랄 지금 그녀가 내게 미안해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나의 난임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미안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6개월 전의 감정들도 되살아났다.


매일 아침 배에 주사를 맞을 때의 서글픔, 회사에 쉬쉬하면서 병원에 다녀야 했던 불편, 친구들의 임신 출산 소식에 통곡했던 며칠 밤, 피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의 초조함, 남편이 꼭 안아주던 많은 날. 많은 시간이 지났나 보다. 이제 꽤 괜찮다. 누군가의 아이를 봐도 같이 예뻐할 수 있다. 내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 운동으로 살을 6kg나 뺐다. 나도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미안해하는 그녀가 덜 미안하게, 나도 이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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