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식이 Mar 24. 2016

쿨한데 따뜻하지 말입니다.

Hedy


      

        Hedy 역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거주자 중 한 명인데, 그녀도 밴쿠버에서 태어난 일본계 캐네디언입니다. 음악을 좋아해 89세의 나이에도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노래도 잘 하고, 엉덩이를 씰룩씰룩, 위험하니까 일단 좀 앉아요!라고 해야 할 만큼 흥이 돋게 춤도 잘 추십니다. Sue가 좀 일본인 느낌이 나는 지적이고 센스 좋은 할머니라면, Barbara는 웃기고 쾌활한 괴짜 할머니, Hedy는 정말 좋은 옆집 캐네디언 할머니 같은 느낌입니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Sue는 자애롭고 리더십있는 유비, Hedy는 당당하고 현명한 관우, Barbara가 좀 괄괄한 장비 같다고 하면 딱 떨어지네요ㅎㅎ)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그렇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그녀입니다. 거기에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호의적인 성격까지. 잘 깜빡깜빡하는 Barbara는 아무래도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하는데, 예를 들어 노래를 하는 시간에 일본어 가사를 보며 “I cannot read Japanese! I never went to Japanese school!” 이 말을 매 노래가 바뀔 때마다 해요. 그러면 열번이면 열번 Hedy는 그걸 다 받아줘요. Barbara가 농담조로 얘기하면 언제나처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웃어주고, 진지하게 정색하면서 얘기하면 “그래도 잘 들어보면 아는 노래일 거야. 가사도 다 생각날 거야.”라고 말해줍니다. 둘이 이 대화를 무한반복합니다.


        스낵 시간에 음료수를 마시고 다들 빈 컵을 손에 쥐고 있으면 돌아다니면서 모두의 컵을 걷어줍니다. 사실 그렇게 한 손에 여러 개의 컵을 쥐고 워커 없이 걸어 다니면 스탭 입장에서는 불안해서 그냥 안전하게 앉아 계셨으면 하지만, 그렇게 남들을 도우면서 본인이 느끼는 뿌듯함이랄까, 자신이 아직 쓸모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최대한 옆에서 여차하면 바로 붙잡아 줄 수 있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저 할머니 누군데 저렇게 워커도 없이 막 걸어 다녀요?” 농담을 던지면 Hedy도 웃고 모두 와하하 웃습니다. 그리곤 다 끝날 때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하고, 그럼 그녀도 뭐 별 것 아닌 것 마냥 어깨를 으쓱하며, “No problem!” 하고는 곧 자리에 앉죠. 그게 우리의 매일의 패턴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70 중반쯤 되셨을 때, 정말 꼬꼬 할머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농사일을 하셨던 분이어서 더 주름도 많았고 허리도 굽으셨었구요, 여러 관계에서 오는 이유로 그냥 할머니가 어렵기도 했고, 더욱이 내가 어렸을 때였으니 더욱 그렇게 보였을 터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보면 이 나이들이 무색하게 어찌나 다들 개구쟁이 같은지 Hedy는 Sue의 일본 이름인 Sumi를 가지고 발음이 똑같은 ‘숯’을 따서 피부가 까무잡잡하다고 놀리고, Sue는 Hedy를 Headache으로 부르면서 장난을 칩니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그들입니다. 운동 시간에도 Sue, Barbara, Hedy 쪼르륵 붙어 앉아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키득키득 장난치고, 또 마치 날씨나 요일에 따라 입고 싶어 지는 색깔이 할머니들에겐 있다는 듯 셋 다 희한하게 깔맞춤으로 옷을 입고 다녀서, “거기 보라색 세 명! 장난 그만 치고 운동하세욧!” 하고 주의를 주면 서로 "She is telling you!" "Not me! You!" 하면서 더더욱 꺅꺅 웃어대죠. 그냥 딱 여중생들 같은데 이들이 90 이쪽저쪽의 할머니들이라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이 그렇게 건강하게 함께 웃는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괄량이 삐삐도 늙어 요양원에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