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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04. 2018

귀를 쫓는 모험 - 소금이 없는 삶의 시작

나는 세상의 빛과 소금 중 소금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됐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진실로 위대한 시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인가 사흘 동안 잠깐잠깐 귀를 내놓았을 뿐, 그녀는 다시 그 빛나는 기적적인 조형물을 머리카락 속에 숨기고, 원래의 평범한 여자애로 돌아가버렸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몸통에 별이 새겨진 양을 찾는 모험 속 여주인공은 기민한 귀의 개방을 통해 미래를 읽어내곤 주인공에게 실마리를 전한다. 양을 쫓기 위한 레이더이자 주인공에게 어떠한 느낌과 전언을 들려주는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귀. 

하지만 내 귀의 개방은 광장의 최루탄의 비명 같은 묵직함을 예감하거나, 메마른 땅에 쓸모없는 비둘기가 토하듯 뱉어냈으나 고귀한 생명을 피워내는 잎사귀 같은 영예로운 탄생의 목격을 위함도 아닌 무의미 자체의 개방이었다. 


도대체 이 원인 불명의 병이 돋아났는지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이제 나의 귀가 개방된 상태라는 '상태'정도는 알게라도 됐으니 조금의 다행이랄까. 내가 귀를 쫓아 떠난 모험의 여정은 아래와 같다. 

회사 근처 동네 병원 -> 강북의 어느 유명 귀 전문 병원 ->  모 대학병원 -> 경기도의 어느 전문 병원 -> 그리고 부산의 어느 교수님과의 조우 

부산의 교수님과의 만남은 신하가 인금을 만난다는 뜻의 '조우'란 단어가 참으로 딱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나는 귀가 개방된 줄도 모른 체 다른 병명으로 잘못된 처방을 받아 몸이 비실비실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자 나는 불안함에 회사를 뛰쳐나와 근처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노랗게 붉게 잎사귀가 물들고 숱이 많은 햇살이 촘촘하게 공기를 빗어내던 11월이었다. 내가 아픈 것도 잠시 잊고 바닥에 쌓인 낙엽과 잎사귀의 무용에 감탄하며 잠시 잠시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그러다 이내 불어오는 바람이 한쪽 귀를 무음으로 통과한 체 머리 속에 조용히 숨어 들어와 염탐하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병원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듣곤 바로 청력 검사를 했다. 몸하나 겨우 들어가는 관처럼 어둡고 좁은 방에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안자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의 음을 찾아 손가락을 놀렸다. 딸깍딸깍. 분명 사람들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이 공기의 흐름을 파열하는 듯한 기괴한 기계음은 그 굵기가 남다르게 얇은지 귀 속을 정확하게 관통하여 존재감을 과시했다. 덕분에 청력 검사의 결과는 '매우 정상' 


의사 선생님은 나를 의자에 앉히곤 뒤로 젖혔다가 돌렸다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철없는 아빠처럼 굴었다. 그리곤 그는 이내 아주 심각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척, 담담한 척 입을 떼었다. 

"돌발성 난청 같고, 메니에르 같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면 비싸기만 하지 결론은 똑같을 거예요. 메니에르 증후군입니다." 


메니에르병 [Meniere’s disease]

메니에르병은 회전감 있는 현기증과 청력 저하, 이명(귀울림), 이 충만감(귀가 꽉 찬 느낌) 등의 증상이 동시에 발현되는 질병으로, 1861년에 프랑스 의사 메니에르(Meniere)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다. 아직까지 병리와 생리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림프 수종(endolymphatic hydrops)이 주된 병리현상으로 생각되고 있다. 메니에르병은 급성 현기증을 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내이 질환이다. 

-출처: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세상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메니르... 메니... 뭐라고요?"

"메니에르 증후군입니다." 

"그게 뭔가요? 원인이 뭐죠?"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귀 질환이에요. 이명이나 지금과 같은 돌발성 난청이 오는 건 메니에르 초기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요즘 스트레스받는 게 있나요?"

"딱히...  그리고 저는 어지럽진 않아요. 그저 귀가 에어백 터진 것처럼 충만감이 있어요. 그리고 겨우 한 시간 전에 처음 발발했어요." 

"가끔 회전성 어지러움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아직은 청력이 저하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저하될 거예요. 오늘부터 소금은 끊도로 하고 이뇨제를 먹어서 증세 악화를 막아야 합니다."

"소금이요??  소금 없으면 뭘 먹어야 하죠? 이뇨제는 무슨 작용을 하는 거죠?"

"이뇨제는 몸에서 소금을 빼는 역할을 합니다. "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 봐야겠어요...."

"가도 똑같을 걸요? 검사비만 50만 원씩 나올 거예요. 그냥 이뇨제 복용하고 소금을 뺀 식사를 하시면서 차도를 보죠." 


어느 가을날, 나는 세상의 빛과 소금 중 소금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됐다. 세상의 맛을 내는 존재, 변질과 타락과 부패를 막는 존재를 제외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게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붙잡지 못하고 아래로 흘려보냈다. 여전히 한쪽 귀는 들리지 않았고, 청력검사가 정상이라는 게 거짓말 같았다. 모두가, 세상이 나를 속이고 연극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나의 귀가 물었다. 너는 평소에 잘못을 했니? 

나의 귀가 물었다. 너는 너를, 나를 사랑했니? 

의사가 말했다. 조금 무심하게 사시지 그러셨어요. 

의사가 다시 말했다. 죽을병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조심하세요. 

내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슬프니? 

내가 나에게 답했다. 슬프기보단 두렵다. 

나는 모두에게 답했다. 그럼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지만 몸의 기능 중 하나의 정지는 생전 처음으로 느껴지는 형태와 온도의 두려움을 몰고 왔다. 한쪽 귀에는 암전과 소리의 단절이 왔다. 마치 고문을 받는 느낌이었다. 오른쪽 귀 속에 작은 난쟁이들이 몰려와 풍선을 크게 불고 있는 것 같았다. 풍선은 점점 커졌다. 곧 터질 것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귀를 틀어막은 풍선은 이제 그 어떤 소리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1,2,3, 난쟁이들이 구호를 외치며 더욱 힘차게 풍선을 키우기 시작했다. 

1,

2,

3,

'펑' 

나는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렇게 빨개진 눈을 비비며 커다란 이뇨제을 두병 들고 회사로 왔다. 그리곤 초록색 인터넷 창에 '메니에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꽤 많은 환자들이 여기저기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나 역시 고통 속에 병에 관한 글들을 읊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불치병 같은 난해한 이름의 저 병이 나에게로 왔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귀 관련 환우들이 만든 카페를 통해 메니에르 및 이명 전문이라는 큰 병원의 이름을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혹시 검사 예약할 수 있을까요?"

"메니에르이신가요?"

"일단은... 동네 병원에서 그랬어요. 하지만 확실치 않아서 알고 싶어서요."

"예약은 매주 월요일 오전에만 받습니다. 다시 전화 주세요." 

뚜- 뚜- 뚜- 뚜- 

괜스레 눈물이 났다. 당장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병원은 예약조차 되지 않았다. 유명한 병원이라, 나 말고도 환자가 많은 거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불안함과 두려움, 당황스러움에 손이 떨려왔다. 


그렇게 패닉의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존재 감 없이 눈물이 말라 푸석하고 하얗게 일어난 얼굴로 일을 하고 나는 터벅터벅  집으로 왔다. 오는 내내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메니에르란 단어를 검색했다. 아직도 입에 잘 붙지 않는 '메니에르'란  단어가 프랑스의 사형 기구 기요틴처럼 나를 죽이거나 고문하는 기구의 또 다른 이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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